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7 (개정판)
“乘客们! 8点飞往烟台的CA087的航班正在7号登机口登机“
(승객 여러분! 오전 8시에 연태로 가는 CA087편 항공기가 현재 7번 게이트에서 탑승을 시작합니다.)
양손이 한가득이다. 얼마 만에 나가는 해외인가?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 선물까지 챙기려 면세점을 휘젓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덧 탑승시간이다. 지인들 선물 때문에 자금 출혈이 적지 않다. 이건 출장을 가는 건지 여행을 가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출장은 역시 혼자 가는 게 제맛이다.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다.
기내식을 끝내기가 무섭게 도착이란다. 2시간가량의 짧은 비행시간이 너무 아쉽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멈춰 서기도 무섭게 서둘러 가방을 내리는 이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다. 나는 서두를 이유도 없고 보채는 사람도 없어 여유롭게 앉아서 그들이 나가길 지켜본다.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간 뒤 천천히 가방을 내려 공항 이미그레이션으로 향했다.
공항을 빠져나왔다. 중국 공항 특유의 신선하지 않은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얼마만의 중국 귀환인가? 공항 밖에 *헤이처(黑车) 기사들의 호객 행위를 뿌리치고 공항 모퉁이 쓰레기통 옆에 서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피어나는 담배연기 속에서 잠시 중국 유학시절 추억들을 회상해 본다. 감회가 새롭다. 학생일 때와 직장인으로 온 중국은 그 느낌이 다르다.
"要去烟台大学,多少?”(연대대학 갈 건데.. 얼마죠?)
"100块 好不好?" (100위엔~ 어때요?)
"不至于吧?!太贵了~"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너무 비싼데~)
"好吧~90! 怎样?" (그럼~ 90위엔! 됐죠?)
"80 如何呢?" (80위엔으로 어때요?)
"哎呀~ 你太厉害了!行行,走吧" (아이고~거 참 대단하시구만! 그래요 그래 갑시다)
녹슬지 않은 나의 중국어 흥정 실력에 스스로 흡족해 하며 헤이처 택시에 올랐다. 미터기를 쓰는 일반택시보다 헤이처를 이용하면 비용 흥정이 가능해 싸게 움직일 수 있다. 유학시절 자주 이용했기에 서슴없이 헤이처를 탔다. 창을 반쯤 열고 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중국의 풍경과 냄새를 음미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你汉语说得怎么这么好?" (당신 중국어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哪里哪里~ 还差得远呢 没你那么好" (뭘요~ 당신에 비하면 아직이죠)
"하하하하하"
오래간만에 중국어로 기사랑 수다를 떨며 중국어 감을 찾아갈 때쯤 연대대학교 근처의 숙소에 도착했다. 출장 전 나름 인터넷으로 가성비가 괜찮은 호텔을 알아뒀던 터다. 출장비에 일일 경비와 숙박비용이 정해져 있어, 그 보다 적은 비용으로 해결하면 나머지는 내 엑스트라 머니가 되는 것을 알기에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숙소다.
"아~~~~ 악!! 이런 씨팔 새끼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욕이 터져 나왔다. 좀 전에 헤이처에서 짐을 꺼낼 때 면세점에서 산 물건들이 사라졌다. 기사가 내려서 짐 빼는 동안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신경도 못쓰고 그냥 받아 올라온 것이 화근이었다. 어쩐지… 말이 많더라니 중국 출장자나 여행자들이 심심찮게 당하는 헤이처 절도 도난사건이 나에게도 생길 줄이야! 면세점 가방에 있던 비싼 물건들만 사라졌다. 역시 치밀하다. 부모님께 드릴 비싼 선물을 사라지고 친구들에게 줄 담배만 남았다. 효도는 물 건너가고 우정을 영원할 듯 보인다. 헤이처는 불법 택시라 찾을 방도가 없다. 분노한 몸과 마음 때문인지 허기가 밀려왔다. 시간은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연대 재무담당인 왕씨와는 퇴근 후 저녁에 시내에서 만나기로 한 상황이라 시간이 남았다.
나에게는 해외여행 때마다 하는 독특한 체험을 한다. 현지 도시의 가장 유명한 대학교의 구내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학교 학생들이랑 대화도 시도해 본다. 이런 나의 습관이 해외여행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곤 한다. 특별한 이유랄 건 아니지만 미래 주인공이 될 청년들이 먹고 생각하는 수준이 그 나라의 미래를 보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화가 나고 흥분된 기분도 가라앉힐 겸 연대대학교 캠퍼스를 산책했다. 2월 중순 캠퍼스는 겨울방학이라 한산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크다.
"파파파팍~파파파팍~"
캠퍼스의 부속 건물쯤으로 보이는 강당 건물 앞에서 천지가 떠나갈 듯한 폭죽 소리에 귀가 따갑다. 결혼식이 진행 중이다. 여기서 결혼식을 보게 될 줄이야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신랑 신부가 친구와 지인들에 둘러 싸여있고 폭죽 잔치가 벌어졌다. 중국의 폭죽(爆竹)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전쟁이 터진 것 같다. 구경도 좋지만 귀가 너무 아파 오래 지켜볼 수가 없을 정도다.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학생 식당의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도착한 학생식당, 방학에 늦은 점심시간이라 식당 안은 때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을 뿐 한산하다. 식당 음식 코너로 가서 이리저리 구경하다 차오판(炒饭:볶음밥)과 판치에 차오찌단(番茄炒蛋:토마토와 계란을 볶음 음식)과 띠싼시엔(地三鲜:감자, 가지, 피망을 넣고 볶은 음식) 3가지 음식을 각각 쟁반에 담아 자리에서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옛날 유학시절 먹던 그 맛이다. 이렇게 먹어도 10위엔(당시 환율 기준 약 1,600원)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디저트로 쩐쭈나이차(珍珠奶茶:버블 밀크티 한잔)까지 한 잔 하니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이제 슬슬 준비해 볼까"
이젠 미션에 착수할 시간이 다가왔다. 본사에서 나왔다는 느낌을 충분이 풍길 수 있도록 블랙 슈트에 폭이 좁은 남보라의 단색 넥타이, 무광의 차분한 구두를 신고 약속한 시내 커피숍에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되도록 후미진 곳으로 골라 자리를 잡고 검은 수첩과 만년필 그리고 가죽 명함지갑까지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고 기다린다. 정말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카페 출입구 안쪽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한 중년의 여성이 보인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확실하다. 고개를 좌우로 두세 번 돌리더니 한 손으론 핸드폰을 꺼내고 있다. 귀에 가져다 댄다. 나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전화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을 들어 보인다.
