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잔상

잔상 2 : 카니발 (3)

소설가의 소설일지도, 혹은 누군가의 실화일지도

by Carrie


꿈만 같던 카니발이 끝이 나고, 우리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버섯 모양의 섬광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무거운 짐가방을 질질 끌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그와 동시에 참고 있었던 피로감이 몰려왔다. 내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아이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잔뜩 심통이 난 표정으로 칭얼댔다.


“졸려요.”


솜털이 뽀송한 볼에 입을 맞추고 등을 토닥이면서 가쁜 숨을 몰아 내쉬었다.


테이블 위에 딱 자리를 비운 만큼의 먼지가 얕게 쌓여 있었지만, 청소를 할 기분은 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아주 고단했고, 무엇보다 아이를 울리기 싫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한 순간 나의 처지는 더욱 애처롭게 될 테니까.


그에 우선은 꼬맹이를 침대에 눕히기로 했다. 그러나 나의 나른한 발걸음은 곧 멈추고 말았다. 팔에 오돌토돌하고 규칙적인 모양의 돌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의 두 눈이 천천히 굴러갔다.


‘그래 봤자 10년을 보아온 익숙한 풍경일 뿐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 달리 상황은 그리 안일하지 않았다. 눈이 닿는 곳마다 이색적인 여러 가지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서 내 팔에 소름이 돋았던 걸까. 눈앞에 끔찍한 사고라도 벌어진 것 마냥 꽁꽁 얼어버렸던 걸까.


대충 본다면 눈에 띄게 수상한 것은 없었다. 겉보기엔 카니발에 참가하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럼에도 어떤 사소한 부분들이 나를 몹시 거북하게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락해야 할 나의 집에서, 거북함을 일으킬 만한 것이 무엇이지.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하마터면 품에 있는 아이를 떨어뜨릴 뻔했다.


비로소 볼 수 있었다. 대망의 첫 번째 변화를 말이다. 그즈음엔 거북하다 못해 속에 음식물이 얹힌 것처럼 헛구역질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로 아이의 방 문고리 모양이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은색의 기다란 모양의 그것은 청동색의 동그란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카니발로 집을 비운 틈을 타 누군가가 몰래 아이의 방 문고리를 교체해놓은 것이다. 청동색의 동그란 문고리를 보며 희열을 느꼈을 괴상한 이의 정체를, 나로서는 도무지 추측도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이가 다시 칭얼거림을 시작하기 전까지. 한차례 폭풍이 몰아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얼른 아이를 재워야겠다는 극단적인 결론으로 도달했다.


아직 숨어있을지 모르는, 방의 문고를 멋대로 바꿔버린 침입자의 동태를 살핀 후 아이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청동색의 문고리가 달린 방 안에서도 아이는 새근새근 잘만 잤다.


아이가 깨어나기 전에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싶었기에 미적거리지 않고 재빨리 방을 빠져나왔다. 피로는 이미 멀리로 달아난 지 오래였다.


서랍 속의 수첩을 꺼내 든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전부 기록했다.


왜 그걸 일일이 손으로 적는 수고를 하느냐고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스스로의 기억력을 불신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사소한 것도 놓쳐서는 안 돼. 그러니 내 기억이 아득해지기 전에 기록을 시작해야 해.


카니발을 지나온 집은 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무언가가 추가되기도 했고, 또 무언가가 생략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완성까지 고작 몇 조각을 남겨두고 있던 퍼즐의 그림이 달라졌고, 커튼의 문양이 바뀌었다. 차곡차곡 모아둔 장작의 개수가 줄어들었다. 갈색의 카펫은 눈부실 만큼 하얗게 변했고, 식탁은 원래의 길이보다 조금 더 길어졌다. 시계는 5분 정도가 느려졌고,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은 3개가 늘었다. 토마토는 감자가 되었고, 액자는 기이할 정도로 확대되었다.


그중 가장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흔적도 없이 모조리 사라져 버린 집안의 문이었다. 단 하나, 아이의 방문만 빼고 증발되었다. 그것은 마치 청동색의 문고리를 내게 보여주기 위한 술수 같았다.


마구 휘갈기느라 세 번째 손가락이 시뻘게지고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때쯤에야 나는 기록을 끝마칠 수 없었다.


물론 내 머릿속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았고, 또 그것이 전부라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떠오르는 대로 기록할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발견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서서히 공포에 잡아먹혔고, 불편한 진실에 잠식되었다. 무엇이 현실인지, 착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극한의 추위를 느꼈을 때처럼 나의 얇은 턱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카니발 주최자 놈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아이가 깰까 봐 차마 비명도 마음껏 지르지 못한 채로 나는 스스로에게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카니발 준비의 모든 것』


수첩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나는 책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민첩한 눈이 책장에 꽂힌 낯선 책 하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딱딱한 표지의 그것은 책장에서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하고 있었다. 딱딱한 표지를 톡톡 두드리며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카니발 준비의 모든 것.”


내가 이런 책을 구입한 적이 있던가. 아니, 그런 것쯤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나는 본능적으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빠르게 글자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엔 사진과 글이 거의 동등한 비율로 등장했는데, 아무래도 카니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다룬 백과사전 같은 것인 모양이다.


카니발의 참가자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카니발의 불꽃을 볼 수 있으며, 마치 방호복을 닮은 듯한 의상을 입고 이루어지는 퍼레이드는 가히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지다. 이따금 주최 측의 실수로 계획하지 않은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그건 딱히 신경 쓸 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이어진 사진에서는 내가 축제에서 직접 본 영롱한 불꽃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무서웠던 건 책은 딱 카니발의 절정에서 끝이 났다는 것이다. 카니발을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도, 카니발이 열렸던 그 지역에 대한 소식도 알 수 없었다.


나는 텅 빈 깡통처럼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창밖을 멀거니 응시했다. 어둠을 가장한 검은 천이 있다면 숨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책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지상 최대의 카니발을 구경하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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