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잔상

잔상 2 : 카니발 (2)

소설가의 소설일지도, 혹은 누군가의 실화일지도

by Carrie


카니발 당일,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혼잡한 기차에 올라탔다. 초대장 봉투와 마찬가지로 빨간색의 특별 열차는 그동안 우리가 타고 다니던 것과는 달랐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황금색 좌석은 호화로웠고, 그와 같은 색의 장식이 들어간 창문은 중세시대 영주의 성에서 떼어온 것만 같았다. 일행 별로 독립된 공간을 제공해주었고, 테이블 위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잇감이 가득했다.


배정받은 2인실에 들어가자 아이가 창문에 딱 붙어 밖을 내다보았다. 자신의 보드라운 볼살이 유리에 눌러 납작해졌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마을 밖을 벗어난 적 없었으니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 앙증맞은 뒷모습을 빤히 보다가 나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탑승객이 점점 몰리는 모양이다.


나는 선반 위에 우리의 무거운 캐리어를 올려두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이의 뒤통수밖에 볼 수 없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아이가 "네."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신나니?”


“네. 신나요. 아마 이 기차는 엄청 빠르게 달리겠죠?”


“그럼. 우리가 걷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를 거란다.”


“기대돼요. 그런데요, 엄마. 빠른 게 좋은 거예요?”


다소 생소한 질문에 말을 멈춰야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문제였던 것이다.


“음, 빠른 건 그저 빠른 거란다. 좋고 말고를 따질 게 아니야.”


결국 내가 내어놓은 대답은 한심하게도 겨우 저런 것이다. 나의 대답을 곰곰이 듣던 아이가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너무 빠르게 달리면 반드시 물건을 잃어버리고 말아요.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물건들은 그 자리에 남게 되죠. 버림받은 것처럼.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대부분 물건들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예요. 난 그게 무섭기도 해요.”


“어려운 말이구나. 그게 무슨 뜻인지 엄마한테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하지만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창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멀어질 광경을 눈에 담았다.


아이의 말대로 기차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많은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리게 될까. 내일의 우리는 오늘의 우리와 달라져 있을까. 무수히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우리는 카니발이 열리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의 말을 천천히 곱씹어보고 있을 때쯤 역무원이 우리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나는 작은 핸드백을 열었다.


“기차표 확인하겠습니다.”


무척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표 두 장을 꺼내 역무원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역무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뭉툭한 손가락이 표에 적힌 아이의 이름을 가만히 쓸었다. 종국엔 그의 우람한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도…… 함께 가는 건가요?”


역무원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네. 같이 초대받았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역무원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나 출발 시간이 촉박해 오자 별수 없이 기차표를 내게로 돌려주었다. 그가 돌아보아야 할 객실은 아직 까마득했던 것이다.


“얘야. 즐거운 여행되길 바란다.”


무릎을 굽힌 역무원이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의 깊은 눈에서 나온 눈물이 볼 위로 흘렀다. 눈물방울들은 턱에 고였다가 한 번에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집에 두고 온 아들이라도 생각이 난 건지.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대꾸했다. 역무원은 다음 객실의 문이 열릴 때까지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얼른 객실 문을 닫고 경계했다. 그러자 아이가 내게로 폭 안겨 왔다. 나는 아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날 기차 속에서의 우리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의지할 곳이라고는 서로의 온기뿐이라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이윽고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방금 전까지 우리와 나란히 서 있던 풍경들이 뒤로 밀려났다. 닮아있지만 그와 전혀 다른 풍경들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간식 카트에서 젤리를 사서 쥐여주자 아이의 기분이 한결 괜찮아진 듯했다.


아이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두운 숲 속을 지나는 다람쥐의 모험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아이와 아주 잘 어울렸다.


기차가 본래 목적지의 반쯤 왔을 때 나는 아이를 붙잡고 거듭 신신당부했다.


“카니발은 사람이 아주 많고 혼잡할 거야. 그러니 엄마 옆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알겠지?”


“카니발에선 불꽃을 볼 수 있나요?”


“네가 좋아할 만한 퍼레이드도 있단다.”


“가까이 다가가서 봐도 돼요?”


“그건 안 돼. 위험하니까. 멀찍이 떨어져서 엄마와 함께 구경만 해야지.”


“하지만 카니발인걸요?”


“넌 카니발이 뭐라고 생각하니?”


그 물에 아이의 눈이 멍해졌다. 원하는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나 아이는 그 화려한 단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저 어디서 주워 들었기에 어렴풋이 추측하고 있었을 뿐.


아이에게 초대장에 딸려온 불꽃 사진과 퍼레이드 사진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아아, 카니발은 아주 떠들썩하고 즐거운 거군요!”


“그래. 아주 떠들썩하고 즐겁지. 하지만 카니발의 반대말은 일상이란다. 그 말은 즉 우리가 늘 생활해오던 일상에서 멀어진다는 거지.”


“그렇지만 일상이라는 건 지루하고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야. 일상은 지루하고 더 이상 흥미롭지 않지. 하지만 그만큼 카니발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하다는 의미이기도 한 거야. 그러한 일상을 떠난다는 것은 아까 네가 말한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거란다. 우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물건들은 원래의 그 자리에 남게 돼.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돌아가도 대부분 그것들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지.”


“카니발이 끝나면…….”


“과연 돌아온 일상이 떠나기 전 일상과 같을까? 그 공백이 가져온 공허함을, 우리는 전혀 느낄 수 없을까? 카니발 행 특급 열차는 우리를 배려할 만한 속도로 달려줄까? 우리가 돌아왔을 때,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물은 여전히 맑고 투명할까?”


아이는 입맛이 사라졌는지 손에 꼭 쥐고 있던 젤리들을 테이블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나. 나를 닮아 동그랗고 빛나는 두 눈은 눈꺼풀 사이로 숨었다, 나타나는 행위를 반복했다.


어느새 나는 아까 전 만났던 역무원의 표정과 같은 것이 되었다. 어쩌면 너는 카니발에 참가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일지도 모르겠구나. 묘하게 변할 일상을 견디기엔 너무 미성숙할지도 모르겠구나.


“전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것으로 기차에서의 대화는 끝이었다. 아이와 나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 것 같았다. 철저히 서로를 외면했다. 드문드문 다른 객실에서 흥이 난 웃음소리와 흥분한 말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럼에도 우리는 그 소음에 동참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카니발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모두가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카니발이 아주 즐거웠을 테고, 또 누군가는 일상을 벗어남에 희열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기차 안의 나는, 단언컨대, 전혀 기쁘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기차를 멈추고만 싶었다. 떠나온 우리의 아늑한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어렴풋이 알았던 것도 같다. 이 카니발이 몰고 올 후폭풍을. 아이가 이해 못 할 그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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