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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근무

평범한 남자 EP 8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잠을 설쳤다. 몸이 무겁다.


양 쪽 어깨 위에 곰이 나란히 앉아서 시소를 타고 있는 것 같다.

간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 숙소 밖 좌판에서 *신장(新疆)인들이 구워대는 양꼬치를 사서 칭다오 맥주에 먹고 잤더니 속도 더부룩하다. 유학시절 밤마다 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로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한국인들이 보인다. 다들 해외 출장자들처럼 보인다. 출근할 복장에 가방까지 들고 다들 출근 채비가 완료된 모습니다. 난 아직 슬리퍼에 잠 옷 바람이다. 혼자만 여유롭다.


쯔쮸찬(自助餐, 뷔페식)이다. 난 슬리퍼를 끌고 음식이 놓인 테이블을 으~쓱 한번 훑어보고 이내 쟁반을 들어 차예딴(茶叶蛋, 찻잎에 끊인 삶은 달걀) 2개와 요우티아오(油条, 기름에 튀겨낸 꽈배기) 그리고 시판(稀饭, 한국의 미음 같은 죽)들 들고 자리로 왔다. 완전 중국식 아침이다. 유학시절 아침 등굣길에 길에서 중국 학생들과 섞여 먹던 습관이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풍긴다. 식당 한쪽 편에서 중국사람이 라면을 끓여주는 것이 아닌가? 신라면이다. 세계화에 앞장서는 "농~심~ 신라면~~" 광고 삽입송을 부르며 다가갔다.

"我也来一碗, 可以吗?" (나도 한 그릇이요, ok?)

"没问题" (물론이죠)


그렇게 라면으로 해장을 할 줄이야. 숙소로 돌아와서 어제 받은 지출품의서들의 내용을 오피스 엑셀을 이용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몸도 뻐근하고 발 마사지라도 받아야겠다'


오전 느즈막이 숙소를 나섰다. 근처를 돌아다니며 마사지 샵을 물색했다.


"烟台姑娘足疗?" (연태 아가씨 발마사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퇴폐 마사지인가? 추운데 더 돌아다니기도 귀찮고 얼른 들어갔다.


"欢迎光临" (어서 오십시오)

"我要做足疗,多少?" (발마사지 할 건데, 얼마죠?)

"先进来房间好不好?我们正在有活动全身按摩打八折"

(우선 방으로 들어가시죠? 이번에 이벤트가 있는데 전신 안마가 20% 할인이에요)

"不用了我要足按摩就行"(됐어요, 전 발마사지만 받으면 돼요)


카운터에 화장이 짙은 매니저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행사 중이라며 다른 안마를 추천한다. 유학시절 많이 겪은 꼼수라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무시하고 그냥 발마사지만 하겠으니 얼마냐고 되물었다.


"一个小时40块,两个小时70块" (한 시간 40위엔, 2시간 70위엔요)

"那就两个小时吧" (그럼 2시간 해줘요)

"好吧请跟我来吧" (예, 절 따라오세요)


방으로 따라갔다. 작고 어두운 방안에는 칙칙한 곰팡이 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인듯한 와 방안에는 커다란 소파의자가 두 개 놓여있고 앞에는 21인치쯤 돼 보이는 LCD TV가 벽에 걸려있다. 갈아입을 옷을 주고 잠시 뒤 들어오겠으니 갈아입으라고 한다.


이윽고 뜨거운 물을 담은 통나무 물통을 가져온다. 발마사지 전,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혈액을 이완시키고 긴장을 푼다. 그동안 어깨와 머리 그리고 등을 차례로 마사지해준다. 피로에 뭉친 근육 때문에 연신 신음을 내뱉었다. 어깨 위에 곰들은 그녀의 강력한 악력에 쓰러지는 듯 어깨에서 내려오는 듯했다.


"你是哪里人呐?" (당신은 어디 사람이에요?)

"你猜我是哪里人?" (제가 어디 사람인지 맞춰봐요)

"我哪儿知道啊?" (제가 어찌 알아요?)

"猜嘛" (그냥 한번 맞춰봐요)

"台湾人?" (대만 사람?)

"하하하"


유학시절 발마사지를 하며 중국어 회화 연습을 하곤 했다. 저렴한 서비스에 자주 다니며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 회화나 영화 속에서 외웠던 대사들을 그들에게 쓰면서 복습을 하곤 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회화 수업이다. 내 발음이 외국인 같지는 않은지, 한국인이라고 말하니 깜짝 놀란다. 이윽고 자기가 요즘 보고 있는 한국 드라마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한국 남자들은 왜 여자들에게 그렇게 다정다감하냐면서 나도 그러냐고 묻는다.


