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잔상

잔상 2 : 카니발 (4)

소설가의 소설일지도, 혹은 누군가의 실화일지도

by Carrie


오랫동안 미동도 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더니 눈이 따끔해졌다. 그로 인해 고인 눈물을 닦아내고서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문득 오늘 아이에게 한 끼도 먹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부여잡고 아이의 방 앞으로 걸어갔다. 청동색의 동그란 문고리는 지금까지의 일들이 나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알려주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죽은 듯이 잠든 아이의 몸이 보였다.


“배 안 고프니? 밥 먹을래?”


아이에게선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기침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감기라도 걸렸나. 나는 두려운 마음에 한달음에 아이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 아이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보다는 낮고, 평소보다는 높은 미열이 느껴졌다. 단언컨대 그 미열은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애매한 온도였다. 아마 아이도 처음일 것이다.


“어디 아프니? 추워?”


새로 던져진 질문에도 대답 대신 한층 더 잦아진 기침 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걱정이 되어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카니발이 끝난 후엔 의사들도 잠시 휴식을 갖는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 들었다. 즉, 아무리 이 마을을 돌아다녀도 아이의 심상치 않은 미열을 치료해줄 이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초조한 만큼 아이의 얼굴도 점점 달아올랐다. 어떻게 하지. 내가 무얼 해야 하지. 결국 기차에서처럼 작은 몸을 끌어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력함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엄마, 코가 아파요.”


그러다 아이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코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그것을 보며 나는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아이의 잠옷, 베개, 이불 모두 빨갛게 물들었다.


일단 아직 개지 못한 세탁물 중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어 아이의 코에 가져다 댔다. 하얀 천이 망가지고 나서야 그것이 내가 가장 아끼는 손수건이라는 것을 인지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이의 코에서 흐르는 이 끔찍한 액체를 멈출 수만 있다면.


“날이 밝으면 내가 의사 선생님 집 문을 부숴서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줄게. 그러니 조금만 참아줄 수 있겠니?”


“너무 아파요, 엄마.”


변한 것은 비단 집안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몸도 본래와는 다르게 변해버렸다. 아이는 부쩍 짧아진 네 번째 손가락을 내게로 내밀었다.


“엄마, 혹시 제 손가락이 잘린 거예요?”


세 번째 손가락과 길이가 비슷했던 아이의 네 번째 손가락은 다섯 번째 손가락보다 짧아져 버렸다. 이 경악스러운 상황을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만 없었더라면 진작 비명을 지르며 집 밖을 뛰쳐나갔을 것이다.


“아, 아니란다. 여기 손가락이 있잖니.”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 거죠?”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심정이 얼마나 참혹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나는 이제는 피가 거의 수돗물처럼 콸콸 흐르기 시작하는 아이의 코에 입을 맞추며 화려했던 카니발을 회상했다. 그 정신 못 차릴 광경을 떠올리며 아이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무뎌지길 바랐다.


“카니발은 참 반짝였지?”


“저 너무 아파요.”


“불꽃은 무슨 색이었지?”


“빨간색과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흰색, 분홍색, 보라색.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주 많은 색들이었어요.”


“퍼레이드는 어땠지?”


“방호복을 입은 귀여운 인형들이 내 앞을 지나갔어요. 그 뒤엔 꽃으로 장식한 커다란 호박 마차가 지나갔고, 아마 그 안엔 방호복을 입은 신데렐라가 타고 있었을 거예요. 나팔을 부는 방호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있었고, 방호복을 입은 토끼와 호랑이가 손을 잡고 지나갔어요. 방호복을 입은 왕자님은 말을 타고 있었고, 방호복을 입은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있었어요. 방호복을 입은 요정은 하얀 날개를 달고 있었고, 방호복을 입은 숲의 여신은 아주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요.”


아이는 나의 바람대로 난생처음 본 황홀경을 떠올리느라 정신이 팔렸다. 그 들뜬 목소리에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며, 곧이어 변해버린 아이의 왼쪽 귀를 보고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아이의 초록 눈동자 속에서 카니발의 소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우리는 관람차도 탔지?”


“네. 정말 높았어요. 무서울 정도로. 하지만 회색 건물들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로 엄선된 연극 무대는?”


“정신이 나갈 만큼 흥미로웠어요! 끌려들 것만 같았다니까요!”


아마 아이가 조금만 더 섬세했거나, 아니면 조금만 더 나이를 먹었더라면 하얗게 질린 나의 얼굴을 금세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을 테다. 잔뜩 겁에 질린 나의 목소리에 의구심을 가졌을 수도.


그러나 다행히도 아이는 어렸고, 염려할 정도로 섬세하지 않았기에 공포에 사로잡힌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신 어린 만큼 어른보다 더 빠르고 끔찍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엄마, 제가 또 카니발에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드디어 내게도 미열이 찾아왔다. 나는 이미 그 뒤에 이어질 비극을 모두 알고 있었다. 아마도 기침이 잦아질 테고,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릴 것이다. 네 번째 손가락, 또는 다른 손가락이 짧아질 테고, 귀가 쪼그라들겠지.


