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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가 이사를 갔다

내가 아는 개냥이 이야기

by 당근




"요즘 그 고양이 안 보이데"

그제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밥을 먹다 나한테 말을 걸었다. 고양이가 정년퇴직한 고양이 선생님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다는 말을 듣더니 "그 고양이가 내 차에 자꾸 올라가 앉아있고 그랬는데 이사갔구나"고 말했다.


어제 아침.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관사 주변을 돌며 걷기 운동을 하시는 어르신이 다가왔다. 뭐 심으셨냐, 배추를 심으려다 당근을 심었다, 배추 심기에는 늦었다, 원통장에 가면 배추모종이 있을지 모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어르신께서,

"아, 근데 요즘 그 고양이랑 고양이 선생님 차가 안 보이네"고 말했다.

고양이 선생님이 8월 말에 퇴직하고 고양이랑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고 또 전했다.

"아, 그 고양이가 우리 텃밭에 와서 얼마나 작물들 망가뜨리고 헤집어놓고 똥 싸고 그랬는지 몰라, 그랬구나, 어쩐지 그 선생님 차가 안 보인다 했지"





4년 전, 11월 말이었다. 퇴근하면서 2층으로 계단을 털레털레 올라가는데 계단 난간 사이에서 노란색 큰 털뭉치 같은 게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새끼 고양이였다.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걸어가다 난간 사이에 낀 건지, 나를 보고 놀라서 멈춘 건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집에 왔는데 신경이 쓰였다. 추운 날이었다. 난간 사이에 끼여서 못 나가고 있는 건가 걱정도 됐다. 집에 있는 쥐포를 잘라서 털뭉치에게 갔다. 먹으라고 쥐포를 입에 갖다 대도 먹지 않았다. 혼자 편히 먹으라고 털뭉치 앞에 쥐포를 놔두고 다시 집으로 왔다. 털뭉치 사진을 동물 애호가인 b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쥐포를 갖다줬다는 말에 쥐포는 고양이가 먹기에 딱딱해서 물에 불려서 줘야 하며 깨끗한 물을 갖다 주면 좋다고 했다.


카톡으로 고양이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다가 b가 "치즈냥"이라는 단어를 썼다. 쥐포 말고 치즈를 줘야 한다는 말인 줄 알고 "치즈 줘야 돼?"라고 물었더니 노란 고양이를 치즈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b가 불쌍하다며 털뭉치를 집에 들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집에서 키울 만큼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다시 물을 들고 털뭉치에게 갔더니 안 보였다. 1층으로 내려가니 누군가 우편함 아래에 종이 박스를 갖다 놓고 그 안에 물과 참치를 넣어 둔 것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면서 보니 박스가 보이지 않았다.



겨울을 지내며 가끔 털뭉치는 이 추위에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굶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문을 여는데 노란색 뭔가가 차에 휙 뛰어올랐다. 작은 고양이였다. 나와, 이리 나와, 하며 차에서 내리게 했더니 내 발 주변에 눕고 뒹굴며 정신없이 굴었다. 난 고양이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해하다 자세히 보니 털뭉치였다. 겨울에 밖에서 얼어 죽지 않고 무사히 봄을 맞았구나 싶어서 대견했다.



그 후부터 털뭉치는 현관에 있다가 출근하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몇 걸음 앞에서 에스코트하듯 걸어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분리수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발등에 몸을 비비고, 그런 털뭉치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으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털뭉치는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관사 현관 계단 주변에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반가운 척을 했다. 겁 많던 아기 고양이가 붙임성 좋은 길냥이로 자랐구나 싶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b는 털뭉치를 만나면 주려고 츄르(짜요짜요처럼 생긴 고양이 간식)를 가방에 넣어 다니다 먹여주기도 했다. 어느 날 밤에는 차에 치였는지 한쪽 다리를 절면서 현관 앞을 걸어가는 털뭉치를 보기도 했다. b는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집에서 키울 형편이 못 된다고 했고,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키울 자신이 없었다. 고양이를 집에 들여와서 베란다에 집을 마련해 두고 키워볼까라고 했을 때, b가 고양이는 방에서 함께 생활하지 따로 그렇게 가둬놓고 키우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학교 바로 옆에 사시는 허여사님께 고양이를 맡기고 사료를 사다 주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b와 나의 말을 들은 허여사님이 대놓고 거절은 못하시고 그럼 한번 갖고 와 봐요,라고 말했다.


