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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an 11. 2024

두 종류의 예술가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 네 번째 -

"**씨, 저기 여기 좀 와봐요"

 

새벽부터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출근하려는 나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또다시 일장연설 같은 잔소리가 시작된다. 할머니와는 얼굴을 대면하면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은 불만과 불평 그리고 남의 험담이었다. 그게 아니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한 자랑이다. 이젠 조금씩 지쳐간다. 처음에 며칠간은 그냥 웃으면서 계속 들어주었다. 한 번 두 번 들어주니 일층으로 내려올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끊임없이 말을 한다. 나도 내 일을 해야 하고 음식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데... 그녀의 말은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지 못한다. 그녀의 말을 경청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밥을 먹어도 밥을 먹는 건지 무얼 하려다가도 그녀의 말을 듣다가 내가 할 일을 잊어버리기가 일쑤다. 아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머니, 이거 전자레인지에 옥수수가 썩어있는데요"


그러다 음식을 데우려 열었던 레인지 안에 비닐랩이 씌워진 옥수수가 발견되었다. 레인지로 옥수수를 돌리고 며칠을 그 안에 두었던 모양이다. 썩어있는 옥수수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다. 그런데 그걸 또 버리지 않고 성한 것들을 칼로 도려낸다. 분명 또 어디다 보관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또다시 비좁은 냉장고 속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어머니, 멜론이 썩은 거 같은데요"

"뭐?!, 아니 이게 왜 이래?"


부엌 한 구석에 놓여있던 멜론은 마치 장식품인냥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있더니 기어이 밑바닥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썩은 물이 흘러내려 부엌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다시 커다란 수박 친구가 자리 잡았다. 그다음은 그 수박 차례일 것이다. 이곳의 음식들은 대부분 먹어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녀의 집안은 쓰지 않는 물건들과 먹지 않는 음식들로 가득하다. 냉장고가 4개인데 그 안에 있는 대부분은 그녀의 음식이다. 몇 년은 놔둔 듯 얼어있는 빵들과 수많은 용기 안에 들어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은 살얼음이 낀 채 오래 동안 빛을 보지 못한 듯하다. 그리고 갖가지 조미료와 소스 통들은 이미 유통기간이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머니, 이것들은 버리시죠, 유통기간이 지났는데요"

"아니,. 왜 버려 그걸? 다 쓸데가 있어 놔둬! 손대지 마."

"네?!"

"어머니, 냉장고에 공간이 없는데요. 제 것은 어디다 넣어두죠?"


한 두 번 그녀의 음식들과 물건들에 대해 얘기를 꺼낼 때마다 정색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얘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음식을 넣을 공간이 없었다. 내가 얘기하자 그제야 그녀는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고민을 시작한다. 그러다 몇 개의 용기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조그마한 공간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꺼낸 용기들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게 냉장고 4개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용기들은 다시 나의 공간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결국 냉장 혹은 냉동음식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손이 큰 그녀는 다 먹지도 쓰지도 않을 것들을 계속 사다 날라서 집에다 챙여둔다. 집이 마치 창고 같다. 부엌에는 쌓여가는 음식들과 용기들과 그릇들이 한가득 올려져 이젠 무얼 올려놓을 자리가 없다.

무엇이 그녀에게 이 많은 것들을 채워 넣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화가이다.


방을 구하려 처음 그녀의 집에 방문했을 때를 기억한다. 적지 않은 나이임(70세는 넘은 듯)에도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는데 적잖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모양이다. 일반 다른 할머니들과는 다른 세련된 의상과 짙은 화장으로 단장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마치 자신이 일반인이 아닌 예술가인 것을 알리려는 듯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예술가는 겉모습부터 남달라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듯했다.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집안 곳곳에 놓인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집안 한쪽 켠에는 화실이 있었고 그곳에는 수많은 그림들이 겹겹이 놓여있었다. 얼마 전에 전시회를 했다고 했다. 난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예술에 대한 관심은 누구보다도 많다. 무지한 관심은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 법이다.


그림을 통해서 생각을 표현하는 그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했다. 좋은 기회라 생각되었다.

작가와 화가의 만남...

어쩐지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글감들을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는 다른 것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거래란 없는 법이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으로 만족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때 나는 물어볼 것이다. 그녀가 무엇을 상상하며 그리는지...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그녀가 그리는 모습을 한 번도 못 적이 없다. 내가 일을 나가서 못 본 걸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그림은 하나도 늘어나지 않았고 화실에는 내가 처음 왔을 때 그대로였다. 그녀는 밖에 나가 쇼핑을 하는 것을 제외하곤 항상 집안에 머무는 듯했다.


나는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집안에 부서지고 고장 난 것들을 고쳐주며 그녀와의 관계에 적잖은 신경을 쏟았다. 어느 정도 친밀감이 생기자 그녀는 나에게 많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건 대화라기보다는 마치 라디오 같다고 해야 할까? 쌍방향이 아닌 one-way(한 방향) 말이었다. 나는 그저 그때그때 적절한 표정과 제스처를 보이며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것일 거라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다. 2층 나의 옆 방에 사는 청년에 대한 불평과 불만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의심과 험담들을 나에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이사 온 이후 일 때문에 바쁘고 마주칠 일이 없어 그 청년과 이렇다 할 대화를 한 번도 나눠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를 통해서.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심어준 그의 인상은 이미 쓰레기가 되어있었다. 그녀가 심어준 그의 인상이 내가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 그녀는 결국 그를 쫓아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많아 기억하기도 힘들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그 청년과 할머니의 날 선 냉전이 이어지다 결국 전면전으로 치닫았고 할머니는 경찰을 불렀다. 그는 강제로 집밖으로 퇴거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아니, **씨처럼만 하면 좀 좋아?!"


