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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09. 2023

모순의 철학

[클래식 클라우드 - 니체] 이진우 (부제 : 의미 있는 토론)

매일 아침 집 근처 별다방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가고 있다.


익숙하고도 새로운 고향에서 여행 중이지만 쓰는 연습을 멈추지 않으려 계획했다. 집에 있으면 글을 쓸 수가 없다. 가족과 함께 하는 공간은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법이다. 항상 맛난 음식을 가져다주는 어머니를 만류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배가 채워지면 뇌는 작동을 멈춘다는 것을 안다. 뱃속을 비워야만 머리가 맑아진다. 그래서 아침마다 집 밖으로 나와 근처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이른 아침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강변의 도로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행렬이 15년 전 과거 치열했던 출근길 아침을 떠올리게 한다.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오픈 톡을 통해 알게 된 집 근처의 독서모임에 나갔다가 예상 밖의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약속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글을 한편 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김상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먼저 집어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과학이 당기지 않는 듯 날인가 보다. 그래서 다시 니체의 철학을 집어 들었다. 알프스 남쪽을 여행하며 니체가 걸어간 여정을 따라가며 작가가 적은 글은 기행문과 철학서 섞인 한 편의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글이 정말 잘 읽힌다. 걷지 않으면 사유할 수 없다는 니체의 말이 틀리지 않다. 움직여야 글도 생각도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글을 따라 걸으며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느새 카페 안에는 나처럼 책을 읽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다들 일을 마치고 카페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더 읽어 내려갔다. 함께 모여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는데 되더라. 모두가 책을 읽기로 약속한 시간이라는 의무감이 책을 놓지 않고 읽어 내려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았다.


"자~ 이제 모여서 얘기할까요?"


1시간가량(나는 3시간이었지만...)의 독서시간이 끝나고 카페 안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가운데에 커다란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카페 방장으로 보이는 여성의 소개말을 시작으로 각각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각자 읽은 책에 간단한 설명을 부탁했다. 다행히 나의 반대편 쪽으로 돌면서 시작된 독서 토크를 지켜보면서 이 모임이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다들 각자 1시간 남짓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포인트가 다르듯이 책의 읽은 내용만을 얘기하는 사람, 책(베스트셀러)의 배경에 대해서 주로 얘기하는 사람, 퇴근 후 책 읽기가 너무 힘들었는지 두꺼운 책은 건들지도 않고 왜 그림책을 손에 들고 사연을 얘기하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 모습이 신기했다. 호주에서 그토록 해보려 했지만 할 수 없었던 것을 5년 만에 다시 하게 되었다.


"혹시 다들 니체의 가장 유명한 저서가 무엇인지 아세요?"

"...."

"...."


다른 이들과는 달리 질문으로 시작한 나의 발언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나는 잠시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으며 누군가 알아내기를 기대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 아무도 답이 없자 나는 책을 집어 들고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

"맞다 맞다"


그제야 몇몇 사람들은 입을 벌리며 한 번쯤은 들어본 듯한 괴상한 제목이 니체의 저서였다는 것을 상기해 내었다.


"그런데 아세요? 니체가 이 저서를 한 여성과의 이별 후에 열흘 동안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는 사실을..."

"정말요?"

"오~"


사람들 시선은 이미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이어진 나 말이 그들의 눈동자 속 동공은 좀 더 확장시켰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글을 쓸 때도 그랬지만 책의 전부를 얘기하지 않는다. 나는 행간에서 오는 영감을 상상과 함께 접속시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독후감이 책 내용을 완전히 벗어날 순 없지만 책 내용을 전부 다룰 수도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독후감은 책을 읽고 느낀 것을 말하고 적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느낀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독후감은 타인의 생각을 읽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독서모임에 나온 이유 또한 그렇다. 타인의 생각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일상과 일터에서는 항상 자신의 솔직한 생각들을 감추고 숨기며 살기 바쁜 현대인들 사이에서 진정성 있는 그들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다. 듣더라 대부분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지겹도록 들은 것만 지겹도록 얘기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책은 우리가 평소에 말하지 않던 주제들에 접근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 준다. 그렇게 책을 통해 우리는 일상의 지겹고 익숙한 것들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세계 속에서 다시 우리의 일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럼 일상을 일상과 다르게 볼 수 있다. 뭐 한 두 번으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게 된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는 청중의 이목을 집중하며 시작되었다.


