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리 Jan 07. 2023

엄마의 수도꼭지


사장은 모든 직원을 돌볼 수 없어
법인 카드를 만들고

신은 모든 인간을 돌볼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어설픈 엄마인 난, 이런 말 앞에서 어깨가 움츠려든다. 신을 대신하는 아바타라니.

어쩐지 많이 찔린다.

어쩐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거 같아서.  

하지만 신이 엄마라는 사람을 그런 큰 뜻을 갖고 만드셨다니, 뭐 좋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보는 수밖에.      


그런데 참으로 아쉬운 게 한 가지 있다.

이왕 그렇게 거창하고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엄마’라는 사람을 만드실 거면

이거 하나 신경 써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게 있어서다.   

그건 바로 눈물샘이다.


아이를 낳는 순간 모유가 나오는 대신, 눈물 수도꼭지를 좀 잠가주셨으면

그랬으면 어땠을까.

이게 뭔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그렇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 난 ‘눈물’이 난감하다.            




엄마 노릇을 시작하고 나서 이거 저거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그중에도 제일 곤란한 게 ‘눈물’이었던 것 같다.      

사실 한 생명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해서, 순두부처럼 물러터진 마음이

자동으로 단단해지는 건 아니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슬픔이 훅 치고 들어올 땐, 그때는 도리가 없다.

그럴 땐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려줘야 슬픔도 못 이기는 척 씻겨 내려가는 법 아닌가.

실연이라는 걸 처음 경험했던 대학 1학년 여름방학, 그때가 그랬다.

장마 같은 눈물을 허구헌 날 쏟아붓다   

‘아, 이 짠내도 지긋지긋하다’ 싶을 때쯤, 슬픔이 꼬리를 내렸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가 없다.

눈물을 마냥 허락할 수가 없다.

갑자기 눈물이 시동을 걸어올 때, 정신을 붙잡아야되는게 엄마다. 헌데 이게 잘 안된다.

화장실에서, 싱크대 앞에서, 최대한 짧고 게 쏟아낸다고 해도

문제는 그다음이다.

벌갛고 잔뜩 부은 눈은, 눈웃음으로도 감출 수가 없으니까. 아니 더 도드라질 뿐이니까.

아무리 실컷 웃어도 입술이 두꺼워지진 않는데

왜 실컷 울면 눈두덩이는 팅팅 붓게 만들어진건지.


“엄마 왜 울어?”

아니야. 그냥 세수한 거야. 둘러대봐도 아이들은 금세 덩달아 시무룩해진다.

그러니 눈물샘이 느슨해질 조짐이 보인 다하면   

필사적으로 막기 바쁘다. 하지만 눈에 힘을 빡 주고, 입술을 깨물어봐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딴생각을 할려고 해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보란 듯이 더 시원하게 열려버린다.

대책도 없이.      




언젠가 친한 언니랑 통화를 하다가 끄트머리쯤, 내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언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     


그 순간, 언니의 그것이 터져버렸다.

애들 긴긴 방학 얘기며, 끼니 걱정 뭐 이런 일상을 얘기하던 언니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겨우 겨우 눌러놨던 슬픔은    

훅 들어온 내 한 마디에 그만 터져 버린 것이다.


“애들 아빠한테 아무래도 딴 사람이 생긴 거 같애.

나 어떡하지"   


예상치 못한 그 말에, 순간 먹먹해졌다.  

엄마나 여동생한테도 차마 말 못 했다며 그녀는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데 나를 더 슬프게 한 건 그다음이었다.      


“막내 끝났나 보다. 미안, 다음에 통화하자”


아이 라이딩을 위해 학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끊어야 했던 것이다.

흘러넘치는 슬픔을 급하게 주머니에 되는대로 쑤셔 넣고

아이를 맞이할 걸 생각하니, 내 가슴이 턱 하고 막혔다.

눈물도 다음을 기약해야 된다니. 킵해놔야 된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 역시 그랬다.

휘청휘청할 만큼 슬픔이 예고 없이 찾아와도 일단 킵해놔야 했다.

당장 하원차로 뛰어가야 했기에,  

당장 밥상에 숟가락을 놔야 했기에,

잠시 넣어둬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미뤄둔 눈물은 시간이 지난다고 마르지 않는다.

오히려 연체료가 붙듯, 더 불어나 있다가

꼭 예상치 못한 순간, 쏟아져 내린다. 댐이 무너지듯이 와르르.      




이렇게, 엄마란 사람한테 눈물은 난감 그 자체이다 보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눈물샘이 잠겨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화장실서 실컷 슬퍼하다 나와도

티 안나는, 맑은 눈두덩이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뭐 그런.      


어디서 보니까

가슴으로 우는 게 '엄마'라는 사람이라는데

철없는 엄마는

여전히 눈구멍, 목구멍으로 운다. 아이처럼.       



아, 신의 아바타 역은 역시 어렵다.





                                                                                            Photo by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맥도날드, 환갑을 부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