그녀는 내가 마치 적진에서 만난 아군인 것 마냥 나에게 모든 것들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동지가 되었고 그 청년은 적군이 되었다. 나는 적이 누군지도 모른 채 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의 현실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가진 자(집주인)의 편에 붙어 내 주거의 안정을 확보하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 이사를 가고 싶지 않았다. 벌써 12번째 이사였다. 어차피 그 청년은 이 집을 떠나야 할 사람이었고 나는 남겨질 사람이다. 그가 적이 되었지만 그 적은 내가 적인줄 모르면 그뿐이다. 나는 말을 아끼고 할머니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다. 들어주기만 해도 같은 편이 되는 이상한 현실이 고마웠다. 입장을 취하지 않았는데 입장이 생긴 것 같아지는 현상이 신기했다. 정말 입장을 취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입장이 없으려면 고독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그 청년에게 없던 미안함이 생겨난다. 이건 아마도 죄책감이 만들어낸 것이리라.


그녀와의 대화, 아니 일장연설이 계속되면서 나는 그녀의 이야기의 방향과 주제를 전환하고자 노력했다. 이왕 들어줘야 한다면 분노나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이 아닌 다른 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을 듯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만나셨어요?"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이 큰 집(방이 7개, 화장실이 3개인 2층 단독 주택)을 얻어 혼자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자녀들은 모두 출가해 각자의 가정을 일구고 있었다. 집안 곳곳에 보이는 가족 사진들을 통해 그녀의 가족 구성원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덩치가 산만한 백인 할아버지 옆에 있어 유난히도 작아 보이는 할머니의 사진을 통해 동서양의 만남 그리고 러브 스토리를 떠올리게 했다. 소설가는 항상 그렇듯 스토리를 꿈꾼다.


"우리 아빠는 영국에서 잘 나가는 방송 기술자였지"

"아빠요?"


그는 사별한 남편을 '아빠'라고 불렀다. 처음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보니 정말 '아빠'라는 호칭으로 남편을 불어왔던 모양이다. 아빠(남편)는 자신을 아이 돌보듯 대해줬던 모양이다. 그녀의 말로는 남편은 한국에 처음 컬러 TV 방송이 도입될 때 영국에서 방송기술자로 한국에 왔다고 했다. 그때 남편이 방송국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면담도 했다면서 아주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사진이 어디 있는데 어지러운 방에서 찾으려다 도저히 찾기 힘든지 포기해 버리고 다시 남편 자랑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정작 할머니 자신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쨌든 둘은 한국에서 만나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그리고 호주까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모양이다. 그리고 호주에 와서 정착한 뒤 그녀는 미술을 시작했다고 했다. 왜 미술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동기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외조와 케어 속에서 자라온 아기 같은 느낌이랄까. 그녀와 얼마간 같이 있으면서 그녀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라는 현실의 바람막이 속 온실에서 자란 듯한 느낌이었다.


"자기는 무슨 일 해?"

"목수일 해요"

"그래?! 어머 잘됐네, 카펜터도 뭐 나랑 같은 아티스트지 뭐"


나의 직업을 듣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던 그녀를 기억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할머니의 소소한 부탁들은 집안 곳곳에 손봐야 할 것들에 대한 것이었다. 집이 큰 만큼 손봐야 할 곳이 많은 법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 것처럼... 그녀는 집도 크고 그 안에 가진 것도 너무 많은 듯 보였다. 문제는 그 가진 것들을 이제 모두 기억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내 핸드폰이 어딨 더라?"


소파 위에 쌓여있는 옷더미 아래에서 진동 소리가 들린다. 전화기를 찾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내가 전화를 걸었다. 온갖 물건들로 뒤덮인 집안은 그녀의 머릿속처럼 복잡해 보였다. 복잡함과 어지러움 속에서 머물면 생겨나는 것은 부정적인 것들일 것이다. 아마 그전에는 이 어지러움을 정리하고 복잡함을 처리해 주는 '아빠'가 있었다. 그땐 몰랐을 것이다. 왜냐 그냥 당연한 것이었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여겼을 것이기에.. 이젠 그가 떠났다. 이 복잡함과 어지러움을 치울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타인이 들어왔다. 타인은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고 함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이 아빠가 되어주길 바랐지만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타인이 아빠 같지 않음을 타인에게 따져 묻는다.  


"**씨도 여기가 불편하면 다른 데를 알아보던지..."


옆 방 셰어생이 나간 후  이젠 내가 그녀의 적이 되어 가는 듯했다. 그녀는 예술가답게 예민했다. 이젠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집 안에서 마주치면 잔소리가 시작된다. 아마 그전에는 그 청년이 그랬을 것이다. 그가 집에 오면 방 안에서 들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일까? 그래서 나도 이제 그녀와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 일찍 나서고 늦게 들어간다. 집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를 거슬리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저 돈을 가져다주는 아빠를 원했던 것일까.

그녀가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렸던 건 과도하게 가진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는 그리지 않는 그녀는 더 가질 수 없기 때문일까...


"두 종류의 예술가가 있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예술에 투영하는 예술가와 자신이 과도하게 가진 것을 예술에 투영하는 예술가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불안의 서]

오디오영상 - 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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