"你好~ 我坐在咖啡店左侧角落 “ (안녕하세요~ 전 커피숍 왼쪽 구석에 있어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풍성한 체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짙은 갈색의 염색한 파마머리에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는 품이 넓은 원피스가 유난히도 그녀의 푸짐한 체구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출렁거리며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您好,认识你很高兴我是烟台DB重工财务部的小王 “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연대 DB중공업 재무부 샤오왕입니다.)
"初次见面我是总公司企划部的全喜宅,请坐!”
(처음 뵙겠습니다, 전 본사 기획실 전희택입니다, 앉으세요)
착석 후 잠시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서로가 서로를 한번 스캔했다 싶을 때쯤...
"先喝点儿茶吧,您要喝点儿什么?“(우선 차 한잔 하시죠, 뭐 드시겠어요?)
"随便吧,我都没关系" (좋으실 데로, 전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那喝点儿咖啡可以吗?"(그럼, 커피 한잔, 괜찮아요?)
"可以"(괜찮아요)
차가 나오기 전에 그녀에게 명함을 전해주며 본사 직원임을 다시 한번 인지시키고 사장님께서 직접 지시한 한 일이라는 멘트와 함께 협조를 당부했다. 샤오왕은 약간 긴장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물 한잔을 들이켰다. 이윽고 가방에서 이런저런 서류들을 꺼내보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꺼낸 것은 지출 품의서 사본이다. 대부분 경비 지출 내역들이다. 그녀는 사무용품부터 식당 운영, 청소용역, 공장 증축비용 등등의 갖가지 회사 운영 비용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방과장이 회사에 온 이후부터 품의 비용이 계속 올라왔다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 가격의 최소 1.5배에서 2배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 명의로 호화 아파트도 구매했는데 명분은 고객 및 외부 귀빈 숙소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데, 실제로는 그 아파트에 방과장이 개인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그 아파트에서 총경리와 방과장 같이 나오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는 것이다. 둘은 내연 관계이고 직원들은 쉬쉬하지만 관리부 직원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란다. 그렇게 둘이서 회사 돈이 횡령되고 있다는 것이다.
"天啊,您说的都是真的吗?" (세상에, 당신이 얘기한 게 다 사실인가요?)
"我发誓,我说的都是真的“(맹세해요, 제가 말한 모든 게 사실입니다!)
"怎么会有这种事呢?"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你不信? 我会给你证明” (못 믿겠어요? 제가 증명시켜드리죠)
"怎么给我证明呢?"(어떻게 증명할 건데요?)
그녀는 우선 그 둘의 관계가 내연 관계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녀 얘기로는 그 둘은 주말에 보통 그 호화 아파트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총경리는 기러기 아버지로 가족은 한국에 있고 혼자 주재원으로 나와 있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파트가 있지만 사모님도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와서 며칠씩 머물다가 돌아가고 또 주변엔 한국 주재원들의 숙소가 있어 눈을 피해 시 외곽에 있는 호화 기숙사에서 만남을 가진다는 것이 그녀의 추론이다.
"这个周末我们一起跟踪他们,怎么样?"(이번 주 주말 우리 같이 그들을 미행하는 게 어때요?)
"咦?! 跟踪他们?" (예?! 미행을요?)
"是啊! 你亲眼看他们俩的关系,那你就会信我嘛!"
(그래요! 당신이 직접 눈으로 그들의 관계를 확인하면 나를 믿을 거 아녜요!)
"好吧, 那我听你的" (좋아요, 당신 말대로 합시다)
그렇게 우리의 007 미행 작전이 계획되었다. 그럼 난 제임스 본드인가? 으악! 그럼 그녀가 본드걸?! 영화와 현실이 정말 다르다. 보통 토요일 오후에 그들이 그곳으로 움직인다고 하니 토요일 퇴근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과거 경비 처리한 품의서와 현재의 비용을 비교할 수 있도록 과거 품의서도 찾아와 달라고 요청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오늘의 접선을 종료했다.
'아~ 일이 생각보다 커지는 듯한데… 일개 사원 나부랭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맞는 건가?'
샤오왕과 헤어지고 몸속 곳곳에 쌓여있던 이산화탄소를 한 번에 뿜어내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접선 동안 긴장했던 탓인지… 피로가 몰려온다. 숙소에 돌아와서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사장님께 메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 백 스페이스를 수십 번도 더 두드리며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밤이 깊어갔다. 비밀 요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영화로 볼 때는 스릴 있고 재미있지만 실제 상황은 팝콘과 콜라를 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해외 첫 출장의 하루가 끝나간다.
*헤이처(黑车) : 개인차량으로 택시업을 하는 차량으로 흥정으로 가격을 측정해 보통 택시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으나 불법으로 사고 시 보험이나 보상을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