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소설일지도, 혹은 누군가의 실화일지도
초대장이 날아든 것은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나는 아주 조금은 무료하고 밋밋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빵을 굽는다. 달걀프라이도 잊을 수 없지. 음료는 우유 또는 주스, 둘 중 하나다.
나는 빵 위에 달걀까지 올리고 나서야 아이를 깨우러 가는 편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뜨거운 잘 먹지 못했으니까. 아이를 깨우는 동안 빵과 달걀은 어린 입에 적당한 온도로 식어갈 테다.
은색의 기다란 모양의 문고리를 돌리면 꼭 한쪽 다리를 이불 밖으로 내어놓은 아이가 세상모르게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달콤한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창문을 열면 어김없이 아침 햇살과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그 소란에 아이가 칭얼대며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그러면 나는 작은 한숨을 쉬며, 그보다 더 작은 아이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겠지. 팔을 주욱 잡아당기면 어렵지 않게 졸음 가득한 얼굴과 마주 볼 수 있다.
“일어나렴. 벌써 아침이란다.”
상냥한 목소리에도 나의 아이는 인상을 쓸 것이다. 그래도 다시 누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옳지, 착하다. 그대로 놀라지 않게 아이를 안아 들면 아이가 내 목에 팔을 두른다.
간밤에 악몽은 꾸지 않았느냐고 묻지만, 아이의 고개는 성의 없이 좌우로 움직일 뿐일 것이다. 묻지 말라는 거다. 졸리니까. 설령 악몽을 꿨다 하더라도 지금은 말할 기분이 아니라는 거다. 나중에 잠이 깨고 나면 알아서 말해줄 아이를 알고 있으므로 나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대신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추고 내 의자보다 조금 더 높은 아이용 의자에 앉힌다.
멍한 아이는 내가 손가락으로 유리잔을 ‘텅’ 치고 나서야 마침내 느릿느릿 빵을 오물거린다. 그사이 나는 미리 챙겨둔 우편물들을 확인한다. 이게 규칙적인 나의 아침 생활이다.
그날도 우편물을 뒤적이다 발견한 것이다. 그 빨간색 봉투의 초대장을.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봉투를 열었다. 이런 초대는 난생처음 받아봤기 때문이다. 더더군다나 최근에 내게 주소를 물어온 이도 없었다.
빳빳한 봉투를 뒤로 젖히자 본격적인 초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 최대의 카니발에 나와 아이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화려한 퍼레이드와 무지개색의 경이로운 불꽃을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로 엄선된 연극 무대는 덤이라나. 확실히 솔깃했고,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초대장이었다.
하루 종일 집 안을 청소하고, 밥을 해야 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나 같은 바쁜 사람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그게 뭐예요?”
동그란 눈이 반쯤 돌아온 아이가 물어왔고, 나는 아주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우리와는 관련 없다는 듯. 아주 먼 세계의 이야기라는 듯.
“초대장이구나.”
“우리를 초대하는 거예요?”
“그렇단다.”
“어디로요?”
“카니발에.”
카니발.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그 이름을 아이가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아이는 카니발이라는 단어의 뜻을 온전히 알고 있을까? 어디서 배웠던 적이 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충분히 궁금했을 법도 했는데 그때는 되돌아오는 질문에 없기에 그러려니 하고 여상하게 넘겼다.
“우리도 거기에 가요?”
“아니. 우리는 가지 않아.”
“어째서요?”
아이의 눈썹이 가엾게 아래로 축 처졌다. 시무룩할 때의 아이는 마치 새끼 강아지 같았다. 마음이 약해졌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바빠. 도저히 카니발에 참가할 여유가 없구나.”
그러나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바로 그 말을 번복해야 했다. 시계의 종이 정확히 여덟 번 울렸을 때, 초대장의 하단에 아주 작게 적힌 경고문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왈칵 짜증이 났던 것도 같다. 이런 경고는 글씨 크기를 키우거나 색을 다른 색으로 바꾸거나 하다못해 별표라도 쳐놔야 할 거 아니야. 눈에 제대로 띄지도 않는 경고문은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무기력한 경고문이 말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을 이용하는 사람은 빠짐없이 모조리 참석하셔야 합니다.」
나의 미간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 이 부근에서 그 강을 식수로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결국 이 마을에 사는 모든 이들이 강제로 카니발에 참가해야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옆집에 사는 뚱보 아줌마도, 건너편에 사는 목수 아저씨도, 강 건너에 사는 과일가게 총각도, 언덕 위에 사는 시인 랭보도.
“우리도 카니발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아이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식탁에 팔을 턱 올렸다. 어쩐지 팔에 작은 소름들이 오도도 돋아났다.
“그래. 꼼짝없이 카니발에 가야 하는구나.”
“신난다.”
아이는 작게 만세를 불렀다. 이미 잠 기운을 몰아낸 뒤였다. 아이는 자그마한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들뜨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통통. 아이의 발걸음을 따라 가방이 뜀박질을 함께 했다. 나는 정원에 서서 아이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이 카니발의 초대장이 날아온 바로 그날 아침에 대한 회상이다.
그날부터 나는 아주 바빴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사람처럼. 카니발이 열리는 장소로 가기 위한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고,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숙소를 구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커다랗고 화려한 카니발은 언제나 혼란을 야기한다. 사람들은 바글바글 모여들고, 기차표와 숙소는 언제나 모자라다.
경고문, 그 무기력한 한 문장 때문에 나는 온 사방을 뛰어다녀야 했다. 그것은 어쩌면 초대에 응하지 않을 시엔 강을 이용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갈증이 나도 해소할 수 없고, 최소한의 식량도 구할 수 없는 의미와도 같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것은 필사적으로 막아야 했다.
나와 같은 불안함을 느낀 이웃들이 쉴 새 없이 내 주위로 스쳐 지나갔다. 평소와 같은 정감 어린 인사는 없었다. 인사를 나누는 여유를 부리다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빼앗기면 안 되니까. 물론 나도 그러했다.
애석하지만 예매 첫 도전은 순조롭지 못했다. 역 직원에게 남은 표를 생기거든 꼭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고 터덜터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튿날,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주최자로부터 두 번째 편지가 발송된 것이다.
아주 황송하게도 이러한 혼란을 알아챈 주최자가 기꺼이 참가자 모두에게 기차표를 제공하겠노라는 공지가 적혀 있었다. 당일엔 카니발 행 특별 열차를 운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더불어 숙소도 따로 제공할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는 친절한 말을 덧붙였다.
주최자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서, 또는 숙소를 구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카니발 초대에 응할 수 없다는 최후의 핑계마저 모두 차단한 것이다.
그는 마치 카니발을 성공적으로 주최하는 것에 큰 사명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초대받은 이들을 모두 끌고 가겠다는 필사적인 의지가 엿보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집으로 기차표가 도착했다. 이로써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퍼레이드와 같은 불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을 집으로 돌아온 아이에게 알려주었을 때 아이는 웃었던가, 아니면 물었던가. 종일 엄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했던 것은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얼른 카니발에 가고 싶어요! 몇 밤만 자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