"这就是你们女人过瘾韩剧的原因之一" (이게 바로 너희 여자들이 한국 드라마에 중독되는 이유 중에 하나지)

"什么意思?" (무슨 뜻이에요)

"没什么意思" (아무 뜻도 아냐)


한국 드라마가 국위 선양한다. 덕분에 한국 남자 위상도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올라갔다. 한중일 어디나 초현실 코리안 드라마에 중독된 여자들을 보면 참 안타깝지만 난 그 덕을 톡톡히 본다. 한국 드라마 속의 로맨스에 빠져있는 이 아가씨도 한국 남자를 한 번 만나 보고 싶다면서 나에게 중국에서 무슨 일을 하냐며 관심을 보인다. 이쯤 되면 관심을 꺼줘야 한다. 손에 들어가던 악력이 입으로 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입에 악력을 받아 회화실력을 늘렸지만 지금은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더 급선무다.


"好困啊 我暂时睡一会儿,拜托了" (아 졸리네~ 나 잠깐 눈 좀 붙일게, 부탁해요)

"好吧... 休息吧"(... 어?! 그.. 그래요 쉬어요)


아가씨는 내심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눈을 감고 발바닥에서 다시 강해지는 악력에 멈췄던 신음이 터져 나온다. 이러면 최초 악력보다 1.5배는 강해지는 느낌이다. 아마 이어지지 못한 로맨스 스토리의 아쉬움이 분노의 손가락 파워로 전환되는 효과라고나 할까? 어쨌든 피로 해소 효과는 만점이다.


다시 만났다.

샤오왕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굳은 표정으로 카페에 나타났다.


"小王! 有什么事吗你的脸色不怎么样" (샤오왕~ 무슨 일 있어요? 얼굴색이 안 좋은데)

"喔~其实今天在公司有事心情不好" (... 어 사실 오늘 회사에 일이 좀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네요)

"发生什么事呢?" (무슨 일 생겼어요?)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오늘 총경리가 자신을 따로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퇴직금을 두둑이 챙겨줄 테니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지 않겠냐고 권고했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기가 알아봐 줄 수도 있다고, 그동안 자신이 B과장의 행태에 대해 보고했던 내용 때문에 B과장이 총경리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 분명하다며 말하는 내내 증기기관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콧바람이 그녀의 분노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喜宅!我该怎么办呢?" (희택씨, 전 어떻게 하죠?)

"冷静一下,喝点儿水吧" (진정하시고요, 물 한잔 드세요)


흥분한 그녀를 달래듯이 진정시키고 요청한 이전 거래회사들의 품의 내역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그제야 다시 본드걸의 신분을 인지했는지... 잽싸게 가방에서 품의서 사본 등을 꺼내어 건네주며,


"明天下午三点在你的宾馆门口见吧,我会开车过来接你"

(내일 오후 3시에 당신의 호텔 입구에서 봐요 제가 차를 가지고 올게요)

"好吧那我们明天见吧,别想太多那件事"

(그래요~ 그럼 내일 봐요, 아까 그일 너무 고민 말아요)


다시 한번 그녀를 다독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액션신을 촬영하는 날이 밝았다.

첩보 액션의 백미는 역시 미행 추격씬 아니었던가? 가죽 반코트에 청바지, 스니커즈 신발까지 활동이 편한 옷으로 코디하고 검은색 야구 캡 모자에 마스크까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변신했다.(물론 알아볼 수도 없겠지만...) 예상한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그렇게 갖춰 입고 나니 마음만은 비밀요원같다.


약속시간이 지난 지 1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담뱃불을 붙이고 한 손은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 속에서 온기를 느끼고 있다. 한파가 찾아왔나 보다.


이윽고 폭스바겐 검은색 산타나3000 차량이 내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창문이 열리고 조수석에 앉은 샤오왕이 손바닥 보이며 손짓한다.


"对不起对不起,让你久等了,快上车吧" (미안 미안해요, 너무 오래 기다렸죠, 어서 타세요)


멧집이 강호동만 한 깍두기 머리를 한 아저씨가 뒷머리에 여러 개 난 땜통을 부위를 쓰다듬으며 내쪽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은 인사를 건넨다.


"你好你好,我是她丈夫小周" (안녕하세요, 남편 샤오죠우라고 합니다.)

"啊~原来如此,你好初次见面我是" (아~ 그러시군요, 안녕하세요 첨 뵙겠어요 전...)

"我知道我知道" (알고 있습니다.)


