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쓴다는 것은 육체노동을 의미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정신노동을 의미한다. 이 둘 사이를 오고 가는 삶을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경우가 더 많다. 몸이 고되고 힘들면 뇌는 생각을 하려 하지 않는다. 몸이 격하게 움직일 때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는 법이다.
세상이 블루와 화이트로 나눠진 이유이다. 이렇게 몸과 뇌는 밀접하게 엮여 있으면서 서로를 배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와 정신 사이를 끊임없이 오고 가는 것은 이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Jesus said, "Shame on the flesh that depends on the soul. Shame on the soul that depends on the flesh. "
인테리어 공사(Shopfitting)
나는 목수다. 목수일은 한시도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몸을 쓰는 만큼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직업이다. 몸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탁상공론하며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을 만들어야 하는 자이다. 오프라인 세계에 무언가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오프라인의 육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체력과 근력은 기본이다. 물론 머리가 스마트하다면 체력과 근력을 아낄 순 있다. 그래서 '머리가 나쁘면 몸이 좀 더 고생이다'라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기본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기본(체력)이 안되면 기술(머리)도 무용지물이다. 아니면 체력 짱인 장비와 스마트한 제갈량이 한 뜻을 품으면 된다. 둘이 하나 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내면의 정화
하루종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덕분에 온몸이 피곤하지만 또한 이건 온몸의 근육을 쓰고 그만큼을 칼로리를 태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목수는 살이 찔 여유가 없다. 그리고 매일 땀을 흘리고 물도 자주 마시게 되어 몸속 노폐물이 계속 빠져나가며 몸이 순환한다. 비록 몸 밖은 먼지와 소음과 더러움에 오염되지만 몸속은 오히려 정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몸에 묻은 먼지와 더러움만 보지만 자신의 몸속에 쌓여가는 노폐물과 활성산소 그리고 내장지방(콜레스테롤)은 보지 못하는 법이다. 몸을 죽이는 것은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있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목수일은 항상 사물과 대상에 바라보며 그것의 질감과 재질에 집중하고 그것들을 가공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설치한다. 그러는 동안은 그 어떤 잡념도 스며들 틈이 없다. 하지만 몸이 편안한 상태의 현대인은 온갖 잡념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들이 스트레스임을 알지만 모든 신경이 뇌로 향해 있는 현대인의 일은 온갖 다른 잡념(멀티 싱킹, [원씽 서평 참조])이 수시로 찾아들며 집중을 방해한다.
그래서 머리만 쓰는 일은 항상 머리가 어지럽다. 나도 그랬다. 항상 컴퓨터의 CPU 속도에 맞춰 나의 뇌의 가동 속도를 올려야 했다. CPU(central processing unit)가 듀얼코어, 쿼드코어로 빨라지고 더 많은 멀티 태스킹이 가능해질수록 나의 뇌도 그에 상응하는 성능을 발휘해야만 했다. 하지만 인간은 cpu가 가지지 않은 감정이라는 것과 끊임없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기가 아닌 불안정한 생체리듬과 불규칙적인 음식(영양) 그리고 휴식을 통해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컴퓨터 CPU처럼 일을 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되려고 발버둥 쳤다. CPU처럼 업그레이드되고 빠른 속도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인간이 유능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세상에 머물고 있었다.
몸과 뇌
몸을 쓸 땐 머리는 쓰지 않는다. 목수가 머리를 쓰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일이 엉망으로 변해간다. 무슨 앞뒤 안 맞는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일단 손발이 바삐 움직이며 근육이 수축 이완을 하는 순간에는 뇌신경은 모두 감각(말초) 신경으로 집중한다. 이 말은 사고, 판단, 분석 같은 깊고 복잡한 생각이 아닌 감각(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미각은 아니겠다. 요리가가 아닌 이상) 정보에 집중(센싱 : Sensing)한다는 말이다.
