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
-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
최초 주식회사의 탄생부터가 책임회피였다.
기업가는 망해도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자 고민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주식회사 제도이다. 기업주는 대표이사라는 말로 기업의 책임자가 아닌 대표자로 바꾸어 놓았다. 회사는 망해도 사장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기업은 더 이상 직원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회계장부 속 비용(노무비)으로 분류할 뿐이다. 언제든지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고무줄 같은 인간을 원한다. 기업 내 관계가 바로 서지 않는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에서 비롯되었다. 기계처럼 아무런 감정도 사적 교류도 섞지 않으려 한다. 그곳은 노동을 제공하고 월급만 받으면 되는 곳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으로 살려다가는 상처 받기 십상이다.
기업은 자동화와 계약직 고용을 통해 인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과거 한국의 고용을 책임지던 조선, 자동차 산업은 이제 불황을 늪에 빠져 버렸다. 사람이 많이 투입되는 산업은 모두 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동남아, 인도 등)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간다. 기업들은 하이테크, 무인자동화, IT 산업으로 옮겨가고 사람을 고용하진 않는다. 이제 한국을 지탱하는 산업은 IT와 반도체, 석유화학 등 고용 없는 장치와 콘텐츠산업뿐이다. 생산에 투입되지 못하는 인간들이 소비만 해주길 원하지만 소비도 하지 않으려 한다. 수요(소비)는 줄고 공급(생산)만 늘어나는 총체적인 난국으로 접어든다(저물가가 유지되는 이유). 집안에 틀어박혀 지출 없이 넘쳐나는 무형의 콘텐츠만 소비하는 인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기업은 벌어둔 돈을 쌓아두고 해외기업을 사고 기술을 사는데 혈안이 되었지 고용과 국내 투자에는 인색하다. 기업에게 책임질 인간은 대주주(Stockholder, 株主) 뿐이다. 노동자는 아닌 듯 보인다.
맞는 말인가? 가족해체가 만연하다. 노년의 고독사가 빈번한 세상 속에서 가족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인가? 요즘은 부모도 자녀의 봉양을 바라지 않는다. 서로 부담주기 싫은 것이다. 비혼, 이혼, 졸혼 등으로 일인가구가 증가하고 출산은 계속 줄어 아기의 울음소리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기세다. 가족은 사라져 가고 있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다. 자신도 책임지기 힘든 세상에 누군가가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가족이 말이다. 가족도 짐이 되는 세상에 이웃과 사회와 나라가 보이겠는가?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제 사라진 지 오래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도움은 커녕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 사람을 조심하라!'
내가 여기 호주와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이다. 한국인들은 선인장처럼 독고다이로 살아간다. 서로를 믿지 못한다. 다른 민족들은 서로 도와주며 그들의 세력이 날로 커져가지만 한인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한인사회가 가장 힘이 없다. 흩어져야 살 꺼 같았는데... 흩어지니 결국 죽어가는 형국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갈진대, 남녀 간의 책임이 남아 있을까? 남자가 여자를 책임지고 가정을 책임진다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이제 지나간 역사 속의 사극 드라마로 기억될지 모른다. 책임은 권한 주어질 때 가지는 것이다. 권한을 주지도 않았으며 권한을 원치도 않는 자에게 책임만 주려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자신만 책임지는 세상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힘들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만으로도... 노년의 고독사란 뉴스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래서일까?
국가가 그랬고 기업이 따라 했고 가족도 동참했다. 그리고 남녀도 변해간다. 책임은 그렇게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