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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23. 2021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로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박찬국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망치를 든 근대 철학의 파괴자, 그가 남긴 수많은 어록들이 있지만 가장 가슴 깊이 와 닿는 말이다.  무언가 처절하면서도 강인함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문장이다. 마치 초인(超人)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과거 나의 좌우명이었을 정도로 나의 몸과 마음을 지배했었다.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투쟁할 것인가?"


  인생의 중반부를 지나가는 자는 이 말에 적지 않은 공감을 할 것이다. 청년시절 세상을 향해 투쟁하던 열정과 혈기는 차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그라들고 세상이라는 커다란 벽에 부딪치고 깎이며 자신을 죽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현실을 한탄하며 투쟁으로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차라리 이 세상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절대적인 힘이 존재하며 그것에 맞서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라 생각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니체는 그런 우리에게 초인(超人)이 되어라고 강조한다.


  니체에 대한 많은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을 만났다. 인문학이나 철학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등장하는 그의 이름에 관심을 증폭된다. 거시적인 철학과 인문학의 흐름을 훑다가 유독 니체에게 큰 관심이 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집어 든 책이다.  


"니체는 모든 것을 나체로 만들어 버렸다."

                                                   - 글짓는 목수 -


  죄송하다. 니체의 이름으로 나름 뼈 있는 농담을 만들어 보았다. 그는 그의 생애 세상을 지배하던 모더니즘 사상을 부수고 벗겨내며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계를 구축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철학 세계의 최고 반항아라고 봐야 할까? 앞서 말했듯이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서 그는 초인적인 삶을 강조했고 그 또한 그런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삶을 객관적인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봤을 땐 정말 불행한 인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사랑하는 여자의 거절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젊은 나이(35세)에 병을 얻어 20여 년간을 병상에서 가족의 병간호를 받으며 남은 생을 보내다 말년엔 정신발작을 일으키고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애석한 삶을 살았음에도 그는 생애 모습은 평소 유머가 많고 온화하며 사교적이었다고 한다. 고통의 삶 속에서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살 수 있었을까? 그가 말한 초인의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본다.


낙타로 살아가다


  우리는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부터 낙타의 삶을 살게 된다.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할 것이다. 낙타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뙤약볕 아래 뜨거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아랍 상인이 매어둔 밧줄에 이끌려 하염없이 걷고 있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낙타와 같은 유년기를 보낸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 부모와 학교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 갇혀 그 틀에 자신을 맞추어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 또한 어릴 땐 집에선 부모의 잔소리와 매질에 학교에선 교사의 훈육과 매질에 사회 나와선 월급의 족쇄 때문에 회사의 부당함과 상사의 무례함을 견뎌야 했다.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라 치면 바로 제재가 들어온다. 용케 빠져나가면 부랑아 혹은 낙오자로 낙인찍힌다.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우수하게 생존한 자는 우수한 품질의 낙타로 낙점되고 몸값이 올라간다. 주인의 통제 아래 얼마나 오랜 시간 그 뜨거운 사막의 모래 바람을 견뎌냈느냐가 낙타로서 성공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낙타의 삶을 살다가 세상과 이별한다. 결국 뜨거운 사막 한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한다.


사자로 변모하고


 간혹 반항적인 낙타가 나타난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다른 낙타들과는 달리 사막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동경을 꿈꾼다. 그러다 가정과 학교를 벗어나 어느 정도 고삐가 풀렸을 때 포효하기 시작한다. 허무감이 밀려오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네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세상의 모든 것에 반항적인 시선과 태도로 일관하며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부조리 때문이라고 비관한다. 마치 철창에 갇혀 포효하는 사자처럼 말이다. 그래 봐야 철창에 갇힌 신세일뿐이다. 사자가 포효한들 매질만 강해지고 먹이만 안 줄 뿐이다.


  니체는 그런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려고만 들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과정이 바로 니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니힐니즘(Nihilism, 허무주의)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이 과정은 세상과 대립하는 고통의 연속이기에 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삶은 피폐해져 간다. 이 과정 속에 누군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세상과 영구히 격리될 수 있다.


아이로 돌아간다.


 '좀 알라(어린아이의 경상도 방언)같이 행동하지 마라' 가끔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듣곤 했다. 성인이 되고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니체의 사상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내 친한 지인 중엔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있다. 일년이 넘게 매주 그 집의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아기는 참 피곤한 존재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아기를 곰곰이 관찰하다 알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기가 엄마품에 안겨 울고 불고 난리를 친다. 내가 다가가 동화책을 펴서 온갖 동물의 몸짓과 성대묘사를 하며 책을 읽어주면 금새 울음을 그치고 나와 책을 번갈아 보며 그 속으로 빠져든다. 그 때부턴 엄마도 아빠도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아기는 관심이 있는 장난감이나 놀이를 발견하면 하염없이 그곳으로 빠져든다.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든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 유희에만 빠져든다는 것이다.

    

"왜 이 놀이를 해야 하지", "놀이가 나에게 뭘 가져다 주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이 놀이를 언제까지 해야 하지?" "다른 더 재밌는 놀이는 없을까?"


  어른이라면 놀이를 좀 하다가 이런 고민들로 머릿속을 채워갈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약 인생을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것이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8:3]-


  사실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아이처럼 삶을 유희처럼 여기고 살아간다면 이런 질문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니체는 이런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 삶이 변화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이의 정신으로 태어나서 다시 아이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낙타로 살다가 사자가 되어 포효하다 아기로 돌아간다.


  이 책을 읽고 니체의 여러 가지 사상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니체의 여러 다른 사상들도 흥미로웠지만 유독 이 부분이 뇌리 속에 깊이 남아 글을 쓰게 되었다. 아기의 정신으로 되돌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설사 안다고 해도 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 발이 묶인 어른들의 몸과 정신은 모두 늙어가기만 한다. 우리가 아기를 바라볼 때면 무장해제되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이 오염되어 버린 나의 정신이 과거를 추억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니체가 말한 초인은 바로 아이였다.

사는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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