물론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도면(Drawing, ≒ 가상)과 현장(Site, ≒ 현실)의 번갈아 보면서 어떻게 일을 진행해 나갈지 고민을 해야 한다. 이때 깊은 사고와 판단 그리고 분석의 뇌가 작동한다. 일단 그것이 결정되면 이제는 생각 없이 그 결정을 따라 여러 복합적인 반복 동작을 수행해야 한다. 그 과정은 순전히 감각과 경험에 의존한다. 이건 뇌가 똑똑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목수는 경험(다양한 작업환경)과 경력(시간)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목공, carpentry
오래된 숙련공은 그 경험과 감각으로 위험이나 작업 오류를 사전에 감지해 낸다. 이건 뇌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뇌로 인지하고 사고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그것들이 생략된 것이다. 이건 마치 컴퓨터가 사용자에 의해 자주 작동하는 프로그램과 패턴을 주 기억장치(ROM 혹은 RAM)가 아닌 캐시메모리(Cash memory) 혹은 플래시메모리(Flash memory)에 저장해 비슷한 상황에서 주기억장치가 작동하기 전에 자동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최고의 기술자(≒ 리더)
오랜 시간의 경험이 축적된 것이다. 이것이 기술자(숙련공, 장인)와 중간기술자나 데모도(초보 기술자)와 가장 다른 차이점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최고의 기술자는 이런 사고 판단 분석 능력과 경험을 다른 목수에게 잘 전달해서 그들이 작업을 오류와 착오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다른 기능공(전기공, 배관공, 용접공, 타일러, 페인터 등)들이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현장의 상황과 특성을 잘 꿰차고 있어야 한다. 기술만 좋다고 최고의 기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타인도 잘 알게 해주는 능력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리더가 되는 것이다.
과거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신이 세상과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며 또 입으로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고 또 알려주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제자들은 예수를 닮아갔고 예수가 사라지고 나서 홀로 예수의 길을 걸어갔다. 리더(Leader ≒ Reader)는 리더를 만드는 법이다.
리더십
나의 얼마 되지 않는 경험이지만 기술자들 분 중에는 이것을 잘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부족이다. 일이 잘 진행되려면 손발이 되어줄 작업자들이 정확히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함에도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잘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항상 사고가 생긴다. 대부분이 커뮤니케이션 부재로 인한 것들이다. 이건 항상 바쁘고 번거롭다는 그리고 자신이 배워온 데로만 하려고 하는 관성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되고 경험이 있는 중간이상의 기술자는 '어?' 하면 '아!'하고 빨리 알아먹지만 초보자들은 그게 쉽지 않다.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이해와 판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만 효율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일터에서 그들의 역량상승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또한 그런 막무가내식의 일 속에서 보람과 성취를 느낄 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들은 떠난다.
"야! 현장에 도착하면 먼저 콘센트를 찾아서 배터리 다 충전하고 기본공구(임펙드릴, 톱, 톱다이등)들 다 세팅하고 그날 작업 뭐 할지 물어보고 필요한 소모품(스크루, 못등)들 꺼내놓고 놓고 커피 물 끓여라~ 알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안전화만 신고 처음 만났던 우락부락한 목수가 나에게 처음 가르쳐 준건 기본이고 준비였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낸 것이 습관이 되면 이제 항상 그렇게 하게 된다. 그래서 시작이 중요하다. 66일간(약 2개월)의 반복이 습관을 만든다. 하지만 처음 66일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그 이후의 그의 기본자세를 만들어 버린다. 이 기간을 견디면(자의든 타의든) 보통 습관이 형성된다. 나는 다행히 험악한 목수를 만나서였을까 그는 나에게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계속 반복시켰다. 그땐 그게 너무 싫고 짜증 났지만 나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것들이 작업효율을 올리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냥 무턱대로 일부터 하려고 덤벼드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보기 쉽지 않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고 느려 보이는 듯해도 나중의 견고함과 훌륭함은 모두 그 미약하고 번거로운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비록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7 -
망치와 연필 & 글짓는 목수
보이지 않는 능력 = 숙련
이런 경험의 축적과 감각의 탁월함은 글(말)과 수치로 표현하기가 참 애매모호하다. 그래서 기술자(숙련공)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같이 일을 해보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 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 바닥에는 너도 나도 기술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입심이 세고 기가 센 사람이 기술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현장에서 설치다가 사고가 터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말 잘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목수를 본 적이 없다. 목수는 목사가 아니다.
물론 기술자라고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다. 특히 목수일은 딱히 정답이 없기에 여러 가지 방법과 도구를 사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여러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당연히 실패를 더 많이 맛보게 된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실패를 많이 해 본 목수는 다양한 경험치를 쌓게 되는 것이다. 실패가 결국 실력이 된다.
