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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Dec 12. 2022

화장,  끊어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끊었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  
거기엔 강력한 불씨가 필요할지 모른다  
끊기 전보다 오히려 더 쎈 불씨가

    

금연가라면 와이프 도로 주행 연습을 시켜주다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우는 상황 정도는 있어줘야, 끊었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너덜 해질 대로 너덜 해져 연애를 끊었던 여자라면 "너의 갈라진 뒤꿈치가 소보로 같이 귀여워" 하는 눈먼 남자 정도는 나타나줘야, 다시 마음을 먹을까 말까 할 것이다. 강력한 무언가가 있지 않는 이상, 그만큼 힘든 일이다.

정지 버튼을 눌렀다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나에게 그 강력한 무언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훅 들어왔다.




오래 전 나는 화장을 끊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뭐, 하고 싶어 죽겠는 걸 허벅지 찔러 가며 참은 것처럼 들리지만 물론 그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을 쉬었던 터라 육아를 핑계로 자연스럽게 생략했다는 게 맞을 거다.


겉싸개에 포옥 싸인 아이를 조심조심 안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워낙 멀티가 안 되고 빠릿빠릿하질 못하다 보니 , 24시간 아이를 챙기면서 내 몸뚱이까지 신경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니 안 그래도 귀찮은 화장 따위를 챙겨서 할 턱이 있나.


무엇보다 로션도 안 바른 자연인스러운 내 얼굴을 보고 너그러운 아이는 방긋방긋 잘도 웃어주었다. 그리고 뭐, 기미와 잔주름이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잡아가지 않았다. 어차피 몇 안 되는 친구들 만날 때도 꼭 누구누구네 집에서 만났고, 어쩌다 동네 맘 맞는 엄마들도 죄다 집에서 만나다 보니 나한테 있어 화장은 뭐.

 ‘굳이?’였다.



점심 사 주께. 나올래?


그렇게 뻔뻔하고 당당한 민낯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그르찮아도 MSG 맛이 너무 고팠던 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 회사 앞으로 날아갔다. 전화를 끊고 집을 나서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난 게으른 여자니까.      


“썬크림이라도 바르고 오지”

밖에서 딸내미를 만나면 늘 엄마의 첫마디는 똑같다. 대충 반갑다는 인사로 알아듣고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돼지 두루치기 대자를 재빠르게 주문하고 부지런히 식사에 들어갔다.


그렇게 남이 차려주는 한 끼를 감탄하며 흡입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엄마한테 아는 체를 해왔다.  “팀장님, 식사하러 오셨어요?”

엄마 회사 근처 오면 늘상 있는 일이라 눈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러거나 말거나 상추에 고기 한 점을 정성스럽게 올리려던 찰나, 나는 듣고야 말았다.      

“아~ 친구 분이랑 오셨구나. 맛있게 드세요~”


순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내 손과 입은 자동으로 올 스톱됐다.


친구 분이랑 오셨구나.. 친구 분이랑.. 친구..분이랑.. 친구..


당황한 엄마가 어색하게 웃으며 “따, 딸이에요” 정정을 시도해보았지만 모기 소리만 한 그 한마디는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졸지에 엄마 친구 분이 된 나는 상추쌈을 가만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기력이 급 떨어졌으므로.  앞으로 뒤로 신나게 춤을 춰대던 바람 풍선의 전원코드를 누가 확 잡아 뺀 것처럼.  


그렇다. 엄마 앞에서 좋다고 웃어대며 두루치기를 게걸스럽게 먹던 나는 엄친딸이었던 것이다. ‘엄’ 마 ‘친’ 구로 보이는 ‘딸’, 엄친딸.   






서둘러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분노의 궁시렁 궁시렁이 랩처럼 이어졌다.

“아니, 대관절 누가 누구 친구야. 미친 거 아냐”

죄 없는 엄마도 미웠다. 환갑이 지났는데도 곱디 고운 엄마가. 너무 동안인 바람에 멀쩡한 딸을 동년배로 만들어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집에 돌아와 아이 식판을 닦다가도, 아이랑 같이 뽀로로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도 문득문득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쉬이 사그라들 줄 몰랐던 화는 늦은 밤, 분노의 양치질을 하다가 끝이 날 수 있었다.  문득 올려다본 거울 속에 웬 여사님이 계셨던 것이다.


머리도 희끗희끗, 주름도 인자하니 엄마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딱 그런 분이.       







그때부터였다. 끊었던 화장품을 다시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피부 속부터 밝혀준다는 에센스부터 수분 밸런스를 잡아준다는 모이스춰 크림, 두 볼을 수채화로 물들여준다는 생기가득 블러셔까지. 여전히 화알못이지만 그래도 샀다. 비포와 애프터가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샀다. 사면서 생각했다.


엄마가 매일 아침 우유로 세안을 할 때마다, 집 앞 수퍼로 콩나물을 사러 나가면서도 SF50+를 구석구석 바를 때마다 “엄마는 귀찮지도 않대? 뭘 그렇게 힘들게 사신대”      

소파에 널브러진 채 이런 멘트를 날리던 나를.

엄마가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해 세월을 거스르고 있을 때 정작 본인은 세월을 곱빼기로 맞고 있던 줄도 모르고 말이다.  엄마도 그땐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열심히 키운 딸이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무럭무럭 늙어 '엄마 친구'가 될 줄은.        





날 왁스 언니는 이렇게 노래했었다.

'세월에 변해버린 날 보고 실망할까봐 오늘도 나는 화장을 고치곤 해'라고

 더 날 신효범 언니는 이렇게도 노래했다.  

'슬플 땐 화장을 해요 우리의 사랑을 예쁘게 색칠해요"라고



나는 오늘도 다시 태어나기위해 부지런히

찍고 바르고 두들긴다.      



엄친딸 말고 엄마 딸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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