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
요즘 한국에서는 군인들에 대한 처우가 논란이 될 때가 많은데, 미국 쪽 항공사는 탑승 순서도 군인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땡큐 포 유어 서비스'라는 말을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단순히 월급 올려만 올려줄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군인들에 대한 존경이 필요한 부분이다.
말 그대로 군인들의 젊음을 갈아 넣는 서비스(?) 덕에 우리가 마음 놓고 편하게 살 수 있다
아침에 공항에 가려고 탔던 공항철도가 지상으로 올라 와 달리자(계양쯤) 갑자기 그냥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시애틀까지는 9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입국심사는 여전히 빡쎄고 내 앞에서 세 명이나 세컨더리로 잡혀 가는 걸 봤다.
오래 붙잡혀 있고 이거 저거 꼬치꼬치 캐묻길래 차분하고 간단하게 대답해서 일단 통과.
다음 주에 갈 랠리스쿨에 사전답사도 다녀오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정을 보냈다.
물가가 너무 올라 예전에 비해 거의 따블로 올라 버린 모텔값을 포함해 생활물가가 살벌한 수준이다.
이미 예산은 초과된 지 오래다.
기름값은 진짜....
렌터카는 쏘울이 나왔다.
역시나 폼은 안 나도 쓸만하다.
흔히들 미국 하면 설렁설렁한 느낌이 있지만 교통 시스템은 매우 효율적이고 짜임새가 있다
워낙에 자유분방한 나라여서 그런지 몰라도 공권력에는 외국인도 예외가 없다.
오늘 다녀온 곳은 멕시코 출신 클래식카 마니아인 호세 아저씨가 운영하는 트리플 X와 롤스로이스 스페셜리스트인 제이콥이 운영하는 더 롤스 컬렉션.
매우 친근하고 이거 저거 정감 있게 챙겨 주시는 호세 아저씨는 나이가 좀 있지만 자동차 안에서는 모두와 친구다.
트리플 X는 루트 비어와 버거가 유명한 곳인데 루트 비어는 내 취향이 아니고(물파스 먹는 맛) 기름기 가득한 버거는 정말 맛있는데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미국의 보통 음식 한 끼는 내가 이틀 동안 먹는 양과 비슷하다.
나는 문화인이라 소식(?)을 한다.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먹고 있는데 호세 아저씨가 오더니 '버거를 잘라먹다니' 하면서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살짝 혼나기도 했는데 '우리 버거는 양손에 들고 질질 흘리면서 먹어야 한다'는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트리플 X는 오래된 물건이 가득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 자체가 역사가 된 모습인데 한국에서 단순히 오래된 물건으로 치덕치덕하면서 빈티지나 전통을 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낧고 때가 묻은 것과 인위적으로 꾸민 것은 차이가 크다.
예전에 자동차생활에 한 번 소개된 롤스로이스 스페셜리스트인 제이콥이 운영하는 더 롤스 컬렉션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작업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약 400대 정도가 제이콥의 손을 거쳐 갔는데 그는 딱 봐도 유쾌한 장인 느낌이 가득하다.
역시나 BMW와 폭스바겐이 각각인수한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여전히 예전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독일 메이커는 영국 메이커가 추구하는 고급스러운 감성을 이해 못 한다는데 함께 격하게 동의.
1976년식 레이스의 내장재를 작업 중이었는데 도어 안쪽 트림의 맨 윗부분 씰이 진짜 나무로 제작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베니어로 작업하는 방법도 듣고 현지가 아니면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저녁때 숙소에 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는데 금발의 아가씨가 기름이 필요하다며 현금으로 줄 테니 2갤런만 넣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주유소도 이미 문을 닫아 그 언니를 태우고 다음 주유소까지 가서 기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차 있는 곳까지 대리다 줬다.
그 언니 차 운전석에는 도둑놈 같은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서울보다 북반구에 가까워서 그런지 해가 길고 시간이 빠르게(느낌적인 느낌으로다) 흐르는 것 같다.
저녁 8시가 넘어도 이사콰는 살짝 어두운 정도다.
렌터카로 나온 쏘울은 여전히 잘 달렸지만, 오늘은 사무엘의 메르세데스-벤츠 SL 380을 같이 타고 다녔다.
원래 예정이면 쏘울 대신 알파 로메오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결국 보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여행 온 외국인이 자동차 보험을 현지에서 가입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알파 로메오가 컬렉터 비클로 그레이드가 바뀌면서 추가 보험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난주에 알았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보험 가입은 불가능.
외국인이 현지인의 차를 탈 때 보험을 가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워싱턴 주 기준) 국내에도 해외 자동차 사고를 커버하는 보험은 없었다.
저녁은 이번 맘모스 프로젝트, 자동차 매냐 미국 한 달 살기의 최대 스폰서인 이사콰 맛집 테리야키 비스트로에서 살몬 테리야키를 먹었다.
비싸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2주 정도 지낼 호텔은 냉장고도 빵빵하고, 다년간 해외 출장으로 다져진 어딜 가도 시차 적응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내 몸뚱이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텔 TV에서는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라는 내용의 닷지 램 픽업 광고가 나온다.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라는데 엔진이 V8 헤미다.
여러모로 기준이 다른 듯.
어제는 날씨가 정말 좋았다.
꽃가루가 함박눈처럼 내리긴 했지만 아주 화창했는데 오늘은 흐리고 비가 간간이 내렸다.
커트 코베인의 고향이라 그런지 이곳에서 내리는 비는 추적추적하다.
공공 화장실 벽의 글귀가 아주 giga mc히다
이거 저거 준비해 주고 고생하는 시애틀 혈맹 Samuel Chang에게 깊은 감사를....
*안타깝게도 트리플 X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호세 아저씨는 몇 년 전부터 후계자를 찾았는데 결국 실패한 모양이다. 트리플 X는 이사콰 근처에서 자동차 마니아들이 많이 모이는 랜드마크 같은 곳이었는데 여러모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