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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Feb 03. 2023

사랑은 사랑니처럼

사랑니에 관한 상념

두 번째 사랑니를 뽑았다.


첫 번째 사랑니를 뽑고 첫 번째 사랑이 떠나갔다. 이번에도 뽑혀진 사랑니는 두 번째 사랑이 떠나감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프다. 너무 아프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빨에서 전달되는 찌릿찌릿한 통증은 그 강도와 빈도를 더해간다. 이제는 그 통증이 턱과 목까지 전이되어 먹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게 된다. 웬만한 통증이나 아픔은 잘 견디는 편이지만 이 치통만은 참기가 쉽지 않다. 진통제를 먹고 버티기를 3일째, 그래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는다. 결국 참다못해 찾은 치과, 외노자라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적지 않은 치료비를 감당해야 함을 알지만 그래도 참기 힘든 이 통증을 어떻게든 없애지 않으면 나의 일상이 모두 무너질 것 같다.


"자~ 어금니 쪽 이빨을 깨물어 봐요"

"아아아~ 아파요~"

"밑에 사랑니가 많이 누워서 위에 있는 사랑니랑 닿으면서 신경을 건드려 통증이 오는 것 같아요 일단 위에 사랑니부터 뺍시다!"


사랑니 둘이 싸우고 있다. 위에 사랑니가 누워있는 사랑니를 짓누르며 아래 사랑니가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통증이 엄습했다. 아랫잇몸에 염증이 심해지고 있어 턱 아래까지 부어올랐다. 의사는 위에 사랑니도 관리가 잘되지 않아 잇몸의 뿌리 뼈가 많이 녹은 상태라고 한다. 일단 아래 사랑니는 염증이 가라앉고 나서 상태를 다시 보고 발치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고 한다. 일단 음식을 씹을 수 없기 때문에 위에 사랑니부터 빼야 한다고 권유한다.


"아아아아!"


차갑고 예리한 것이 몸속으로 침투하며 시린 통증이 느껴진다. 손에 힘이 들어가며 의자의 팔걸이를 부서뜨리기라도 할 듯 움켜쥔다. 그렇게 주삿바늘이 위쪽 사랑니를 감싸고 있던 잇몸을 찌른다. 아프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사랑니 주변이 서서히 마비되어 간다. 그리고 잠시 뒤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느껴졌다. 의사는 발치 도구로 사정없이 사랑니를 뽑아버린다. 무슨 풀밭에 잡초 뽑듯이 이가 뽑혀나간다. 정말 많이 뽑아본 솜씨인 듯하다. 의사는 뽑힌 사랑니를 보여주며 사랑니는 깊숙이 있어 관리가 잘되지 않는다며 상태가 좋지 않은 나의 이빨을 보며 설명을 해준다.


관리하기 힘든 사랑은 곪아서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가 만든 통증이 결국 사랑이를 떠나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랑니는 왜 사랑니일까?


사랑니의 유래를 찾아보니 사랑을 할 나이(18세~20세)쯤 생겨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사랑니는 뺄 때가 되면 아프지만 생길 때도 아프다. 그게 마치 첫사랑의 아픔과 비슷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첫사랑도 그때쯤 찾아왔던 걸로 기억한다. 순수했던 사랑이다. 그 첫사랑의 아픔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아픔은 사라졌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니의 통증이 참기 힘든 만큼 첫사랑의 아픔도 오래갔던 걸로 기억한다.


치의학과 서양(영미권)에서는 사랑니를 지혜의 치아(智齒 : Wisdom tooth)라고 한다. 그들은 사랑니가 나올 시기에 성인이 되고 철이 드는 시기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난 우리나라의 유래가 더 마음에 든다. 성인이 된다고 철이 드는 건 아니다. 정신의 성장은 항상 몸보다 느리다.  