털뭉치를 다시 만난 지 한 달 뒤, 일요일이었다. 털뭉치가 1층 복도 끝 유모차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다른 때와 울음소리가 달랐다. 아파서 우는 것 같았다. 울면서 다리를 다쳤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놀다가 차에 치였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털뭉치 소식을 들은 b가 본가에서 돌아오자마자 털뭉치를 보러 갔으나 유모차에 없더라고 했다. 털뭉치가 사라졌다. 관사 주변에서 보이지 않았다. 밤에 산책하러 다니다가도 노란색 고양이가 보이면 털뭉치인가 싶어 살펴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주차장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서 창문을 열었더니 털뭉치가 보였다. 반가움 마음에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털뭉치와 함께 있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평소에도 관사 주변에 모여드는 길고양이들 밥을 주고 있었는데 차에 치여 다리를 다친 털뭉치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홍천까지 데리고 가서 수술시켰고 수술한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밖에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원래 길고양이였는데 애기 고양이때(아마도 내가 계단 난간 사이에서 처음 봤을 때) 어느 분이 집에 데려가 키웠다고 했다. 그러다 그분이 발령이 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서 털뭉치를 버리고 갔다고 했다. 집에서 사람들과 같이 지낸 고양이라 그렇게 아무 사람한테나 몸을 비비고 차에 올라타고 그랬던 것이었다. 그때 엄마랑 같이 나온 대여섯 살 돼 보이는 아이가 털뭉치랑 놀다가 "얘, 이름은 치즈예요, 치즈"라고 했다. 고양이 선생님은 "냥이"라고 부른다고 했지만 그때부터 우리는(b와 나, 그리고 우리 식구들) 털뭉치를 치즈라고 불렀다. 그렇게 치즈는 관사에서 제일 마음이 따뜻한 분의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고양이 선생님의 보살핌 덕분에 치즈는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사교성이 좋아서 친구도 많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여자 친구와 스킨십을 나누는 치즈의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문제는 치즈가 집안에서만 생활할 수 없는 고양이였던 것. 새벽부터 밤늦도록 관사 주변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그래도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라서인지 잠은 꼭 집에 들어가서 잤다. 고양이 선생님의 집 복도 부엌 쪽 창문 아래에 놓인 플라스틱 박스를 딛고 올라서서 좁게 열린 창문 사이로 집을 드나들었다.


고양이 선생님이 주는 사료를 먹으러 동네 길냥이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날은 새들도 날아와서 고양이 사료를 먹고 가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모여들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겼다. 고양이가 차 아래에 있는 줄 모르고 칠 뻔했다든가, 고양이가 차 위에 올라가 있다든가, 관사 복도에서 고양이 똥이 발견된다든가, 늦은 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듣기 싫다든가... 그때마다 치즈와 고양이 선생님이 욕을 먹었다.


내가 사는 관사는 연합 관사라 관내 여러 학교 선생님들이 모여 산다. 그해에 우리 학교 관사 위원장을 맡고 있던 내게도 관사에 사는 몇 몇 선생님들이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않냐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이웃 학교에 근무하는 고양이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불편해하는 상황을 전했더니 그렇잖아도 맘카페에 글을 올려 치즈를 입양 보낼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 치즈가 입양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입양 간 지 하루 만에 다시 다시 고양이 선생님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치즈를 데려간 분이 키우지 못하겠다고 다시 데려가라고 했다고 했다.



그 후로 4년 동안 치즈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고양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과 복도에 있는 고양이 똥을 말없이(때로는 투덜거리며) 치워주는 우리 집 남편 같은 사람들과 오가다 만나면 불러서 등을 쓰다듬어 주는 b 같은 사람들과 남의 텃밭을 제집 놀이터인양 친구들을 데려와서 놀면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나에게 치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은 눈치 없는 말썽꾸러기 고양이가 사라져서 속이 시원한 걸까, 그때는 미웠지만 그사이 미운 정과 함께 고운 정도 들어서 약간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걸까, 다른 곳에 가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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