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원자로, 즉 서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는 끌어당기지만 서로 압착되면 밀쳐내면서 영구 운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 -
만약 첫 문장을 읽고 뭔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깨달음이 밀려온다면 당신은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무언가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남녀 사이를 묘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인가?
오랜만에 다시 과학 서적을 읽었다. 과학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과학 속에서 인간사에서 불변하는 공통된 진리들이 그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요즘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소설 속에 과학적인 관점과 주제들을 섞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나는 과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죽음] (서평 참조)을 읽으며 과학과 문학은 따로 떨어진 영역이 아닌 공통점을 가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라는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소설 속 내용처럼 과학에서 풀리지 않던 문제를 소설 속 상상(가설)을 통해 풀어가고 기존 소설 속 인간사에만 갇혀 있던 세계는 과학을 통해 그 상상의 지평을 넓혀 갈 수 있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을 읽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단연 저 한 문장이다. 저 문장은세상을 너무도 간단 명료하게 설명한다. 첫 문장은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학 입문 강의 첫머리에서 세상에 대격변이 일어나 모든 과학적 지식이 소멸되어 다음 세대에 딱 한 문장만 남겨 줄 수 있다면 무슨 말을 남기겠냐는 질문에 그가 답한 문장이다.
나는 과학 관련 유튜브를 즐겨본다. 내가 자주 보는 과학 유튜브 [에스오디 SOD]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자주 소개되어 그 이름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그는 그만큼 과학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양자 역학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떠났다.
리처드 파인만이 남긴 문장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단 과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아톰 (Atom)
아톰(Atom)은 만화 주인공?!
어린 시절 재밌게 봤던 만화영화 [아톰]이 기억난다. 그땐 아톰이 그저 만화 주인공 이름인 고유명사라고 생각했었다. 만화 속에 과학이 섭리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장 기본은 입자(알갱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입자는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원자(Atom : a-: 부정, tomos: 쪼갬)이며 여러 가지 종류의 원소(원자의 종류)로 표현되며 원자는 다른 원자와 합쳐져서 분자를 이룬다.
인간도 어찌 보면 커다란 분자 덩어리라고 볼 수 있다. 수소(H) 원자 2개와 산소(O) 원자가 합쳐져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와 성질을 가진 물 분자(H2O)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물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얘기한다. 수소로만 가득 찬 목성 같은 행성은 산소가 없어 물이 만들어지지 못하기에 생명이 살지 못한다. 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소로 생존할 수 있는 생명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최근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자인 이 수소를 사용 가능한 에너지(전기)로 전환하려는 과학계와 산업계의 노력이 한참 진행 중에 있다. 아직까진 그 효율과 성능면에서 더 많은 연구개발이 필요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수소를 보다 적은 에너지로 더 큰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회되리라 기대해 본다. 널려있어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용되지 못하는 순수함
"원자들은 모양 외에는 그 어떤 성질도 갖지 않습니다. 무게도 색도 맛도 없습니다. 관례상 달고, 관례상 쓰고, 관례상 뜨겁고 관례상 차갑고, 관례상 색이 있는 것이지 실상은 원자와 진공일 뿐이다"
-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중에서 -
설탕 분자 구조
"C12H22O11" 무엇인지 아는가? 유식한 말로 '수크로스(Sucrose)' 표현하며 이건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설탕이다. 탄소원자 12개, 수소원자 22개 그리고 산소원자 11개가 합쳐져서 설탕 분자 하나를 이룬다. 각각의 원자가 따로 있을 때 우리는 그 가치뿐만 아니라 존재조차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합쳐지면 존재와 가치를 드러낸다. 이건 금속 또한 마찬가지이다. 순수한 금속은 사실 존재하기도 쉽지 않다. 철은 공기 중에 노출되는 순간 이미 산화철(Fe2O3)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철은 탄소와 결합하여 탄소강(Fe3C)이 되어 가치 있는 철로 변모해 일상과 산업계 전반에 쓰인다.