바로 서지 않은 사랑


사랑니가 아픔을 주고 떠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고통이 찾아오는 사랑니는 보통 바로 서지 않은 어금니이다. 다른 이들과 열을 맞춰 반듯이 서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랑니가 바로 서지 않고 누워있어 다른 이를 밀어내고 신경을 건드린다. 그리고 치아 사이의 틈이 많아 음식물이 잘 끼고 칫솔이나 치실이 잘 닿지 않기에 관리가 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사랑니가 나오는 시기에 맞이하는 사랑은 아직 설익은 사랑이다. 어찌 보면 순수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서로만을 바라보는 순수하고 감성적인 사랑이다. 둘만 바라보는 에덴동산에서만 사랑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욕망을 자극하는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의 순수한 사랑은 시련과 고난을 맞이한다. 순수한 사랑은 현실이라는 세계에서 부딪치는 많은 것들(유혹, 시련, 위기)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시작된 사랑은 그 사랑이 바로 서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많은 과정들 (현실적,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사랑니가 날 때의 기울어진 첫사랑은 바로 서지 못하고 견디기 힘든 아픔과 마주한다.


현실의 사랑


이제는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닫고 때가 묻어갈 때쯤 다시 사랑이 찾아온다. 첫사랑의 아픔을 기억하기에 그 사랑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현실과 사회 그리고 환경적인 것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사랑을 측량하고 계산한다. 현실에 맞춰 이성(理性)적으로 이성(異性)을 찾는다. 이상적인 현실의 사랑을 꿈꾼다. 감성을 억누르고 이성과 현실에 부합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 사랑을 하지만 뭔지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존재한다. 사랑에 불편함이나 부족함은 없는데 첫사랑처럼 간절함이나 애절함도 없다. 첫사랑처럼 모든 날 모든 순간 떠오르고 함께 하고픈 그런 경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보고 싶고 듣고 싶어 잠 못 이루던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사랑니는 다른 이들과 함께 자라난다. 첫사랑의 아픔이 잊히질 않고 곪아가듯 사랑니도 방치되어 조금씩 곪아간다.


간절함과 감사함이 없이는...


간절함이 없는 삶과 사랑은 권태(무료함)를 거쳐 고통(통증)으로 변해간다. 애태우고 간절했던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이 시작된다. 견디기 힘든 통증이 수반되며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다. 간절함이 없었기에 미련 또한 없다.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결국 그 사랑이 나를 망가뜨린다. 이제는 뽑아버리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다. 그렇게 사랑(니)은 떠나간다.


아픈 사랑이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보통 2~4개 정도의 사랑니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사랑니를 뽑지는 않는다. 문제가 되지 않고 관리가 잘 된다면 우리는 이 사랑니와 평생을 함께 한다. 세월이 가면서 떠나가는 사랑은 어쩌면 이 사랑니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리되지 않아 하나둘씩 아픔을 주고 떠나가는 그런 사랑 말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숙한 사랑을 찾아간다. 순수하고 감성적인 첫사랑의 시련과 영리하고 이성적인 사랑의 결말을 경험하고 몇 번의 아픔을 겪으며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 간다. 참기 힘든 통증은 쉽게 잊히지 않듯이 그 아팠던 사랑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균형 잡힌 사랑을 찾고 싶다. 하지만 균형 있는 사랑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함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갈수록 사랑이 다가옴이 설렘과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랑의 아픔을 몸이 기억하고 있고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니처럼...


시간이 흐르면 사랑의 도파민은 분비를 멈춘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이 호르몬 분비에 의해 노력이나 인내 없이도 본능적이고 자동반사적으로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사랑의 시간이 길어지면 이제 노력과 인내가 없이는 이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결혼한 오래된 부부의 사랑은 마치 우정(情)과도 같다. 우정은 도파민 분비가 없이도 지속되기 때문일까? 그래서 우리에게는 영어에는 없는 사랑(Love)이라는 또 다른 이름, 애정(愛情, 사랑과 정)이라는 말이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정(情 : 뜻, 마음의 작용)이 없이는 지속하기 어렵다. 사랑이 끊임없는 관심과 인내 안에서만 지속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은 사랑니처럼 가만히 두면 통증이 찾아들고 이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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