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
미국에 온 이후 가장 먼 거리를 이동했다.
무려 4시간을 이동했는데 구글맵의 '269마일 직진 후 다음 안내 입니다'라는 안내가 들렸다.
오늘은 새벽 일찍 커클랜드를 떠나 사마미쉬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했는데 최종 목적지는 클래식카 레이스가 열리는 곳인 스포캔이라는 동네였다.
날씨가 좋을 것 같았으나 요 며칠 사이 비구름을 몰고 다니게 되었다.
후드도 안 챙겨 왔는데....
269마일이 동안 도심, 울창한 숲, 황량한 사막, 거대한 강 등 다양한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압권은 역시나 날씨.
맑은 사마미쉬를 떠나 90번 고속도로에 올라 한 시간 쯤을 달리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중간 잠깐 멈추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중간에 기름을 넣으러 들어갔던 쇄퇴한 작은 마을은 내가 생각했던 미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낮은 인구밀도, 부족한 인프라, 인터넷과 GPS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지역, 느린 LTE 등 미국은 한국에 비해 불편한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
스포캔에 도착했을 때 역시 비는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비를 맞으며 클래식 레이스를 관람했다.
주최측의 초대로 참석한 레이스 트랙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이유인즉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대부분의 팀이 철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은 팀들은 그들 나름이 재미있는 레이스를 펼쳤다.
코요테 엔진을 올린 포드 데이토나 쿠페 레플리카, 팩토리 파이브 쉘비 레플리카, 알파 로메오 줄리아 스프린트 GT, MGA, 트라이엄프 TR2, TR4, TR6까지 오래된 차들이 트랙을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비가 내려 노면이 미끄러워지만 주행할 때 마다 발생하는 물보라는 드라마틱했고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1967년식 쿠퍼를 타는 분은 영국의 클래식카 레이스와 굳우드에도 참가한 베테랑이었고 데이토나 쿠페 레플리카로 레이스에 참가한 플로리다에서 온 나이 지긋한 여성 분, 캐나다 뱅쿠버에서 온 분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중간에 운 좋게도 MG 미젯 경주차의 운전석에 않아 볼 기회도 있었다.
MGB와 미젯은 딱 나에게 맞는 사이즈다.
클래식카 레이스와 함께 열린 F4 레이스는 젊은 친구들의 풋풋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폭우로 중간에 중단되기도 했다.
주최 측으로 부터 소개 받은 16살의 한 선수는 다음 목표로 F3나 2000cc 급 포뮬러가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높은 비용 때문에 스폰서를 구하는 게 먼저라는 현실적인 얘기를 했다.
레이스 관람 후 들른 스포캔의 다운타운에서는 드뎌 아무 혜택이 없는 한국인 프리미엄이 있을 듯 했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정작 내 사진은 거의 없는데 이번에는 시애틀과 워싱턴 일정을 잡아 준 Samuel Chang 이 이런저런 사진을 많이 찍어 주었다.
비가 내려 아쉬웠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다.
오래된 차들이 트랙에서 빡쎄게 구르는 걸 보니 즐겁기도 했고 꾸밈없는 오너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니 역시 레이스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 때는 켄워쓰에 근무하는 마이크의 집을 찾아 그가 그동안 수집한 수집품과 그의 자동차 컬렉션을 볼 수 있었다.
손수 짓고 꾸민 개러지는 남자의 공간 그 자체.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고증한 소품들에서 그의 정성이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마이크는 투병 중이었는데 빨리 완쾌되기를 기원한다.
마이크 덕에 수요일에는 켄워쓰에서 주관하는 보도발표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미국의 운전자들은 한국의 운전자들 보다 여유가 있다.
철저한 1차로 주행과 원형 교차로 통과는 정말 빡쎄게 지키고 깜빡이를 켜면 자리를 만들어 준다.
좀 오바스럽긴 하지만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인사를 먼저 건내는 모습도 부러운 부분이다.
미국 기름값?
거의 서울에 육박하거나 비싸다.
오늘 시애틀로 돌아올 때 들렀던 주유소는 갤러당 무려 5달러 99센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