나는 단지 아이보다 속도가 약간 느릴 뿐이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카니발은 일상과 달리 원하는 때 언제든 참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어쩌면 너의 일상에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카니발인 거야. 흔하지 않기에 화려하고 강렬한 것이지.”


사실 엄마는 네가 다시는 카니발 같은 곳에 가지 않기를 바란단다. 그 불꽃과 그 퍼레이드를 네가 다시는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단다. 죽을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자 투명한 눈물이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아이의 짧은 네 번째 손가락을 만지작거리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도 코에서 피가 나요.”


“그러니?”


“네. 저랑 같네요.”


“그렇네. 너랑 같구나.”


머리가 깨질 듯 지끈거렸고 기침은 참아지지 않았다. 집 안의 바닥이 파도치듯 일렁였으며 벽은 내게로 바짝 붙어 섰다. 귀로는 함께 카니발에 참가했던 이웃들이 지르는 비명이 흘러들어왔다.


마을 전체가 같은 비극에 빠진 것이다. 고작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물을 식수로 사용한 죄로.


“엄마, 내일 정말 의사 선생님을 불러줄 거예요? 얼른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제가 어디가 아픈지. 그리고 고쳐달라고 부탁할래요.”


“그래. 내일 꼭 불러줄게.”


“내일은 언제 오나요?”


“지금 해가 졌으니, 다시 해가 떠오르면 내일이 되는 거야.”


“해는 떠오르겠죠?”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옆에 몸을 뉘었다. 계속 서 있다가는 파도처럼 일렁이는 바닥에 치이고, 내게 바짝 붙어 선 벽에 치이고, 이웃들의 비명에 치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밀려나면 안 된다. 아이의 옆에 딱 붙어서 함께 아침을 맞아야 해. 그리고 꼭 의사 선생님을 이리로 데려와야 해.


“옆집 아주머니가 소리를 질러요.”


밤늦게까지 이어진 카니발이 끝난 아침, 많은 인파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하늘을 장식하던 불꽃은 소멸되었고, 기세 좋게 전진하던 퍼레이드가 뒷모습만 보이며 쓸쓸히 퇴장했다. 주위로는 온갖 쓰레기들과 종잇조각, 찢어진 가면, 터진 풍선, 쓸모없어진 입장권 등이 굴러다녔다.


모두 카니발의 잔해였다. 허탈함과 공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치 전날 밤은 꿈인 것만 같았다. 그 카니발 속의 우리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같았다.


“이거 돌려줘야 하는데.”


그때 우리에게로 터벅터벅 걸어온 사람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아주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옆집 아주머니였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아이의 손에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쥐여주었다. 아마 그녀의 막내아들이 가지고 놀던 것이리라.


머뭇거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주머니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는 분명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옆구리에 낀 막내아들과 함께였던 것 같은데.


혹시 카니발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걸까. 그래서 이 작은 장난감 자동차가 소용이 없어져 버린 걸까. 묻고 싶었으나 아주머니는 틈을 주지 않고 멀어졌다.


“아주머니도 아파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짧아진 두 번째 손가락을 펴 피로 범벅이 된 아이의 눈가를 쓸었다. 이제는 눈에서도 피가 나기 시작했다.


떨리는 심장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아직 해가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웃들의 비명은 점점 더 거세게 울려 퍼졌다.


“내일 아침에 장난감을 돌려주러 가도록 하자.”


“모든 일은 해가 뜬 뒤에 일어나야 하는 거군요.”


아이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은 채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까만 시야에 어젯밤에 보았던 폭죽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 아래로는 어쩌면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있겠지.


“아직 날이 어두워요, 엄마. 그게 무척 두려워요.”


카니발은 확실히 모두를 잡아먹을 만큼 성대했다.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카니발은 우리의 일상을 뒤틀어 놓았다. 나와 나의 이웃들은 절대 카니발의 초대장을 받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영위했을 뿐이다.


그게 나는 참 억울하다는 거다. 아무런 기준도, 명분도 없이 우리는 카니발 행 특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사건의 전말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카니발의 주최자가 누군지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해가 뜨지 않을까 봐 걱정이에요.”


다만 그로 인해 발생한 고통을 고스란히 끌어안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을 기다리며 깊은 절망 속을 헤엄쳐야 하는 팔자가 되어버렸다.


“내일이 오지 않을까 봐 무서워요.”


눈을 떴지만, 여전히 불꽃은 눈앞에서 경이로움을 자아내며 터졌다. 당시의 환호 소리와 현재의 비명이 겹쳐 들렸다. 커다란 풍선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인형 탈을 쓴 자들이 주위를 뛰어다녔다.


“엄마. 아주머니 비명이 멈췄어요.”


다른 의미에서, 우리의 카니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카니발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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