사고를 쳐도 스스로 수습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기술자이다. 사고만 치고 수습이 안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 바닥엔 사고만 치고 도망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건물이 기울고 물이 새고 금이가고 자빠지고 하는 것이다. 이건 미세한 변화의 축적의 결과는 한 어느 순간에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라서 사람들은 바로바로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건 뒤늦게 다가올 엄청난 재앙의 전조이다. 우리의 삶이 순간순간(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항상 집중하고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목수는 최소 10년 이상 하지 않으면 기술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20년을 얘기하기도 한다. 목수는 너무 다양한 상황과 공구와 자재를 다루는 직업이라 숙련도가 올라오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급여가 오르는 것도 느리다. 그러니 하려는 자들도 많지 않다. 힘들고 느리고 더럽고 위험한 일에 시간을 쓰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일은 많은데 사람은 항상 부족하다. 그 부족한 사람들은 비숙련공(초보자 = 데모도)들의 머릿 수로 채워 넣으려 하지만 그들은 그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떠나간다. 이건 비단 건축 현장에서 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삶 곳곳에는 수치(금액과 통계)로 언어(말과 글)로 정량화 정성화 시킬 수 없는 많은 능력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역량은 눈에 잘 보이지도 표현되지도 평가하기도 쉽지 않기에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걸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힘들게 몸으로 축적되는 숙련기술자들은 점점 사라져 간다. 빨리빨리의 단기 성과에만 혈안 되어 있는 한국은 그 현상이 더 심하다.
읽고 쓰는 시간 (Reading and Writing)
나는 매일 글을 쓴다. 물론 그렇다고 매일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 나도 육체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휴일의 편안한 몸 상태에서는 최고의 몰입으로 글이 날개 돋친 듯 써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래서 항상 읽고 쓰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왜냐 이 습관이 내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그럴 시간에 도면 한 번 더 보고 유튜브에서 목공 기술하나 더 보고 공구나 한번 더 만져보는 것이 낫다고 물론 틀리지 않는 말이다. 빨리 기술을 향상 시키려면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일도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하려면 기술 하나 더 익히는 것보다 사람 한 명 더 이해하는 법을 익히는 것(인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얻으면 일은 따라오게 된다. 하지만 사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한다. 독불장군(독재)은 뭔가 빠르게 만들어내고 가시적인 성과를 불러오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재앙의 불씨가 자라고 있음을 과거 역사와 경험으로 알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것이 반복되고 멈추지 않음은 어쩌면 '역사는 반복된다' 진리가 변치 않음이 아닐까.
영화 [서울의 봄] 중에서
"생각할 시간이 어딨어! 그냥 시키는 데로 닥치고 빨리 해!"
그렇다. 하루 이틀(한두해)하고 돈 좀 벌고 그만할 거면 그러면 된다. 하지만 오래도록 할 거면 밸런스를 맞추고 서두르면 안 되는 법이다. 몸을 쓰는 일을 하면서 밤낮없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럼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닌데 그냥 기계처럼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이런 건축일은 제조업처럼 자동화와 기계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육성하고 양성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이 일도 제조업처럼 인간을 기계화하려 한다. 물론 더 많은 돈을 단기에 벌려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육체에만 끌려다니는 정신이 피폐해지기만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닌가? 그런 자들이 품은 피폐함과 화가 다른 이들의 밸런스도 무너뜨리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몸이 지치면 신경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건 몸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블루가 블루 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육체와 정신은 서로 배격하지만 우리가 이 육체와 정신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것이 어찌 보면 인간세상이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세상은 이 두 세계를 나누어 놓고 그것을 전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사람이 편향적으로 변해가는 이유이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효율과 속도에만 집중하면 빠르게 발전하지만 인간도 효율과 속도만 강조하면 인성이 사라지고 기계화가 진행된다.
목수 중에 진정한 리더를 찾아보기 힘든 것은 스스로(혼자) 빠르고 잘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수가 커뮤니케이션(관계, 인문, 교양) 능력을 갖추려 하면 처음에 그게 느린 듯 보일지 모르지만 그 리더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나중에는 엄청한 시너지를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 그건 당장 내 삶(생계)의 나아짐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나의 실력을 인정받아 급여를 올리고 직급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삶을 부유하게 해야 하지만 부에 삶을 내어준다. 삶과 부와 교환한다.
나는 "삶=사람+사랑(관계)"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사람과 관계를 떠날 수 없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는 배움과 생각을 통해서 발전하고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과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내가 매일 몸을 쓰고 또한 글을 쓰는 삶을 살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둘 사이를 오고 가는 삶이 가장 인간다운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