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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20. 2021

죄와 벌

팔공 남자 시즌 2-99

!这到底是什么味儿啊?(읍!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예요?)”


어둠 속에서 심한 악취가 흘러나온다. 쑨샹은 벽을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는다.


"탁!  캬아아아악!"

"털썩!"


  불이 켜지고 눈 안에 들어온 광경을 본 쑨샹은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순간 숨이 막히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안 에스더가 천장에 매달려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녀는 혀를 길게 밖으로 뺀 채 목이 매달려 있다. 섬뜩한 눈알은 나를 쏘아보고 있다. 그 아래 에는 그녀가 쏟아낸 오물들이 악취를 뿜어내고 있다. 침대 위에는 무언가가 비닐 랩에 칭칭 감겨 뉘어져 있다. 나는 무릎으로 기어서 그 앞으로 다가간다. 침대 위에 있는 것이 그녀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바람은 어긋나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유진은 머리가 심하게 손상된 채 랩으로 둘러싸여 있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을 보아 그녀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숨을 거둔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을 시신의 상태과 비닐랩에서 스며 나오는 심한 악취로 짐작할 수 있다.


"아... 왜? 도대체 왜!~~ 왜 그랬냐고!"


  고함을 지르며 분노를 토해낸다. 충격적인 상황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알 수 없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온다. 무릎을 꿇은 채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책상 위에 책이 눈에 들어온다.  

  엉금엉금 기어서 책상 앞으로 간다. 펼쳐진 책장에 수기로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10/21, 춥고 어둡다.


  어둠의 끝은 더욱 어둡다. 빛은 사라지고 마치 블랙홀처럼 어둠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제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한복음 8:34]


  마지막 예배당에서 들었던 설교가 기억이 난다.

  죄를 짓고 또 죄를 지었습니다. 또 다른 죄를 지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제가 무서워집니다. 이제 죽음으로 그 죄를 씻으려 합니다. 부디 용서하옵소서.


   그의 사랑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차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이 향하는 곳마다 찾아가 없애버렸습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여 나의 품으로 찾아든 어린양을 시기 질투하여 팔아넘겼고 그가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려 하는 모습에 견디지 못하여 그 사랑마저 없애버렸습니다. 제가 그녀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나에게 돌아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그 사랑을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그렇게 악이 되었습니다.

이제 갈곳이 없어 당신께 돌아가려 합니다. 받아주옵소서!]


"띠아오챤?! 그녀까지... 어떻게 그... 그럴 수가  아아아악!"


  띠아오챤과 유진 씨에게 벌어진 그 끔찍한 일들이 나로 인한 것이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다. 항상 신실한 모습으로 예수의 삶을 찬양하며 이웃들과 주변에 항상 밝고 선한 모습으로만 비치던 그녀 아니었던가? 그런 그녀의 한결같은 모습에 나 또한 발길을 끊었던 교회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천장에 매달려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여태껏 천사처럼 비쳤던 모습과는 다른 흉측한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책장을 앞으로 넘긴다. 다른 페이지의 글씨가 다르다. 이건 유진씨 집에서 찾지 못했던 최근 그녀 일기장임이 분명하다. 언젠가부터 안 에스더는 그녀의 일기장에 자신의 일기를 적어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유진씨가 마지막으로 쓴 일기를 찾아본다.


[ 9/21 nice 날씨 for hiking (등산하기 좋은 날)


  그와 앞산에 올랐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을 can't understand(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마음을 now I know (이제 알겠다). 그가 나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준다.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온다. 그의 체취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I'm happy with him in this space and time (그와 함께 있는 이 시공간이 행복하다). 그도 그럴까?


  술에 잔뜩 취해 택시에 올랐다. Actually(사실) 취하긴 했어도 정신은 멀쩡하다. 그에게 내 맘을 전해 본다. 택시기사 아주머니가 알아채지 못하게 영어로 sleep talking (잠꼬대)를 해본다. 그는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나의 brow(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그는 나를 둘러업고 기숙사 아파트를 오른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느껴진다. I get fat these days(내가 요즘 너무 많이 먹은 모양이다). 그냥 일어날까? No! 여태껏 했던 게 다 허사로 돌아가게 할 순 없지.


  그는 puts me on the bed(침대에 나를 눕히고는)하고 의자에 앉아 gasping for breath 한다 (숨을 헐떡인다). 개슴치레 뜬 눈 사이로 본 그는 얼굴에는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창밖에서 비춰 들어온 달빛에 반짝이고 있다. 아저씨 고생했어. 안쓰럽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그의 모습에 그가 방문을 나서려는 순간 I just confess to him(결국 내가 고백해 버렸다).


 하지만 그는 As I expected (내 예상대로) 나를 두고 나가버린다. 아! 고백하지 말걸 그랬어. 들켜버린 내 마음을 어쩌지? 그가 고백하길 바라본다. 안 하면 그땐 내가 이단 옆차기로 고백할 때까지 hit(때려줄) 할거다.

  

   그가 떠나간 방안엔 그가 흘린 땀방울의 냄새와 열기가 가득하다. thanks God!]

 

"으아아아아앙!"


  그녀의 마지막 일기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통증을 밀려온다. 눈 안에 맺힌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떨어지는 눈물이 일기장을 적신다. 눈물에 글씨가 번진다. 일기장을 덮는다.


"Crime and Punishment"


  책 표지에는 [죄와 벌]이라고 적혀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살아간다. 죄인 줄 알면서 죄를 짓는 자들도 있고 죄인 줄도 모르고 죄를 짓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죄를 짓는 자들은 죄를 떠나 양심이란 것에 거리낌을 느낀다. 만약 이것마저 없다면 그것은 병이다. 그 병은 죄를 짓는 사람들로부터 혹은 그런 환경에서 얻은 것이다. 병이 만든 죄가 용서될 순 없지만 병은 치료가 필요하다. 그 병을 만든 사람들과 세상을 벌해야 한다.


   하지만 양심의 죄는 벌을 받아야 한다. 죄를 짓는 자들은 자신만의 합당한 이유를 만들고 죄책감을 없애려 한다. 벌 받지 않으려는 핑계를 만든다. 단죄(罪)는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죄가 드러나지 않아 벌을 피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벌은 잊지 않고 찾아온다. 그것이 언제인지 어떻게인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뒤늦게 받는 죗값은 이자를 더해 커지기만 할 뿐이다.


   죗값은 피할 수 없다. 용서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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