소개하려는 나의 말은 끝나기도 전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또 다른 조연의 등장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계속 만들어 지고 있는 중이다. 한치도 예상할 수 없다. 이윽고 샤오왕은 총경리가 퇴근 때 급하게 업무를 지시해서 그걸 처리하고 나오느라 늦었다며 거듭 미안하다며 뒤를 쳐다본다. 나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总经理和她已经下班了本来我打算我先下班接你后跟踪他们,可已经晚了跟踪不了了"

(총경리와 그녀는 이미 퇴근했어요, 원래 제가 먼저 퇴근해서 당신을 태우고 미행하려고 했는데, 늦어버렸네요 미행은 힘들겠어요)

"那该怎么办?" (그럼 어떡하죠?)

"还是去那贵宾宿舍吧,他们会在那儿" (그래도 그 귀빈 숙소로 가보죠, 그들이 거기 있을 거예요)

"没别法子,走吧" (방법이 없네요, 가봅시다.)


그렇게 그녀가 말하는 귀빈 숙소로 향했다.

차로 약 40분을 넘게 달린 듯했다. 확실히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파트가 깨끗하다. 단지 안에는 호수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확실히 고급스러워 보인다. 단지 내 차량 출입 시 신분확인이 필요해 , 단지 밖에서 차량을 세웠다.


"我去看看他们来了没,你现在这儿跟我丈夫等着" (제가 가서 그들이 왔는지 볼게요, 여기서 남편이랑 기다려주세요)

"好吧" (예)


그녀는 아파트 단지 내로 두리번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你的汉语说的很好" (중국어 정말 잘하시네요)

"哪里哪里,还差得远呢" (뭘요, 아직 멀었는걸요)

"谦虚啊~你已经不错了"(겸손하시네요~이미 문제없어요)

"谢谢,这次都麻烦你了" (감사합니다, 이번에 신세를 지게 됐네요)

"没事没事" (뭘요~괜찮아요)


그렇게 그녀의 남편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녀가 다시금 주변을 살피듯 아파트 단지 정문을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차에 오르고


"他们俩不在" (그들이 없어요)

"咦?那他们去哪儿了" (아? 그럼 어디 간 거요?)

"我也不知道我想他们会在外边吃饭回来" (나도 잘 모르겠네요, 제 생각엔 저녁을 먹고 오지 싶네요)

"那我们在这儿等着看看" (그럼 여기서 기다리면서 지켜보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조바심이 났다. 해가 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해는 세상의 기온도 같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차의 시동을 다시 켜고 히터 온기로 몸을 녹였다.


"来了!!" (왔어요!!)

"哪里?" (어디요?)

"就那儿, 黑色的SONATA" (바로 저기요, 검은색 소나타!)


검은색 소나타를 가리키며 총경리의 차량이라며 소리친다. 이윽고 단지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해가 진 후라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순간적으로 차에서 내려 단지 내로 쏘나나를 쫓았다.


멀리서 두 남녀가 소나타에서 나와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급히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들고 셔터를 눌렀다. 차에 돌아온 나는 찍힌 카메라를 확인했다. 멀고 어두워서 검은 두 형체만 확인될 뿐 누군지 식별이 불가능하다.


"你看看这栋楼14层,刚灯开了,那就是公司贵宾宿舍" (보세요 이 건물 14층, 방금 불이 켜졌어요, 저기가 회사 귀빈 숙소예요)


이걸로는 증거 불충분이다.


"我们等到他们出来吧" (우리 그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죠)

"晚上他们也许不会出来明天再来吧"(그들은 저녁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내일 다시 오죠)

"明天再来的时候不在怎么办?" (내일 왔는데 없으면 어떡해요?)

"...."


밤을 새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아이들 저녁 준비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야간 잠복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나 혼자 이 추위에 혼자 있다간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那么我们明天早点儿过来怎么样?" (그럼 우리가 내일 아침 일찍 오는 건, 어때요?)

"...好吧我也没办法" (... 그래요 그럼, 저도 딴 방도가 없으니)


그렇게 일단 철수를 결정하고 차를 돌렸다.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중요한 순간을 놓친 것에 대한 미련이 가슴을 짓누르는 기분이다. 범인을 코앞에서 놓친 톰 크루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일 새벽 5시에 호텔에서 만나서 가는 걸로 약속하고 해산했다.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메일을 확인했다.


사장에게서 답신이 왔다. 고생이 많다는 격려의 말과 함께 월요일까지 회사로 복귀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뭐지?! 갑자기 이렇게 빨리 복귀하라고 하시는 건? 최소 일주일을 예상하고 왔는데 월요일이면 바로 내일모레인데... 그럼 내일까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된다는 말이다.'


내게 남은 시간은 단 하루다! 오늘도 잠 못 이루는 밤 비는.. 아니 눈은 내리고...


*신장(新疆) 위구르족 : 중국 서북쪽 광활한 평원에서 목축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소수민족으로 생김새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계가 섞인 서양인에 가까운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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