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바라보는 것
가족들 보기에 아이를 키우는 것에 있어서 우리 아내는 매우 허용적으로 보인다. 아이가 밥을 먹을 때는 영상도 보여주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게 해주며, 뛰어다니는 것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아는 내 입장에서 아내의 이러한 허용적 모습은 실제로는 통제이다. 아이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어떻게는 밥을 먹이겠다고 하다 보니 영상도 보여주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게 해주고, 중간에 과일도 먹였다가, 나중에는 돌아다니면서 먹는 것도 허용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은데 밥 먹는 시간이라도 앉혀놓고 억지로 밥을 먹이는 것이다. 영상을 보다 보면 배가 불러도 먹으니 영상을 보면서 억지로 먹는 거다. 배가 불러도 과일은 들어가니 과일도 먹는 거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먹이겠다는 통제심이 다른 것들을 허용시킨 것이다.
여기서 아내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내가 외국에 살고 있을 때 아내는 부모님 댁에서 머물렀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터넷에서 쉽게 보듯이, 할머니 집에 며칠 살고 왔더니 아이가 뚱뚱해진 케이스들이 있지 않은가?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비쩍 꼴았다'며 어떻게든 먹이려 했고, 아내는 그게 육아 기준인 줄 알고 똑같이 어떻게든 먹이려 한 것이다.
아무튼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 아내의 육아 방침은 매우 허용적인 거 같지만, 실제로는 아이의 식사를 통제하려던 것이다. 어떤 하나를 과도하게 통제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것들이 허용적으로 보였을 뿐인 거다.
한 번은 쓰레드에서 어떤 글을 본 적이 있다. 사역자였는데, 자기를 가르쳤던 침신대 교수가 동창회에 갔더니친구가 진보 진영의 대통령을 엄청 욕했다는 거다. 그래서 침신대 교수가 말하기를, 타 진영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욕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교수가 말한 본질은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대편 진영의 살마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범죄자라고 욕해서는 안 된다"이다. 그런데 그것을 인용한 이 사역자라는 인간이 댓글로, "그래도 ㅇㅅㅇ 대통령은 욕 먹어도 싸지"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사역자의 지능에 의심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타 진영의 대통령을 범죄자라고 욕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해놓고, 자기는 보수 진영의 대통령을 욕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은, "진보 진영은 욕해선 안 되지만 보수 진영 대통령은 욕해도 돼"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그냥 애초에 "범죄를 저질렀으면 욕해도 된다"라고 하든가, "ㅇㅈㅁ 대통령은 범죄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고 했으면 모른다. 그런데, "타 진영의 대통령을 욕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해놓고, 그 댓글에 어떻게 자기는 자기 진영이 아닌 대통령을 욕하냐는 거다. 이건 자기 말을 자기가 반박한 꼴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은 착하고 정의를 사랑할지 모르지만 지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나는 진영을 떠나서 이런 사람들과는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편파적이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얕은 관계가 가능하겠지만, 깊은 관계를 맺어서는 나 자신도 편파적인 사고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침신대 출신의 이 사역자처럼 엄한 소리를 할 수가 있다. 상대편 진영의 대통령을 욕해서는 안 된다고 해놓고, 자기는 욕해도 된다고 하는 편파적이고 저급한 지적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
교수가 말한 의도는, "사람들도 많고, 서로 정치 성향도 다른데 왜 굳이 예의에 어긋나게 대통령 욕을 하느냐"였다. 그러니까 정치 성향이 다르더라도 동창회이니 굳이 정치 싸움 하지 말고 넘어가자는 거다. 그런데 이런 소리를 인용하면서 "그래도 나는 욕해도 된다" 같은 소리를 하다니 말이다.
아내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아내는 한참이나 내가 "당신은 아이에게 너무 통제적이야"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자녀 육아 상담사를 만나고 나서야 자기 자신이 통제적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현상만 이해한다면 거꾸로 진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질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