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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06. 2019

일, 직업인가 소명인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제임스 홀리스

  "나는 무엇을 하부름 받았는가?"


우리는 매일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중에 과연 소명(Vocation, )을 가지고 일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소명보다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인생의 중간 항로(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인생의 중반부인 마흔쯤)에 접어들면 경제적 현실의 중요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빈곤한 은퇴생활을 걱정하면서도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뻔한 말 또한 사실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업과 소명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직업과 소명을 연결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예를 들 신앙생활의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목사나 신부, 스님 같은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 중에도 그 직업에 맞는 소명(희생, 헌신, 봉사 등)보단 자리 가져오는 권위와 사람들의 존경을 동경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직업'과 '소명'은  차이가 있다.


  직업은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의식주를 해결과 경제적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직업을 통해 돈을 벌고 소비하며 생계를 이어감으로써 사회 구성원이자 경제주체로서 나의 존재가 인정된다. 나의 득과 소비 수준이 나의 사회, 경제적 가치를 결정한다.

예수의 소명

  소명은 그 옛날 예수가 나사렛 목수아들로서의 삶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산 것과 같이 자신 개성화 하는 과정이다. 즉 사회와 환경에 요구에 따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의 이유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소명을 따르지 않은 삶은 영혼이 상처받는다. 


    중년이 되면 직업과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왜 사는 거지?'에 대한 의문이 밀려온다. 소명을 따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형~ 일이 너무 괴로워요, 나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는 동생의 푸념 섞인 토로에 공감하지만 뭐라 답을 줄 수는 없었다. 과거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과 닮아있다. 당시 내 말을 들어줬던 그는 나에게 뭐라고 답해줬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난 이미 내 속에 답을 가지고(답정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벗어날 용기가 없는 나 자신에 대한 푸념일 뿐이었다.


  동생은 신앙 속에서 헌신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몸은 현실에 얽매여 있다. 새로운 일 혹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급여 때문에 바꾸는 것이 두렵다. 새로운 일은 현재의 급여 수준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밑바닥부터 다시 올라가는 것이 두렵다. 지금도 넉넉지 못한 생활수준을 다시 하향 평준화시키며 소명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벤츠 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닝을 탈 순 없는 것이다. 명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소명을 무시한 채 돈의 노예가 되어다.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고 직업과 현실의 역할에 복종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과 소명 간의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영혼의 상처 커져간다. 현실 쌓아둔 미련(돈, 명예, 지위 등)이 커질수록 소명 더욱 멀어진다. 그렇게 삶의 의미를 잃어간다.


  "소명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소명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할 뿐이다." 

                                                                                -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중에서 -


  소명을 깨닫는 순간부터 소명은 우리의 가슴 깊이 파고들어 평생을 따라온다. 무시하며 살 순 있지만 지워버릴 수 없다.


피고용자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이런 소명과 직업 사이에서 고통받는다. 고용자의 니즈와 욕망에 부합하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생계를 위한 것이지 소명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FIRE 운동

  현재 미국젊은이들 사이에서 FIRE(Financial Independence and Retiring Early) 운동이 유행이라고 한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미니멀 라이프를 통해 소득의 대부분을 저축해 40세에 은퇴해 자신이 원하는 소명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려는 움직임이다. 타인(고용인)의 삶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명을 외면하고 일과 직업에 평생을 받쳐왔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젊은이들의 의지가 반영된 운동이다.


   돈이 주는 경제적 자유와 시간이 주는 육체와 정신의 자유를 모두 고자 하는 일종의 고육지책()인 것이다.


   이제는 부자가 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소명을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인생의 마지막에 소명을 따르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하 삶을 후회하고 싶 않다.


   나 또한 과거 3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무엇을 향해 달려왔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소명을 따르는 삶은 아니었다. 나의 직장 속에서도 소명을 찾지 못했다. 생계를 위한 직장은 소명을 생각할 계기도 여유도 주지 않았다. 회사인 명을 잠재우는 부여란 결국 급여와 더 많은 급여뿐이었다.


영혼의 욕구는 부귀영화로 채울 수 없다.


진정한 인생은 소명을 찾고 소명을 따라가는 과정이 아닐까? 만약 나의 직업이 소명과 맞닿아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무엇일까? 나의 소명을 따르는 직업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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