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
시애틀의 날씨는 좀처럼 예측이 안 된다.
미국 내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고 자살률이 높은 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쌀쌀했다.
외국 영화에서 보면 산속에서 비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장면을 간간히 볼 수 있었는데 군대를 다녀온 입장에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뼛속까지 바람이 들고 급격하게 떨어지는 온도를 몸으로 느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나마 다행은 건조한 기후라 비가 내려도 꿉꿉하지 않고 그치면 금방 마른다.
숙소가 있는 커클랜드는 어제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는데 오전에는 쌈웰(Samuel Chang)의 소개로 히데 아저씨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일본의 버블 세대인 히데 아저씨는 1990년대 미국에 와서 현재는 일본과 자동차, 바이크 등 무역을 하신다고 한다.
원래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나는 쌈웰과 내기를 했다.
쌈웰은 나에게 '미국에 있는 동안 한식을 먹자고 하면 3,000 달러를 내셔야 합니다' 했는데 나는 해외에서 한식을 찾은 적이 딱 한 번(중국) 있다.
그 외에는 일본이든 중국이든 홍콩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외국에 있을 때 한식은 전혀 먹지 않았다.
한식 생각도 전혀 나지 않는다.
히데 아저씨는 점심으로 한식을 먹자고 했는데 이건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니까 무효로 하기로 했다.
히데 아저씨와 한국의 사정이나 자동차 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부테라 모터스는 폭스바겐 딜러를 정비소로 전환한 곳인데 이곳도 재미있는 차가 꽤 많았다.
비만 안 오면 좋겠지만 바닥은 온통 젖었고 여기저기 이끼가 가득해 잠깐 둘러보고 맑은 날 다시 오기로 했다.
오후에는 소도모터의 대표인 아담을 만났다
아담을 픽업하러 간 곳은 파티가 열리는 더숍이라는 곳이었는데 나는 이곳에서 아담을 픽업해 차량 보관소에 함께 방문했다.
신기한 했던 점은 워싱턴 호수 건너편은 날씨도 덥고 비도 전혀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독일과 프랑스 국경을 넘었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보관소에서 서류를 제출하고 토요일에 있을 이벤트에 아담이 타고 갈 차가 있는 창고를 찾았다
골동품과 자동차가 함께 있는 창고에서 아담과 나는 MG TA의(계기판이 무려 예거다) 시동을 걸려고 했으나.....
배터리가 바닥이라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점프 케이블도 없어 여러 가지 시도 후(정말 무식하고 위험한 방법) 시동을 걸긴 걸었다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시동을 걸었는데 문제는 카뷰레타 방식이라 한 동안은 초크를 당기고 액셀을 밝고 있어야 했다.
더 숍으로 이동해 아담과 함께 간단하게 세차를 하고 토요일에 열리는 아반트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라이빗 파티에 참석했다.
아담은 파티가 시작되기 전 더숍의 스토리지 공간을 안내해 주었다.
일반적인 미국 자동차 매냐들과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아담은 시트로엥과 르노 같은 차들을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이 소유한 GT-R을 도난당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며칠 만에 찾기도 했다.
더숍의 개러지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유럽차, 미국차 가릴 것 없이 차곡차곡 포개진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프라이빗 파티에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다.
동양인은 나 하나였는데(나중에 동양인이 하나 더 아주 잠깐 있었다) 옆에 있던 여자분이 먼저 말을 걸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 분은 1967년식 선빔 타이거를 남편과 타고 왔는데 이 차는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언니가 이 차를 상속받았는데 유지가 어려울 것 같아 인수했다고 한다
선빔 타이거는 상태가 정말 좋았고 이 분(금발의 백인 여성)과도 정말 잘 어울렸다.
이 분과는 꽤 오랜 시간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2 외국어부터 수동과 자동의 차이점 그녀의 가족 얘기 등등.
안타깝게도 토요일에 열리는 아반트에는 그녀의 남편만 참석한다고 했다.
파티에 참석 후 딕스에 들러 쌈웰을 잠깐 만나 일과를 보고한 후 모텔에 도착했을 때는 또 다른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름 장기 투숙객이라 프런트 직원들과도 친해져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이 동네는 눈만 살짝 마주 쳐도 웃으면서 헬로 하와 유 정도를 건넨다) 내 방으로 돌아오는데.....
나이 지긋한 백인 아저씨가 투스카니의 헤드라이트를 뜯어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옆에 가서 물어보니 안개들을 연결하려고 하는데 커넥터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살펴보니 안개등 전선과 커넥터가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전선이 두 가닥 나와 있는데 이게 +인지 -인지 구분도 안 되고 자칫 잘못하면 쇼트가 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내 차를 관리해 주는 튠게라지 장형(장경환)에게 전화해서 몇 가지 물어보고 전선의 끝부분을 자르고 커넥터에 직접 연결해 안개등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이 분은 할로겐과 LED도 구분을 못 하는 분이었다.
작업 시간은 양쪽 다해서 10분 남짓.
백인 아즈씨(술 냄새가 살짝 남)가 어메이징을 외치며 '너님 뭐 하는 놈임? 미케닉임?' 하고 물었다.
나는 현대 드라이빙 아카데미에서 지급받은 퍼런색 후드를 입고 있었는데 그걸 보더니 '오우~현다이~~' 하시더라는.....
원래 배선이나 전기, 전자 계열은 웬만해서는 안 만지는데 간단한 작업이라 금방 끝났다.
이곳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신경 쓸 일도 전혀 없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다.
금연 표지판이 없으면 실내를 제외한 아무 곳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고 실내든 실외든 마스크를 쓰지 않는 점만 생각해도 엄청 편하게 와닿는다.
저녁 무렵 비가 그쳤지만 주최 측은 공지를 통해 이벤트 취소를 알렸다.
아침 일찍 다른 이벤트에 참석하기로 일정을 변경했고 오후에는 시애틀 외곽의 와이너리에서 열리는 아반트에 초청자 자격으로 참석한다.
아반트는 입장료만 해도 20만 원이 넘는 이벤트인데 어떤 느낌일지 상당히 궁금하다.
이들이 2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잡지인 아반트도 상당히 정성스럽고 내용도 매우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