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밀리아
제가 서울을 출발한 날짜는 2023년 12월 1일입니다.
오후 비행기였는데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까지는 10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 갈 때는 큰 기대가 없었지만 처음 방문하는 아랍권 국가는 여러모로 걱정이 앞섰습니다.
서울의 날씨는 매우 추웠습니다.
비염도 심해지고 기관지도 별로 상태가 좋지 못했죠.
개인적으로 공항에 갈 때는 버스를 선호합니다.
특히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는 타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비행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고, 영화도 보고, 사육당하는 기분이 드는 기내식까지 몇 번 먹으니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출국장까지는 미로처럼 매우 복잡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공항에 비하면 동선이 복잡하고 사람도 많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만 해도 훌쩍훌쩍 콜록콜록했는데 두바이 공항에 내리니 일주일 정도 시달리던 비염과 기관지염 증상이 한 번에 사라졌습니다.
빠꾸 맞은 입국심사
공항 직원이 친절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호리호리한 체형에 칸투라를 입은 공항 직원들은 큰 덩치 때문에 무엇인가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입국심사에서 빠꾸를 먹었습니다.
이유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해서였습니다.
이들은 나에게 '오픈 유어 아이즈'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처음에는 인종 차별인가 했지만 몇 번을 시도하는 동안 불친절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입국심사 담당자는 아랍어로 쓴 쪽지 하나를 주며 다른 쪽에 있는 심사 데스크로 가라고 했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고 불법적인 물건도 없는데 세컨더리에 끌려 가나 생각했습니다.
알려준 심사 데스크로 가니 또 다른 사진 촬영 장비가 있었고 이곳에서 두 번 만에 입국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입국심사 직원은 친절하게 '동양인이 우리 장비로 촬영을 하면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 오해하지 않았음 한다'라고 설명해 주더라고요.
아무래도 얼굴형과 눈 크기에 따른 카메라 세팅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초청해 준 친구는(미구엘 요렌트) 공항까지 마중을 왔습니다.
둘 다 자동차를 좋아하고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이 친구가 어떤 차를 타고 왔을까 궁금했는데......
우버를 이용해서 공항까지 왔다고 했습니다.
사실 좀 놀라운 일이었는데 친구를 만나 공항의 택시 정류장까지 가보니 왜 그런 줄 알게 됐습니다.
두바이 공항은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였으며, 부족한 주차공간, 빼곡한 인파 등등 자동차를 가지고 온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두바이 구시가의 시리아 음식점으로 향했습니다.
호무스를 비롯한 건강함이 가득가득 느껴지는 시리아 음식은 담백하고 부담이 없었습니다.
장시간 비행 스트레스는 콜라로 어느정도 풀었고, 왁자지껄한 중동시장 느낌 가득한 구시가는 '아랍에 도착했구나'하는 느낌을 늘게 했습니다.
식당 직원들도 친절했고 저녁 10시가 넘었지만 거리는 매우 활기찼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아랍권 시장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두바이는 바닷가에 인접해 습도가 높은 도시입니다.
사막의 건조함은 내륙 깊숙이 들어갔을 때 얘기입니다.
당시 서울의 기온은 영하 4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밤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0도에 육박했으며, 습도는 80%에 가까웠습니다.
한국의 한 여름 기온과 비슷했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도착한 호텔은 두바이의 한 구역인 모터시티 안에 있었습니다.
호텔을 예약해 준 미구엘은 '호텔은 정말 마음에 들 거야'라고 이야기했는데 로비부터 방까지 레이스 테마로 꾸며진 곳이었습니다.
두바이 모터시티는 두바이 오토드롬(서킷)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구역인데, 쇼핑몰을 비롯해 카트장, 바이크샵, 튜닝샵이 모여있는 구역이었습니다.
제가 묵은 호텔은 서킷과 바로 연결된 곳이었는데 새벽 3시까지 서킷을 주행하는 차들의 배기음이 기분 좋게 울리는 곳이었습니다.
12월은 두바이의 성수기라고 합니다.
1년 중에 가장 날씨가 좋고, 덥지(?) 않아서라는데 영하의 날씨에서 생활하던 저한테는 갑작스러운 변화였습니다.
호텔에 짐을 대충 풀고 근처 산책을 다니다 발견한 건 호텔과 붙어 있는 서킷에서 열리는 야간 드래그 레이스였습니다.
입장료는 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 했는데 관중석에서 심야에 열리는 드래그를 볼 수 있었죠.
음료를 비롯한 피자 같은 간식거리도 판매했고요.
사람도 꽤 많았고 100대 정도 출전해 새벽 2시까지 경기를 이어갔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낮에는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해가 지고 비교적 선선해지는 오후 9시부터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드래그 레이스가 밤에 열리는 이유도 그렇고요.
첫날 일정 치고는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일단 호텔에 안착했으니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밀레 밀리아 출전 준비에 들어갑니다.
이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다들 한 마디씩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가 아우디인데 침대 머리맡에 아우디 사진이 걸려 있으니 아마도 밤 새 악몽에 시달리게 될 거라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