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치아 보험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이용하실 수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가입 즉시 보장받으실 수 있구요.
크라운을 몇 개를 하든.. 블라블라..
고객님만을 위한 스페셜 혜택이란다.
이렇게 혜택 좋은 걸 놓쳐버리는 당신은 멍충이라는 듯 원치 않는 설명을 쏟아낸다.
그렇다고 뚝 끊어버리자니 어쩐지 바로 못하겠고
그럴 땐 나만의 방법이 있다.
이 쪽 저 쪽 피차 깔끔하게 통화를 종료할 수 있는 방법이.
“저희 엄마가 보험을 하셔서요. 보험이라면 없는 게 없네요.
죄송합니다~"
최대한 안타까운 듯 이렇게 얘기하면 열에 아홉은 “아 네~”
허탈한 웃음을 남기며 전화를 끊어 준다.
엄마의 보험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 나는 몰랐다.
우리 엄마는 보험인이다.
그것도 30년 가까이 근무한 우수 FC이다.
이제는 징글징글할 만도 한데 칠십이 다 된 엄마는 여전히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한다.
누군가 불현듯 연락이 오면 십중팔구
둘 중 하나다.
다단계 아니면 보험.
이런 웃픈 얘기가 있다. 맞는 얘기다.
콜센터 마케팅 업무는 아니지만
고객 관리와 유치를 해야 하는 엄마에게 주 업무는 전화니까.
어떤 지인에겐 꾸준히, 또 어떤 지인에겐 어쩌다, 또 다른 이에겐 불현듯
그렇게 엄마는 전화를 할 것이다.
드라마엔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에게 한 여인이 뜬금없이 전화해서 한번 만나자고 한다.
그렇게 찾아온 여인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결국 우리 모두의 예상대로, 멋쩍게 보험 책자를 내민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못할 게 없더라고. 자식이 있으니까”
누군가에겐 너무 식상할지도 모를 이 장면.
하지만 나는 ‘못할 게 없더라’의 그 ‘못할 걸’ 가능하게 만든
바로 그 자식새끼다.
그러다 보니 그 말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작은 가시가 돼서 가슴에 콕하고 박혀 버린다.
자식이 생기니까 못할 게 없던 우리 엄마는 그렇게 보험 일을 시작했다.
내 나이 열 살 무렵 아빠의 사업이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아빠의 몸도 마음도 순식간에 주저앉았고,
그 시련이라는 놈은 대신 엄마를 일으켜 세웠다.
겁 많고 눈물 많은 엄마를.
먼저 보험 일을 하고 있던 고모의 소개로
그렇게 다급하게 엄마는 보험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지금도 발을 담그고 있는 중이다.
정작 고모는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때려치웠지만.
디지털 시대지만 엄마는 여전히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보험 설명을 하기 위해, 오케이 사인을 받기 위해,
심지어 어르신들 밀린 보험금 수금을 위해, 두 발로 찾아간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고객이 늘면 늘수록 엄마의 무릎연골은 사라져 갔고
고객이 줄면 줄수록 엄마의 검은 머리카락이 사라져 갔다.
그런 엄마를 보며 답답한 마음에 우리 삼 남매는 얘기한다.
“엄마 인제 그만하셔.
손주 손녀 재롱 보면서 하루 죙일 그렇게 보내면 좋겠다~ 엄마 맨날 그러잖어.
그렇게 사셔 "
그때마다 엄마의 대답은
“딱 1년만 더 하고. 그래야 애기들 용돈이라도 쥐어주지”
그 1년은 2년이 되고 5년이 된다.
딸을 낳아본 나는, 가끔 주름진 엄마가 여자로 보일 때가 있다.
그렇게 엄마한테 ‘여자 정란’이 보일 땐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고 너스레도 못 떠는 마흔 살 여자는
전화기 앞에서 심호흡을 몇 번씩 했을 것이다.
그렇게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겠지.
겨우 겨우 용기 끝에 연결된 전화는 또 얼마나 많은 한숨으로 끝났을지.
일을 시작한 후로 줄곧 엄마에게 지인은 ‘계약자’가 되어버렸다.
어릴 적 친구도, 여고 동창도, 심지어 자매들 앞에도
‘계약자’라는 말이 턱 하니 붙게 되었다.
그런 불편한 호칭 빼고 친구를 그냥 친구로, 조카를 그냥 조카로
그렇게 살았다면 주름진 엄마의 세월이 한결 가벼웠겠지.
그들도 엄마의 전화를 한결 더 가뿐하게 받을 수 있었겠지.
그런데 최근에 그런 나의 슬픈 추측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눈길에 미끄러져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엄마는 꼼짝없이 일주일쯤 집에 있었다.
그런데 걱정이 돼서 전화를 걸면 늘 통화 중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동생들도 볼멘소리를 했다.
나중에 아빠한테 들으니 엄마는 그렇게 전화통을 붙들고 산단다.
뭔 전화가 그렇게 오는지 팔이 부러졌어도 그렇게 신났단다.
어떤 아줌마는 미스터트롯 얘기로, 어떤 아줌마는 남편 바가지 얘기로,
엄마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오이장아찌며 멸치볶음, 감자볶음 같은 밑반찬을
슬며시 넣어주고 가는 아줌마들도 있었는데
다 엄마의 지인, 다른 말로 ‘계약자’ 들이었다.
엄마는 늘 얘기했었다.
“내가 딴 복은 몰라도 인복 하나는 있나벼”
맞는 말 같다. 그 힘든 일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 것도 모자라
계약자로 시작한 인연까지 친구로 만들어버리는 걸 보면 말이다.
언젠가 우리 집 둘째가 엄마 생신을 맞아 이런 편지를 썼었다.
“할머니~ 난 엄마가 부러워요.
할머니 같은 엄마가 있어서요"
순간 뭔가에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한테 있어 엄마는
‘생각하면 괜히 미안한 사람’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운 사람’이긴 했어도
그런 생각은 못해봤다.
40년 넘게 살면서도 못 보고 있던 걸
10년도 채 안 산 꼬마가 일러주었다.
너는 그런 엄마를 가졌다고
열 살 아이도 부러워할 만한 그런 엄마를.
김혜자 배우는 '생에 감사해'라는 책에서
같이 연기한 이정은 배우를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역을
그녀는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훌륭하게 해 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세상에 많이 시달린 것이 보입니다.
고생을 많이 해서 비비 꼬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품이 때 묻거나 비틀리지 않은 그녀가 참 마음에 듭니다.
많은 고생이 그녀 안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완성시켰구나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배우 이정은님
이 대목을 읽으며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감히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걸
씩씩하게 해 내는 그녀.
그 숱한 고생이 그녀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인정 많고 인복 많은 여자, 정란을 완성시켰구나 하고.
오늘도 그녀는
깁스한 팔로도 단정한 커리어 우먼 룩을 하고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하겠지.
불현듯 그녀에게 전화가 하고 싶어 진다.
Photo : Pixabay /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