불순물이 있어야 가치가 높아진다
우리는 왠지 모르지만 '순수'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자신은 더럽고 복잡해도 항상 순수한 존재를 갈망한다. 이 말은 결국 순수한 존재는 결국 섞이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순수함 그 자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순수한 원자 상태로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에 우리는 태어나면서 아니 엄마 뱃속에서 세포분열을 시작하면서부터 분자 화합물로 변하고 세상에 필요한 복잡 다양한 존재로 변해간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순수한 존재(신)를 찬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원자로서는 우리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사용하기도 힘들다. 가치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느낄 수 없다. 그렇게 순수한 원자는 다른 원자와 결합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만나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건 자연의 이치와도 닮아 있다. 수컷과 암컷이 서로에게 끌리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가치가 드러나고 두 존재의 결합으로 또 다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으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핵분열과 핵융합
핵분열과 핵융합의 차이가 무엇인지 몰랐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단어를 참 많이 듣지만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차이점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원자는 기본적으로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와 같은 양성자는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다. 그런 양성자를 같이 잡아주고 있는 것이 바로 중성자이다. 양성자-중성자-양성자의 구조로 붙어있는 것이다.
우라늄(Uranium)의 원자핵은 다량의 양성자(92개)와 다량의 중성자(146개)로 구성되어 있다. 떼어낼 수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 수가 많다. 그래서 우라늄으로 많은 수의 양성자와 중성자 조합을 적은 수의 양성자 중성자로 핵분열을 일으켜 엄청난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수소는 오직 하나의 양성자만을 가진다. 이중 수소, 삼중수소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양성자 하나에 몇 개의 중성자가 붙어있느냐를 의미한다. 앞에서 말했듯 양성자가 하나이기에 떼어낼 것이 없다. 그래서 수소는 수소 원자끼리 합체시키는 핵융합을 통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싫어하는 양성자를 억지로 붙이면서 열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사랑의 이별 그리고 분노의 충돌
이 모습은 인간 세계와도 닮아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랑에 미친 남녀 사이에는 강력한 당김의 힘(에너지)이 작용한다. 이 둘을 억지로 떼어놓으면 서로는 엄청난 사랑의 힘을 분출하며 어떻게든 붙으려고 발버둥 칠 것이다. 거기서 강력한 동기와 에너지가 분출된다. 그건 마치 핵분열에서 방출되는 강력한 방사선과도 같다. 방해하면 다칠수도 있다. The power of love이다.
반대로 서로 죽일 듯이 싫어하는 인간을 같은 시공간 속에 가둬두면 어떻게 되는가? 아마 서로를 죽이려 분노와 증오의 에너지가 분출될 것이다. 이건 마치 핵융합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핵분열과 핵융합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위험한 것들이 발생하고 그것이 자연과 인류에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원소(원자의 종류)와 문자(자음과 모음)
원자(Atom)와 문자(Letter)
서문에서 내가 잠시 얘기했지만 과학과 문학의 공통점을 통해 두 영역의 연결을 시도하는 나의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확고해졌다.
원자를 공부하며 원자의 세계가 문자의 세계와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학에서 원자는 세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다. 문학에서 문자(한글의 자음과 모음, 영어의 알파벳)는 글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다. 수소(H)와 산소(O) 두 개가 만나 물(H2O)이라는 새로운 가치 있는 존재를 만들듯이 자음인 "ㅁ"과 "ㄹ" 그리고 모음 "ㅜ"가 합쳐져서 "물"이라는 의미 있는 단어를 만들어낸다.
더 많은 원자들이 모이고 모이고 모이면 설탕(C12H22O11)처럼 더 복잡하고 다양한 존재를 만들고 설탕과 우유와 커피가 섞여 밀크커피를 만들고 그것을 마시는 남자는 그것과 합쳐지며 또 다른 복합체가 되고 그 남자 앞에서 같이 그 밀크커피를 마시는 여자(난자)는 남자(정자)와 합쳐지며 새로운 존재(수정난=분자)를 탄생시킨다. 그 분자구조는 계속 커져가다(세포분열=다분자구조) 앞의 과정을 반복하며 또 다른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낸다.
이건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이고 모여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길이에 따라 단편 혹은 장편 소설이 되고 문장과 단어의 조합에 따라 맥락이 달라지고 로맨스 혹은 공포 소설이 된다. 그리고 그 소설들을 읽은 존재는 새로 융합된 새로운 소설을 탄생시킨다. 내가 이 책 저 책 읽으며 얻은 지식과 상상으로 새로운 소설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연결과 융합의 시대
너무도 닮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세상을 세분화시키며 구분한다. 과학과 문학의 영역을 나누듯이 정치와 경제,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짓는다. 세상은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결시켜야 한다. 연결과 융합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금 내가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쓸 수 있음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