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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고민

문화가 결정한다

by 초덕 오리겐

Intro


얼마 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도 그렇고, 한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한 교회의 리더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리더가 되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리더에게는 시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도 한계가 있다.




한 가지 예, 어떤 설교를 할 것인가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설교이다. 목사에게는 목회 철학과 함께 설교 철학도 존재한다. 어떤 설교를 할 것인지가 그 목사의 설교 철학과 고민을 잘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목사의 고민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첫째는, 성경 중심 혹은 진리 중심으로 갈 것인가이다. 둘째는, 사람 중심 혹은 청중 중심으로 갈 것인가이다. 물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베스트이다. 하지만 설교의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설교 준비 시간에도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청중 중심 설교를 이야기해보자. 이때는 보통 상황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한다. 예를 들어서, PK(목회자 자녀들) 모임에서는 "왜 PK들은 교회에 불만이 많은가"에 대해 설교할 수도 있다. 교회에서 과중한 관심과 착취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시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그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자리에도 있어"와 같은 동질감이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설교를 하게 된다. 설교자가 인기를 끌 수는 있겠지만, 신앙에 진심인 사람들은, "그래서 이게 성경이란 무슨 상관이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성경 속에 나오는 사무엘의 자녀들이나 다윗의 자녀인 솔로몬 등을 소개하면서 종교적 정치적 리더의 자녀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가를 먼저 이야기하고, 그 뒤에 그것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성경에 관심이 없을 경우 "또 성경 이야기야?"라면서 듣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성경 이야기를 다룬다는 이유로 관심이 팍 식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성경의 원리를 적용 뒤에 하기도 한다. 보통은,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말하는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어떤 설교를 할지에 대해서도 사역자들이 고민을 하게 된다.




목회자의 고민


위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리더에게는 고민이 있다. <어떻게 하면 성과를 낼 것인가>와 <어떻게 하면 선한 결과를 낼 것인가>이다.


여기서 "성과랑 선한 결과가 뭐가 달라?"라고 생각할 거 같다. 이것을 목회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내가 의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까 설교자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잘 보일 것이냐 VS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을 먹일 것이냐>이다.


어떤 목사는 성도들에게 신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새벽예배 두 시간 전부터 나와서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새벽예배가 끝나고도 2시간이 지나, 그곳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남아 있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집에서 잠을 자지 않고 아예 전날 저녁부터 이불을 가져와서 정장을 입고 새벽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성도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까? 새벽예배 나오지 않으면 신앙이 없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메시지일까? 그러니까 이 사람의 목적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것인가이다.


잠깐, 여기서 논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지금 나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리더십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저러한 행위를 하는 목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선한 영향력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해도 저러한 행위로 <리더십을 인정>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 리더십을 인정받지 못하면 애초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문화가 결정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좋은 말씀을 먹이는 것보다 성도들에게 인기와 인정을 구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문화 때문이다. 즉, 문화가 리더의 수준을 만든다.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문화가 리더십의 수준을 정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 하더라도, 선한 영향력과 공동체의 성장보다 <보이기 위한 성과를 만드는 것>에 열중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Toute nation a le gouvernement qu'elle mérite)"는 말이 있다.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프랑스계 보수주의자 조제프 드메스트르가 1811년 러시아 헌법 제정에 관한 토론 도중 한 발언이다. 그런데 공동체의 리더도 마찬가지이다. 공동체의 문화가 리더에게 요구하는 것이 공동체의 성장이 아니라 "가시적 성과"라면 리더도 이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는 거다. (안 그러면 쫓겨나니까.)


교회에서 사역자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사역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 있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닌데도 <성도들의 인정을 먼저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 부서의 지도 교역자가 된 전도사가 있다고 해보자. 교사와 학생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 학생들 숫자가 는다든지, 수련회 때 은혜 받고 우는 아이들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도사의 사역 목표는 학생들 숫자를 늘리거나 설교로 아이들을 울리는 것에 향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기보다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새로 담임 목회자가 오면 담이 목회자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발언권이 강해진다.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몇 년 안 되어 쫓겨날 수도 있다. 그러면 오랜 기간에 걸쳐 제자를 삼는 것이 목표인 담임 목회자가 제자훈련보다 사람들 숫자 늘리는 전도 집회와 같은 이벤트에 사역 자원을 쏟아붓게 된다. 왜냐면, 제자훈련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 교회가 이런 식으로 하향 평준화가 되었다. 가시적인 숫자 늘리기에만 혈안이 되어서, 성도의 신앙 수준은 전혀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기본적인 문답조차 배우지 않은 성도들이 수두룩하다. 참고로, 장로교에서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배우고 시험을 보는데, 이걸 제대로 배운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다.




기업도 마찬가지


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 같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기술 기업이 (기술적) 성장보다 가시적 성과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좀더 설명하자면, 임원들은 임시직인데, 그렇기 때문에 성장보다 빨리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게 되어 버렸다는 거다. (단기간에) 성과를 안 내면 실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과 발전보다 자기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재무는 서포터가 되어야 하는데 재무가 키를 잡고 있어서라는 말도 있다. 재무가 키를 잡고 있으면, 실무 지식 없는 경영자가 근시안적인 수익에 눈이 멀면, 성과가 안 보이고 바로 돈이 안 인다는 이유로 연구진들과 개발진들을 해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를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IBM과 제록스와 같은 기술 기업이 망해가는 이유는 개발진이 아니라 사업팀과 마케팅 팀이 키를 잡아서라고 이야기한다.




쇄신을 위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리더들이 팔로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어떤 문화를 만들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리더에게 바른 리더십을 요구할 수 있는 걸까? 교회를 예로 들자면,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해야 할까? (물론 위의 글을 읽었다면 여기서 <성장>이라는 말이 단순히 숫자 늘리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할 것이다.)


먼저 나는 목회자에게 성장이 아니라 성과를 요구하는 교회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목회자에게 성과를 요구하고, 체면을 세우게 만드는 것에는 수치의 문화, 율법주의, 외식의 문화, 평가질이 넘치는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이 교회의 성장보다 목사가 자기 체면을 세우고, 단기적인 성과에 목을 매도록 하는 것이다.




정리하며


목회자의 시간을 교회 성장,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성장과 전혀 상관 없는 곳에 쏟게 하는 문화가 한국 교회 안에 팽배해 있다. 교회의 우선 순위가 설교와 교육 같은 성장보다 성과를 요구하는 문화가 있다. 목사가 설교 준비할 시간도 없도록 만드는 문화가 한국 교회 안에 있다. 설교보다 디테일(주보나 기타 등등..)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새벽까지 디테일을 신경쓰다가 설교 준비를 두 시간 밖에 못하고 단에 올라가게 만들기도 한다.


또 어떤 교회는 목회자에게 경영자의 시선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경영자의 시선이라는 게 스티브 잡스가 말한 기술 기업들이 망해가는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마치 기술 기업이 개발진과 연구진보다 마케팅과 사업팀에 집중하듯, 오늘날 많은 교회들도 말씀과 제자 양육보다 숫자와 외형, 운영 전략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공동체이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삶으로 증거해야 하는 곳이다. 문화를 바꿔야 한다. 본질을 붙들어야 한다. 가시적인 성과보다 말씀의 깊이와 공동체의 성숙함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리더를 리더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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