"니체의 삶에는 루 살로메라는 한 여자가 있었어요"


그리고 시작된 니체와 루 살로메의 로맨스 스토리는 그곳에 앉아있던 미혼 남녀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문학이든 철학이든 과학이든 이 로맨스가 섞여야 제맛이다. 이성의 영역에서 감성을 섞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로맨스이다.


"아이러니 한 건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가 살로메를 처음 만난 건 바티칸 성당이었다고 해요"

"하하하"

"오호~"


그리고 당시 니체는 21살의 꽃다운 나이의 살로메 처음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별에서 떨어져 우리는 여기서 서로 만나게 되었는가요?"


 서로는 서로가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건 또한 헤어질 운명도 함께 하고 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다. 귀한 인연은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법이다. 살로메는 당대의 뮤즈라고 불리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뭇 남성들 특히 당대 지식인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니체를 비롯해 릴케, 톨스토이, 프로이트 등 적지 않은 당대 유명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그런 남성들 중에는 그녀 의 사랑을 얻지 못해 자살까지 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그녀는 남자들을 영혼을 뒤흔드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녀의 이성관계에는 아주 특이한 성향이 있었다. 그녀는 후에 결혼한 남편인 안드레아스(동양언어학자)와도 일체의 육체적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물론 그 조건으로 결혼을 승낙할 정도였다. 그녀는 육체적 관계와 정신적 관계를 분리시켜서 남성을 만났다. 그녀는 지적 교류를 하는 남성과는 절대 육체적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그녀의 육체적 관계는 은밀하게 이뤄졌고 그렇게 성적 욕구를 충족했다. 그녀가 성적 관계를 맺은 남성들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적지 않은 남성들과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철저하게 지적교류와 성적교류를 구분하며 이 두 영역이 섞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니체 또한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당연히 거절당했다. 그리고 그는 바젤대학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10년 동안의 무국적자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 여정은 그의 집필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는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기존의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망치를 든 모순의 철학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는 돌연 미쳐버렸다. 10년의 방랑과 집필 속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었다. 그 대가였을까? 그는 이후 10년의 암흑기(투병생활)를 보내다 1900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당대에는 그의 철학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슈타인 남작이라는 사람이 유일했는데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세계를 이해해 줄 사람을 간절히 원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고독이 또한 그의 철학을 완성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고독하고 싶지 않지만 고독해야만 사유할 수 있는 모순 속에서 그의 철학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가 망치를 든 시발점이 여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의 철학은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두 가지 영역으로 설명된다. 니체에게 여자라는 존재는 니오니소스와도 같다. 살로메는 그의 디오니소스였고 그녀를 통해 그가 가졌던 아폴론의 세계와 충돌하며 정반합의 모순의 과정통해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킨 것이다.


"남녀(이성) 관계가 이성적으로 설명되지 않잖아요? 철학은 이성의 영역에 가깝죠 하지만 니체의 철학은 감성이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성과 감성의 양면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래서 모순으로 가득하죠 그래서 이해하기가 너무 어기도 하고요"

"..."


사람들은 심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성(異性) 관계는 이성(理性)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성관계는 모순을 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순을 풀려고 그렇게도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힘들어한다. 그건 아마 애증의 모순 관계는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뭐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이야기든 로맨스가 빠지면 재미가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거 같네요 하하"

"하하하"

"하하하"


나의 책 소개는 이렇게 한 바탕 웃음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각자의 책 소개가 모두 끝나고 모임이 마무리되었다. 의미 있는 토론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고 테이블에 남은 소수의 인원들은 잠시 서로 눈치를 보다가 말을 꺼냈다.


"XX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책이 너무 읽고 싶어 지네요"

"그래요 정말, 꿈보다 해몽이라고 책 보다 XX님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네요"


그렇게 다시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 토론은 장장 3시간에 가까운 열띤 토론이었다. 모두가 입을 열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쏟아내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책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끝은 우리의 현실과 삶을 돌아보는 토론이었다. 문학과 과학과 철학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은 서로가 너무도 원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늦은 밤 모두가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의미 있는 대화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되고 또한 의미 있는 추억이 되는 것 같다. 모두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의미 있는 만남이 오늘을 감사하게 한다.

[클래식 클라우드_니체] 이진우 in 별다방



https://www.youtube.com/watch?v=5jE3yPKDm8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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