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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내는 편지(7)

자동차 마니아 미국 한 달 살기 

by 자칼 황욱익 Mar 17. 2025

모텔 구성원으로 전혀 어색하지 않다.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에는 어디를 가도 나를 외국인으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외모는 이방인이지만 비교적 적응이 빠르고 다른 사람들도 그 동네 좀 오래 산 유학생 정도로 생각할 때가 많다. 

다행히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일도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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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내고 있는 모텔은 커클랜드 외곽의 조용한 곳이다. 

독특한 구조인데 객실문을 열면 바로 노출된 복도가 나온다.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이 도망 다니며 지내는 딱 그런 모텔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네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도 부담스러웠고, 땡큐와 예스 플리즈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들렸다. 

며칠 지나니 다른 장기 투숙객들과 마주치거나 프런트 직원들과 자주 마주쳤는데 지금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얼굴 보면 '하우 아 유?' 하고 '메이 비 파인'이라고 하면 그들은 '프라블럼?' 할 때도 많다 

이럴 때는 학교에서 매운 모범 답안인 '파인 땡큐 앤 유?'를 써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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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타코마에 있는 그리옷스 개러지와 그리옷스 모터스를 방문했다. 

미국 클래식카 업계의 거물인 그리옷스 회장을 직접 만나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그의 자동차에 대한 철학과 베푸는 삶에 대해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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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차고도 직접 보여 주었는데 란치아 스트라토스도 볼 수 있었다. 

지금껏 유럽과 일본에서 스트라토스 레플리카는 꽤 많이 봤지만 오리지널은 처음이었다. 

트렁크에는 발터 뢸의 싸인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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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옷 회장의 컬렉션에는 나의 드림카인 페라리 250GT 베를리네타 루쏘와 250 SWB도 있었는데 이 차들을 가까이에서 여기저기 만져 보고 운전석에 않아 볼 수 있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오래된 가죽 느낌과 운전석 내부의 오래된 냄새에 거의 취하다 시피했다.  

오늘 계 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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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운영하는 그리옷스 모터스는 클래식카에 대한 모든 부분을 다루는 곳이다. 

차종을 가리지 않는 풀 리스토어부터 시작해서 커스텀, 도색 작업까지 가능한 그의 샵은 규모도 규모지만 작업 수준이 그야말로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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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각 분야 테크니션이 작업 중인데 동행했던 Samuel Chang의 말에 의하면 오래된 차들의 도색 상태까지(깔끔하지 않은 도장면) 완벽하게 복원한다고 했다. 


사실 이곳은 지난주 토요일에 한 번 왔던 곳이다. 

카페인 앤 가솔린 이벤트를 보러 왔는데 그때는 그리옷스 개러지 내 카페테리아에서 커피와 다양한 종류의 도넛이 무한리필로 제공되었다. 

물론 넓디넓은 잔디밭과 주차장도 모두 개방했고 일 년에 약 50번 이상의 이벤트에 장소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리옷 회장은 이런 부분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쉽고 즐겁게 즐기는 것을 돕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지난주에 봤던 모습이 그대로 매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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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러지와 리스토어 샵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있는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는 머플러에 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리옷 회장은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 모두 즐겁게 와서 즐기면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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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 렌터카로 주행한 거리가 오늘 1000마일을 넘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도 만나고 그중에는 진성 카가이도 있고 마케팅 쟁이도 있었다. 

카가이들을 만나 한 수 배우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멋진 차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를 정도다. 

순수 진성 카가이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본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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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이곳이 점점 편해지는 이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나이나 성별, 국적, 인종, 배경,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사가 맞으면 나이나 성별, 인종 등등 상관없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한국처럼 좀 친해졌다고 몇 살이냐? 하는 식의 서열 정하기는 이곳에 없다. 

물론 내 영어가 개판이라 알아듣기는 쉽기 않지만 대부분 뜻은 통해서 다행이다.

또한 자동차 업계 사람들끼리의 끈끈한 유대감도 부러운 부분이다. 

같은 지역에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돕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부분이다.  

암턴 여러모로 좋은 얘기도 많이 듣고 좋은 차도 많이 구경하고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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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있는 커클랜드로 돌아오는 길에 호세 아저씨 가게에 들러 체리 밀크 쉐이크를 때렸다. 

한국에서 가져간 스티커와 기념품을 주니 매우 기뻐하신다. 

이제 고작 두어 번 봤는데 호세 아저씨는 아주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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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는 워싱턴 호수에 가서 바람도 쐬고 그럭저럭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다들 여유롭게(금전적인 게 아닌)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지만 사람은 자신만의 길에 충실할 뿐이다. 

내일은 한국에서 또 다른 지인이 도착한다. 

이렇게 되면 워싱턴(시애틀) 지역에서 3명의 카가이가 돌아다니는 일정이 완성된다.


아쉬운 건 늘 시간이다. 

좀 더 여유가 있고 기간이 길어지면 더 재미있는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이미 예산은 빵꾸 났다. 

그러나 일주일을 여기서 보내는 동안 그 비용 이상의 것들을 건졌고 나의 부족한 내공도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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