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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 Dec 27. 2022

맥도날드, 환갑을 부탁해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아빠 칠순을 맞아 가족끼리 조촐하게 식사하고 돌아오는 차 안.

평소 같았으면 아빠가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셨나 하며

야속한 세월을 아쉬워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터보’의 ‘스키장에서’를 신나게 따라 부르는 한 남자.

16년을 시트콤 찍으며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의 익숙한 옆모습을 보다,

문득 궁금해진 것이다.      


흥은 넘치지만 끼는 1도 없는 사람.

음정 하나 안 맞는 노래를 목에 핏대 세워가며 열창하다 땡 소리도 못 듣는,

애석한 전국노래자랑 참가자 같은 이 사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남자의 환갑은 어떤 모습일까.  

김종국과 동갑이니 15년쯤 뒤가 되시겠다.                



워낙 20대부터 자타공인 노안으로 살아왔다는 그는 그러고 보니

30대이던 그 시절에도 본인 환갑에 대한 로망을 수줍게 고백하곤 했었다.


그건 바로 ‘맥도날드와 함께 하는 환갑잔치’      






아이스크림 하나 사러 갈라 쳐도 차를 타고 10분은 나와야 되는

그런 시골 산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버거’를 좋아한다. 그것도 무지하게.

들깨가루 푼 시래기 국을 앉은자리에서 뚝딱 해치울 거 같은, 6시 내 고향 느낌의 이 남자는  

미쿡 스타일의 음식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그가 유난히 좋아하는 건

빵과 패티 그 위에 양상추로 한번 멋 내고 다시 패티와 빵으로 마무리하는

데칼코마니식 구성의 '빅맥'이다.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기분이 업이든 다운이든 언제 어디서나

빅맥을 욱여넣는 그의 얼굴은 5살 아이 같이 해맑다.  

자투리 감자튀김까지 정성스럽게 긁어모으며

팜유 가득한 목소리로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여보~ 나 나중에 환갑잔치도 맥도날드서 해야 될라나 봐”     




저 두툼한 고기 빵이 저리도 좋을까. 못 말린다 못 말려

그때마다 난 인심 쓰듯 버거 하나를 더 시켜주며 혀를 내둘렀었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개그콘서트에서나 나올법한 그 잔치, 아주 못할 것도 없지 싶다.       



어차피 그의 인생은 그의 것.

환갑이라고 해 봤자 그냥 나이 좀 있는 아저씨일 거 아닌가.  

100세 시대다 보니 요즘엔 자기 나이에 0.7을 곱해야 옛날 선배들 나이랑 비슷해진다는데  

그럼 환갑이라고 해도 찐 나이는 42살 정도 될까 말까 하다는 얘기다.  


주름 좀 있는 42세 오퐈가 평생 입을 즐겁게 해 준 고마운 버거와 함께 스페셜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는데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언젠가 여행길에 하루 종일 운전만 하는 그이 옆에서 신나게 졸기만 하다  

내가 물은 적이 있다.


“아이구 내가 깜빡 졸았네. 운전하느라 힘들지?”


“난 운전할 땐 한 개도 안 힘들어

이렇게 재밌는데 뭘 힘들어 “


“운전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


“내가 왼쪽으로 꺾으면 왼쪽으로 가고 멈추라면 멈추고

살면서 내 맘대로 되는 게 딱 이거 하난데

재밌지 그럼"


그때는 비몽사몽이라 영혼 없이 “아 그렇구나” 하고 또 서둘러 잠들었지만

그 말은 쓸쓸한 말풍선이 되어 아직도 내 머리 위에  남아 있다.      


워낙 갈등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보니

안에선 와이프 눈치에 딸내미들 눈치까지 따따블로.    

밖에선 하고 싶은 말 있어도 가장인지라 자체 음소거를 해가며

안팎으로 맞춰주며 그렇게 살아왔을 그다.      

그런 그가 그날만큼은 내가 ‘갑’이 되어 내 맘대로 환‘갑’을 맞아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그때 되면 더더욱 환갑이라고 해서 잔치씩이나 하진 않겠지만

가족들끼리 축하는 하고 넘어갈 것이고 그 자리가 버거집인 것뿐이다.      



“아빠 그냥 조용한 한정식 어때?”

튀는 걸 극혐 하는 우리 애들은 이렇게 얘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뭐, 자식들한테 크루즈여행을 시켜달라는 것도 아니고

애비가 맥도날드와 함께 하는 패스트푸드 여행 좀 한두 시간 하고 싶다는데  

두 딸내미도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애들이 부지런히 서둘러서 손주 손녀까지 함께 한다면.

고 강아지들이 해피밀 세트 장난감을 옆구리에 끼고   

"우리 할아버지 내 스타일~"이라며 손하트를 날릴 수도 있다.


'인생 60부터~ 빅맥과 함께 꽃길만 걸으세요~'

빅맥 1년 이용권을 축하 선물로 받은 그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텐션이 잔뜩 올라간 그는

어깨춤을 추며

한 곡 멋들어지게 뽑을지 모른다.       


함께 환갑을 맞은 동갑내기 친구 터보의

그 신명 나는 노래를.        



그가 제일 사랑하는 노란 M



                                                                                                         


                                                                                        사진 :  pixabay /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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