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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18. 2021

사랑받고 사랑해야 한다

팔공 남자 시즌 2-97

"야! 야! 밖에 봤어?"

"무슨 일인데..."

"좀 전에 경찰들이 사장실에 들이닥쳐서는 사장님 데리고 나가던데..."

"헐! 정말요?

"대박! 뭔 일 이래?"

"거기 인사팀 신입 방유진 사원 실종건 때문인 거 같던데요"

"어이! 전대리! 너 뭐 아는 거 좀 없어? 뭐 있을 거 같은데... 같이 좀 알자."

"아뇨! 없는데요"


  월요일 아침부터 회사 안이 술렁거린다. 수많은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장은 형사들에 둘러싸여 경찰차로 연행되어 간다. 구 과장은 이미 회사 안에 공공연하게 퍼진 나와 유진 씨와의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장난스럽게 나에게 물어온다. 구 과장의 짖꿏은 질문에 다른 팀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관할 경찰서에 형사들에게 모두 알렸다. 일기장의 내용부터 옆집 아저씨의 증언까지 그리고 거기서 주운 유진 씨의 운동화까지 증거로 제시했다. 형사들이 추가로 조사한 CCTV 영상에서 기숙사 아파트 뒤쪽 논두렁길과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마세라티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량의 화면을 확보했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상황이라 화면상에서 차량 번호판이 명확하진 않지만 워낙 보기 드문 차량이라 차량 전문가들의 소견이 배불뚝이 팬티 아저씨와 동일했다. 그리고 그 시간대 유진 씨의 통화내역을 확보했고 사장과 통화기록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에이~ 둘이 뭐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다 아는데... 말 좀 해봐"

"모른다니까~! 씨X! 좀 그만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구 과장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친다. 이런 나의 모습을 처음 보는 그는 적잖이 놀란 기색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팀장과 팀원들의 눈빛은 마치 길거리에 한가운데 앉아있는 거렁뱅이를 바라보는 듯이 나와의 일정한 거리를 벌리며 멀어진다. 그들은 나를 보며 뭐라고 수군거리며 이맛살을 찌푸린다.


   나의 이런 모습에 나 스스로도 놀란다. 왜 그랬지? 수많은 시간 참고 인내했던 시간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해버린다. 나는 한순간에 평번한 회사원에서 사회 부적응자 혹은 정신 이상자로 바뀌어 버렸다.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자리를 박차고 사무실을 나간다. 유난히도 화창한 바깥 날씨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태양을 피하고 싶다. 일단 뛰쳐나오긴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차를 몰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해질녁이 되어 돌아온 곳은 결국 집이다. 곳이 없다.


  그날 밤 뉴스에는 지방 모 중견 기업 총수가 여직원 실종과 관련한 유력한 용의자라는 뉴스가 뜨며 직권과 권력을 남용한 여직원 성추행이라는 주제와 연관시켜 이슈화 시킨다. 확실한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용의자인 사장은 실종된 여성의 행방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게스트로 출연한 법의학자라고 밝히는 자는 용의자가 살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을 내비친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 곁을 떠나가게 하시는 겁니까?"


   나는 뉴스 화면 앞에 앉아 술잔을 연거푸 들이켠다. 가슴속에 응어리를 도저히 풀어낼 방법이 없다. 방바닥에는 이미 마신 빈 소주병이 즐비하다. 이상하게도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과거의 기억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과거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났다. 자의든 타의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일 거라고 의심하게 된다.  


"왜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까? 왜 자꾸 뺏어가냐고! 씨X!"

"퍽!"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소주병을 벽으로 집어던진다. 소주병은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며 방바닥 곳곳으로 흩뿌려진다. 나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깨진 병유리 조각들이 발바닥에 박히는 느낌이 난다. 알코올의 위력 때문인지 그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발바닥에선 선홍빛 액체가 흘러나온다. 나는 창문을 열어 봉긋하게 솟아오른 고분(古墳)을 향해 고함친다.


"돌려놔! X발! 다시 그대로 돌려놔란 말이야! 어서!"


  어둠 속 고분 주변에 누군가가 나의 고함소리를 듣더니 고분 밖으로 도망치듯 뛰어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놔! 잠 좀 잡시다!"

"이시간에 어떤 미친놈이야?!"

"조용히 좀 합시다!"


   주변 원룸에서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원성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진다.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방바닥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시간이 좀 지나니 앉아 있는 것도 힘겨워진다. 옆으로 쓰러진다. 피로 흥건한 바닥에 얼굴을 묻고 남은 힘을 다해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죄송합니다. 하나님! 뭐든지 하겠습니다. 유진 씨가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아아악!!!"


   또 이전처럼 귓속으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온다. 귀를 막아보지만 마치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것이 귀속을 뚫고 지나가는 듯한 통증이 계속된다. 눈 앞에 유진씨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나에게 손을 뻗고 있다. 그녀의 눈에선 빗물과 눈물이 섞여 흘러내린다.


"아.... 안돼..."


  비명소리가 조금씩 멎어지고 눈이 천천히 감긴다. 그녀의 모습이 희미해져 간다.


"띠링띠링"


  그때 핸드폰의 문자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힘겹게 손을 뻗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본다.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 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 민 35:17 -】

  

   태초의 살인은 시기 질투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데는 그 사람이 죽어야 할 합당한 이유보다는 마음속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정으로 인해 죽는 것이 대부분이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의 자식인 카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 또한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이 동생에 대한 미움을 키웠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사라지면 미움은 커져가고 결국 서로의 영혼을 죽이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랑받고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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