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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19. 2021

빛과 어둠

팔공 남자 시즌 2-98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하얀빛이 쏟아진다. 빛이 발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인다. 그 빛은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항상 같은 곳에서 나를 비춘다. 그 빛이 점점 환해지기 시작하며 어둠을 밀어낸다. 어느새 어둠이 사라지고 빛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진다. 


"헉! 깜짝이야! 괜.. 괜찮으세요? 환자분!"


   눈부심에 눈을 감은 줄 알았는데 눈이 다시 떠졌다. 다시 떠진 눈 앞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불빛이 켜진 플래시를 들고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눈동자를 돌린 곳에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고 희택아! 깨어난기가? 부처님 보살님 감사합니다. 괘안나? 아이고 무시라 이게 도대체 우째된 일이고?"

"괘안나? 선생님 저희 아들은 괜찮은 겁니까?"

"예... 보시다시피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깨어났네요 하하하 일단 정밀검사를 다시 한번 받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뭐야 그 빛은 저 의사 양반이 들고 있던 플래시였던 건가?'


"환자분? 자~ 말 좀 해 보세요!"

"무슨 말이요?"

"오! 말을 하네요 의식이 제대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세요?"

"음... 술을 마셨던 거 같은데요"

"그리고는요?"

"그리고... 아... 머리가... 제 발은 왜?"


  나의 양쪽 발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다. 그제야 내가 유리 조각을 밟고 피를 흘렸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나는 이틀 동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고 한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혼수상태에 빠진걸 고성방가 민원 신고를 받고 들이닥친 경찰한테 발견되어 다행히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내가 자살기도라도 알고 소식을 접하고 부산에서 급히 올라왔다고 한다. 


"머하로 여까지 올라왔노?

"니 아버지랑 연락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말도 마라! 니 뭐 엉뚱한 생각 먹고 그런 거 아이제?"

"아이다~ 그냥 술 취해가 그런기다"


  어머니는 내 몸 구석구석을 주무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뒤에 서서 굳은 표정으로 한 숨만 쉬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긴 한데 속사포처럼 계속되는 어머니의 말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여직원 성추행 관련 소식 전해드립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DG 오토모티브 대표는 해당 여직원의 일기장에서 발견된 진술에 대해 일부 성추행 사실들에 대해 인정함에 따라 구속수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해당 여직원에 대한 살해 여부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며 여직원의 시신이나 행적에 관한 조사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나 종적이 묘연한 상황입니다. 이렇다할 여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건이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상황입니다. YTM 뉴스였습니다.]


"뭐 딱 봐도 저 놈이 죽였구먼 저런 쳐 죽일 놈!"

"딸 같은 여자를 어째 저럴 수가 있노 참..."

"여하튼 부모 잘 만나가 사장질 하는 놈이 우찌 직원 맘을 어째 알겠노"


  때 마침 병실 안 TV에서는 유진 씨 실종 사건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병실 안에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 마디씩 한다. 


"大叔! 你没事吗?(아저씨 괜찮아요?)”

“哦! 孙香 你怎么来了(어! 쑨샹 어떻게 왔어?)”

“아이고 일 없음까? 발이 어예 이래 됐음꽈?"

"오셨어요? 최 씨 아주머니"


   목장 식구인 쑨샹과 최 씨 아주머니 그리고 그의 딸이 어떻게 알고 병문안을 왔다. 그런데 안 에스더가 보이지 않는다.


"목녀는요?"

"她联系不上,他电话总是打不通啊, 我去过她家,门在关上好像不在家(연락이 안돼요, 전화가 계속 불통이라 집에 찾아가 봤는데 문도 잠겨있고 집에도 없는 거 같아요”

是吗?(그래?)”

“누구?"

"어! 엄마 인사해! 이쪽은 우리 교회 목장 식구들"

"어? 니 교회도 댕기나?"

"어 뭐 어쩌다 그래 됐다"

"아이고 부처님..."


  어머니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부처를 찾으며 한숨을 내쉰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나의 옷을 찾는다.


"내 핸드폰이 어디 있지? 내가 한 번 전화해봐야겠네"

"잠깐만 있어봐라"

  

  어머니는 나의 원룸에서 주섬주섬 챙겨 온 짐 속에서 핸드폰을 찾아 건네준다. 핸드폰은 아직 마른 핏자국이 곳곳에 묻어있다. 전원을 켜니 안 에스더에게서 온 부재중 통화가 하나 있다.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녀의 부재중 통화 전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내가 전화를 걸고 얼마 있지 않아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다. 그날 밤 내가 전화하기 전에 그녀에게서 수신된 문자메시지가 보인다.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 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 민 35:17 -】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보지만 핸드폰은 신호만 울릴 뿐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병상에서 내려온 나는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참기 힘든 통증에 바닥에 꼬구라진다. 


"앗! 괜찮아요?"

"아이고 희택아 야가 와 이라노?"

"大叔! 怎么了?(아저씨 왜 그래요?)”

“孙香! 你把轮椅拿过来,尽快帮我去她家 快快!(쑨샹! 휠체어 좀 가져다줘, 나를 그녀 집에 데려다줘 어서!”


   다들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쑨샹은 다그치듯 재촉하는 나를 보며 당황하며 휠체어를 가져온다. 나는 며칠을 누워있어서인지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있는 힘을 다해 휠체어에 올라탄다. 그녀와 병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안 에스더의 집으로 향한다. 


  도착한 그녀의 원룸 건물 앞에서 그녀의 방을 올려다본다. 그녀의 방은 커튼이 쳐진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2층인 그녀의 집을 올라갈 방법이 없다. 발을 디딜 수 없기에 가져온 수건으로 무릎을 칭칭 감아 무릎으로 기어서 계단을 올라간다. 쑨샹은 혹여나 쓰러질까 그런 나를 옆에서 안쓰럽게 쳐다보며 따라 올라온다.


"쿵쿵쿵! 안 에스더!"


  그녀 집 현관문을 크게 두드린다. 


"没有反应,她应该不在吧(반응이 없는 게 집에 없는 거 같은데)"

"지 이이이 잉"

"있는 게 분명해!"


  안에스더에게 전화를 걸고 현관문에 귀를 붙인채 소리를 들어본다. 분명 핸드폰 진동소리가 들린다. 딱딱한 무언가에 올려진 채 진동하고 있는 소리가 방 안에서 들여온다. 


"你不知道他家密码?(집 비밀번호 몰라?)”

“不知道(몰라요)”


  나는 답답한 마음에 도어록을 열어 0000부터 1234 생각나는 데로 마구 눌러본다. 비번을 알아낼 길이 없다. 


"쿵쿵쿵! 에스더! 안에 있는 거 알아요 문 열어요! 안 되겠어"


  나는 119에 전화를 걸려고 전화기를 손에 들고 바라본 화면에 그녀의 문자메시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민수기 35장 17절!"

"你说什么(뭐라고 했어요?)"

“띠띠띠띠 띠리링 철컥!"

"噢! 们打开了!(와! 문이 열렸어요!)"


  천천히 현관문이 열리고 칠흑 같은 암흑 속으로 빛이 스며들어간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나고 어둠이 지나면 빛이 찾아오듯 우리의 삶은 항상 빛과 어둠이 함께 한다. 누군가는 빛이 되고 누군가는 어둠이 된다. 빛은 어둠을 밝히고 어둠을 빛을 삼킨다.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된다.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거나 어둠을 피해서만도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힌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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