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보니 마음이 아팠던 것 같긴 하네요
[상담 중 나눈 인상깊었던 대화]
“축구선수가 발목을 다쳤는데, 사람들이 괜찮냐, 아프냐 물어봐도 괜찮다고 대답하다가 누군가 발목을 만지자마자 “악!!”하고 비명을 질렀어요. 이때 축구선수가 해야 할 행동이 뭘까요? 당연히 아픈 걸 인정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죠. 그런데, 아파서 “악!!”하고 비명을 질러놓고 하는 말이 “들켰다”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
"음.. 이상하긴 하네요.ㅎㅎ"
' 듣고 보니 이상하지만.. 진짜로 들킨 기분인 걸요. '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지금 상태를 개선할 의지가 확실하게 있어요?"
상담사님은 내가 지금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라는 것을 받아들였는지, 개선 의지가 있는지 여러 번 물어보셨다. 그러자 또 말문이 막혔다.
’ 개선..?이라는 게 될까? 내 주된 스트레스는 모두 직장에서 오는데, 직장 사람들은 내가 절대 바꿀 수 없지. 이 상황에서 무언갈 바꾸려 한들 내 말이 받아들여 지지도 않을 텐데.. 지금까지 내가 해온, 나라도 괜찮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 외에 뭐를 더 할 수 있단 말이지?‘
몰아치는 회의감에, 개선해 보겠다는 말이 시원스레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많이 아픈 상태라니까 고치긴 고쳐야 겠다는 생각에 또다시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고치긴.. 고쳐야겠죠..”
이런 미적지근한 대답이 상담사님을 만족시킬리 없었다.
나의 이 애매한 태도가, 많이 답답하셨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속에서 전쟁 중이었다.
’ 무언가 속에서 울컥하는데, 이걸 내보내고 싶지는 않아. 혹시라도 울어버리면 있다가 집에 갈 때 지하철에서 마주칠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나는 그렇게 힘들 리가 없는데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사실 다 알지만 모른척하고 싶었다), 개선하자고는 하시는데 여기서 무얼 더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자신도 없고.. 모른척하고 싶다. 그냥 내가 살던 대로 사는 게 편할지도 모르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무겁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머리는 멍해졌고, 그래도 대답은 해야겠기에 상담사님이 원할 것 같은 답을 말하면서도, 나름의 반항(?)으로 영혼 없이 답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도망치려는 나와 붙잡아 직면시키려는 상담사님의 핑퐁이 이어지다가, 상담사님의 결정적 한 마디가 탁 하고 날아와 꽂혔다.
“지금 많이 힘들잖아요. 감정을 터트리면 다 무너져 내릴까봐 참고 있는 거잖아요.”
라고 하시는데, 너무도 정답이라 거기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참고 참던 눈물이 터졌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안 운 척 숨기기엔 늦었다.
나는 솔직히 무서웠다. 내 안의 내가 나와버릴까봐. 숨기고 싶었던 연약한 내가.
그래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꺼내지 마세요..”라고 중얼거리며 울어버렸다.
상담사님이 손수건을 건네 주셨는데, 그마저도 쓰기 조심스러워 잠깐만 쓰고 눈물을 참는데 급급했다. 잠시동안 인상을 쓰며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입에 힘을 주어 다물며 터져버린 감정의 댐을 다시금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면서, 다시 ‘평온해보이는 나’로 돌아오도록, 갑옷 속으로 숨어들었다. 한 편으로는, 상담사님도 내 이런 과정을 다 눈치채고 있겠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나에겐 중요했다. 다시 차분함을 되찾는 것이.
그렇게 잠깐의 시간 동안 울고 나서, 상담사님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물었다. 나는 “들켰다” 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상담사님이 축구선수의 비유를 들어 주었다.
“축구선수가 발목을 다쳤는데, 사람들이 괜찮냐, 아프냐 물어봐도 괜찮다고 대답하다가 누군가 발목을 만지자마자 “악!!”하고 비명을 질렀어요. 이 때 축구선수가 해야 할 행동이 뭘까요? 당연히 아픈 걸 인정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죠. 그런데, 아파서 “악!!”하고 비명을 질러놓고 하는 말이, “들켰다” 라고 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맞는 말이었다. 이렇게 들으니 이상한 말이었지만.. 왜인지 나는 정말로 ‘들켜버린 기분’ 이었을 뿐이다.
한바탕 울고 난 뒤, 상담사님이 얼마만에 운 거냐고 질문을 하셨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잘 안 우는 편이긴 하지만 얼마 전 직장에서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낸 날에 3분정도 울었다고 답했다.
상담사님이, "3분이요?" 하며 약간 '하이고..' 라고 한숨 쉬고 싶어하는듯한 말투로 반문하셨다.
내가 멋쩍게 웃으면서 "ㅎㅎ 그 뒤에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했거든요." 라고 하자, 할 말은 많지만 일단 하지 않으시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핫, 어른스럽지 않은가.. 눈물도 참고 씩씩하게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라는 생각은 곧 몇주에 걸쳐 상담사님의 부드러운 말투로 개선당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