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4-40]
이번 시리즈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율법은 좋은 걸까요?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율법은 나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셨을까요?
또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율법주의는 나쁜 걸까요?
물론 율법주의는 나쁜 겁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율법과 율법주의를 혼동하며 율법은 나쁘다고 말합니다.
이건 마치 “식탐은 나쁘다” 그러니 “음식도 나쁘다”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식탐이 나쁘더라도 음식은 좋은 겁니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주의는 나쁘지만, 율법은 좋은 겁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잘못된 신앙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사족이긴 한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까?
구약에는 의식법, 시민법, 도덕법이 있는데, 예수님 오신 이후로는 이 중에서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만 지킵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도 이 도덕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즉,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율법과 율법주의에 대해 다루기 전에 먼저 하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제 동생이 울고 있었습니다. 동생과 싸우다 보니 제가 동생을 때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생 때리지 마! 한 번만 더 때리면 혼날 줄 알아!
그러면 제가 동생을 안 때렸을까요? 안 때렸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또 동생이 울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오셔서 저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동생 때리지 말랬지!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놀랍게도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안 때렸는데요? 그냥 놀렸는데요?
그러면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은 걸까요?
여기서 아버지가 “때리지 말라”고 하신 것은,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라는 것이지, 때리지만 않으면 동생을 말로 협박하든, 건드리지만 않고 위협하는 것이든 모든 걸 다 허용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아버지의 명령은 “때리지 말아라”였지만, 아버지의 실제 뜻은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라”였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동생을 때리지만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동생을 괴롭힌 겁니다. 즉, 겉으로는 아버지의 명령을 지켰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말씀에 전혀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율법과 비슷합니다. “동생을 때리지 마!” 이게 바로 십계명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 율법의 조항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간에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라”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주의자들은 어떻게 하면 때리지 않는지에 대해서만 강구했지, 실제로는 동생을 울리고 괴롭혔던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율법의 정신을 무시한 것, 곧 하나님의 의도와 뜻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두 가지 대계명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위해 십계명을 주셨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사랑입니다.
다음 편, "율법은 사랑입니다"에서 계속됩니다. 아래의 링크에 시리즈가 정리될 예정이니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