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Feb 09. 2023

거꾸로 하면 새롭다

글과 음악에 관한 상념

"어? ~ 이거 같은 길 맞아요? 완전히 다른데 같은데?"


나는 산과 숲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그 모습은 변치 않다. 시간이 갈수록 더 녹음(綠陰) 짙은 곳으로 찾아 들어가길 즐기는 것 같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은 분명한 듯하다.


얼마 전 트레킹을 다녀왔다. 지난번에 갔던 산을 또다시 찾았다. 시드니 주변에도 갈 만한 트레킹 코스가 정말 많다. 시드니는 블루마운틴(Blue Mountains)을 비롯해서 도시 주변으로 삼림이 둘러싸고 있어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면 괜찮은 트레킹 코스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에 보통 주차한 위치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코스를 즐겨 찾는다. 짧게는 2~3시간, 길게는 4~5시간 코스를 주로 걷는다. 굴곡진 숲 속을 걷다 보면 목뒤와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시원한 숲 속 바람에 땀이 날아가면서 뜨거워진 몸의 체온도 가지고 날아간다. 바람이 땀에 젖은 몸을 감싸 돌 때의 그 기분이 좋다.


이번에는 지난번 출발점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Bidjigal Reserve Platypus Track

"야~ 또 그 산이야? 이번엔 다른 산 가자!"


과거 한국에서 같이 산을 타는 친구가 있었다.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편이다. 한 번 갔던 곳에 다시 가는 것보단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길 더 선호한다. 그 친구는 반대로 올라가면 완전히 다르다며 이전에 하산지점이었던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된 등산은 그의 말대로 나에게 완전히 다른 산을 보여주었다.


분명 같은 길이었지만 같은 길인지 알 수 없었다. 만약에 모르고 갔다면 분명 새로운 길인줄 알았을 것이다. 산과 숲은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몰랐다. 방향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야 비로소 이전에 봤던 같은 세상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 친구는 반대로 걸어가면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정상은 같지만 가는 길은 다양한


이건 우리의 삶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가는 길이 자신이 보고 배운 것만 옳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길만 고수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가는 길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그래서 타인이 걸어온 길을 가보려 하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이 가면 자신만의 고집과 아집만 커지고 굳어진다.  


꿈은 같지만 길은 다르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없으시다면 앞으로 가지시길 기원한다) 예를 들면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멋진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꿈이 있다면 그 꿈이 글로 드러나는 과정은 모두가 다르다. 누군가는 칼럼을 쓰고 누군가는 에세이를 쓰고 누군가는 시를 쓰고 누군가는 시나리오를 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설을 쓸 것이다. 만약 소설을 쓰더라도 누군가는 추리소설, 누군가는 멜로소설, 누군가는 SF소설을 쓸 것이다. 혹은 추리와 멜로, 멜로와 SF를 섞을 수도 있다. 글은 너무도 다양한 방향과 길을 만들 수 있다.

Typing (Writing)

단지 그 길 위에 인간이 공감하고 감동하는 무언가를 담아내면 그만인 것이다. 글만큼 경우의 수를 많이 가진 세계도 없다. 글은 어떻게 쓰고 펼쳐지냐에 따라서 바둑보다도 더 많은 수의 경우를 담고 있다. 그래서 AI는 흉내를 낼 수 있지만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 뭐 글에는 이기고 지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다. 글은 승부의 세계가 아니라 공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Playing (Composing)

거꾸로 치면 새롭다.


글만큼 경우의 수가 많은 세계가 또 하나 있다. 음악이다. 얼마 전 본 유튜브 SHOT 영상에서 동요 [산토끼]의 악보를 거꾸로 치는 영상을 봤다.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악보를 거꾸로 치니까 완전히 다른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원곡보다 더 좋다. (뭐 거꾸로 친 것도 원곡은 원곡이다. 단지 몰랐을 뿐...), 그래서 찾아본 거꾸로 친 악보 영상들이 이것만이 아니었다. 악보를 거꾸로 치면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다. 물론 모든 악보가 거꾸로 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거꾸로 치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또한 이 [산토끼]의 거꾸로 버전 영상 때문이다. 이 영상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영감이 산과 글 그리고 삶과 연결되어 한 편의 글이 되고 있다. 새로운 발상이 영감을 불러오고 그 영감이 다른 세계와 연결되면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것이다. 아니 탄생이라기보다 발견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나을 듯하다. 나는 마치 피아노 건반을 치듯 노트북 키보드를 빠르게 쳐 나간다. 그러면서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영감을 받은 음악가가 피아노 건반 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한 곡의 악보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방향이 바뀌면 새로워진다.


이곳 호주에 온 이후 나의 삶의 방향은 180도로 바뀌었다. 그동안 보고 배웠던 그리고 일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놓였다.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이 모두 바뀌었다. 또한 만나는 사람들 또한 모두 바뀌었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을... 이런 세상이, 이런 사람들이 있는 줄 몰랐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나이만 먹었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존재의 느낌을 아는가? 처음엔 나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래도 옛날엔...'이라는 인트로 멘트를 시작으로 계속 과거를 떠올리며 과거의 시간 속에서만 살아가는 듯했다.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과 다른 사람들 속에서 힘들어했다.


다르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


산은 바로 가나 거꾸로 가나 올라가는 게 힘든 건 매 한 가지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그랬다. 사회생활과 수많은 관계 속에서 힘들어했다. 그리고 호주라는 낯선 땅에 떨어져서 부딪치는 일과 사람들 또한 힘들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인생은 어딜 가나 힘들다는 진리를 깨달은 듯 보였다. 하지만 깨닫지 못한 또 다른 진리를 몰랐다.


나는 산의 이쪽과 저쪽을 모두 보았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보지 못했던 다름이라는 새로움을 보았다. 다른 세계에 대한 두려움만 보고 다른 세계에 대한 새로움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새롭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것이 나의 경험과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물론 그 새로움이 괴로움을 동반하는 경우도 없진 않다. (대부분 고통이 함께 찾아온다) 그건 새로움을 얻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속 편하다. 나의 글이 시간을 먹고 풍부해지고 다양해진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새롭고 다른 환경과 부딪치며 생긴 생각의 전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전반전과 후반전 그리고 반전


인생이 축구라면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는 것처럼 나의 후반전은 전반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아직까지 전반전이 좋다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전반전이 있었기에 지금의 후반전이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의 결론이다. 확실한 건 전반전과 후반전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반전(反轉)인 것이다. 경기는 끝이 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 후반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전반전에서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향과 길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아는가? 산을 반대로 오르며 만나는 새로운 풍경과 악보를 거꾸로 치면서 탄생할 새로운 음악을 만나게 될지... 그것들을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뭐든 거꾸로 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다.

In the park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은 사랑니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