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기쁘고)하고 복(행복) 한 일이야 걱정할 게 있겠냐마는 흉(나쁘고)하고 화(불행) 한 일을 당했을 때가 문제이다. 요즘 나 또한 힘들거나 난처한 상황을 맞이하면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표정이 좋지 않다. 빨리 떨쳐내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않다. 멘탈 강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고무공처럼 강하게 되튀어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리공처럼 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산산조각 나서 부서져버리는 사람도 있다"
- [회복탄력성] 중에서 -
당신은 어떤 부류인가? 인생에서 흉화(나쁜재앙=시련고난)만 빼놓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시련과 고난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만약 고난과 시련이 없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이다. 중요한 건 이 고난과 시련을 어떻게 잘 극복하고 다시 회복하는가이다. 그리고 이 회복의 속도가 그 사람의 삶의 행복도를 좌우한다.
"날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 솔직하게 얘기해줘"
과거 주변 친한 지인들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그때 돌아온 답변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충격적인 답변이었다. 그들은 나의 첫인상이 매우 차가우며 다가가기 힘든 상대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첫인상과 실제 내 모습이 다름을 알게되었다고 했다. 내가 전혀 의도치 않았던 모습으로 그들에게 비취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말로는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고 무표정한 모습이 마치 꽉 닫힌 차가운 철문 같다는 것이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
나이가 들어감에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얼굴에 형성된 표정과 인상은 과거의 축적이 만들어낸 소산이다. 그것이 자신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적잖은 세월이 얼굴에 남기고 간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고 난 후부터는 자신의 얼굴에 새겨진 인상에 책임을 지며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좋은 인상이라면 평탄하겠지만 좋지 않은 인상이라면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과거 주변 지인에게서 차갑다는 나의 첫인상을 듣고 나 자신의 과거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항상 상사의 핀잔과 잔소리 때론 폭언을 견디면서 나의 표정은 무표정으로 변해갔다.
"웃네?! 회사일이 편하냐? 일이 없나 보지?"
어떤 상사는 직원들이 웃는 표정을 보면 일이 없어 한가하냐는 말을 내뱉었다. 회사에서는 항상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힘들어해야만 하는 곳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여기는 듯 했다. 그게 월급 받는 대가라고 하면서 말이다. 밤낮과 주말도 없는 그런 생활 속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입고리의 근육은 움직일 일이 없었고 쓰지 않는 얼굴 근육은 그렇게 퇴화되어 굳어 갔다.
"오빠~ 그래 그렇게 좀 웃어봐! 얼마나 보기 좋은데 해맑은 애처럼"
과거 전 여자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회사일에 찌들어 무표정이 얼굴을 조금씩 장악해 가고 있던 시기였다. 여자 친구는 나의 활짝 웃는 모습을 좋아했다고 한다. 내가 본 거울 속 그 표정은 눈은 감겨 거의 보이지 않고 어리바리한 느낌에 주름이 잔뜩 생긴 눈가 때문에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고 했다. 적의가 없고 마치 아이 같은 웃음이 자기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첫 만남에서 나의 그 웃음을 보지 못했다면 아마 나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진 못했을 거라고 얘기했다.
이후 회사에선 어쩔 수 없더라도 회사 밖에서는 밝은 모습을 비추려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의도적으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상대를 바라보려 했다. 그 노력은 쉽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렇게 효과적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효과가 없었다기보다는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그 정도의 대인관계 대처법은 모두 인식하고 있기에 나의 의도적인 미소가 평타를 칠 지언정 돋보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뒤센 미소의 비밀
여자 친구가 말했던 나의 그 웃는 미소는 오직 그녀 앞에서만 드러나는 것이었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온갖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런 웃음섞인 미소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뒤센 미소이다.
무엇이 뒤센의 미소일까? [회복탄력성] 에서 캡쳐
사실 뒤센 미소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뒤센 미소는 앞에서 내가 말했던 격이 없는 얼굴의 근육을 모두 활용해서 웃는 표정이다. 입꼬리가 볼 양쪽 깊이 올라가서 광대뼈를 밀어 올리고 그 광대뼈와 볼살에 밀려 눈은 사라지거나 초승달의 형태로 바뀐다. 사라진 양쪽 눈가에는 밀려 올라온 볼살과 움직일 수 없는 이마 옆 살이 주름을 만들어 낸다.
SNS 속에는 즐거운 미소와 행복한 표정의 사람의 사진들이 즐비하다. 자세히 드려다보면 사실 이 뒤센의 미소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의 미소가 눈과 입이 따로 논다.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가식적인 혹은 의식적인 미소인 것이다. 타인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 웃고 있지만 내적 감정까지 숨기기는 쉽지 않다. 외적 미소로 내적 행복의 충만함을 시사하려는 듯 하지만 오히려 내적 불안함을 감추려는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 같은 동양인은 그런 것에 더욱 민감하다. 눈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서양인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서평 참조)
셀카로 자신을 찍는 사진에서 이 뒤센의 미소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자신이 연기자의 뺨치는 수준이라면 모를까. 뒤센의 미소는 사랑스럽거나 편한 상대방이 있는 경우 혹은 어떤 갑작스럽고 기쁜 상황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뒤센의 미소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은 그런 상황에 노출되지 못한 시간의 연속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미소와 웃음이 사라진 무표정한 사람은 어둡고 무미건조한 자신의 과거를 얼굴에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첫인상에서 직감적으로 상대방의 표정이나 인상을 보고 그 사람의 분위기를 판단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거나 아니면 다가가기 힘든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게 된다.
물론 요즘은 이런 것을 악용해 접근하는 사기꾼들이 적지 않다. 사기꾼 치고 첫인상 나쁜 사람은 잘 없다. 만약 뒤센의 미소까지 흉내 낸다면 희대의 사기꾼일 수 있다. 결국 상대방을 진심과 인성은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 진리이다. 안타깝게도 첫인상이 어둡거나 차가우면 다가가지도 않기에 지켜볼 시간조차도 가질 수 없다.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미소
형식적인 미소로 적의를 감추고 부당함과 무례함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괴롭고 슬퍼도 울지 못하고, 뛸 듯이 기뻐도 체면 때문에 환희를 감추며 우리의 표정은 굳어만 간다. 마치 처음 찰흙으로 빚어진 물렁물렁하던 아기 얼굴이 뜨거운 태양(고난)과 세찬 바람(시련) 속에 조금씩 말라 굳어가는 것처럼...
아이의 미소를 보며 무장해제되는 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수한 미소를 그리워 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