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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과 채찍 Oct 27. 2020

우리에게 고통이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고

당신에게 고통은 의미가 있습니까?

갤럽에서 '당신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대신해서 사용한 질문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냐는 질문은 교회, 절, 성당, 사원과 같이 종교의 예배당을 주기적으로 가는지를 묻는 차원이 된다. 요즘은 종교의 예배를 보러 주기적으로 방문하지 않아도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사용한 질문이다. 종교에서는 고통을 단순히 어렵고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 고통에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신은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을 주신다'를 보면 종교에서 고통이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다. 과연 당신에겐 고통이 의미가 있나요?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고통이 가진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고통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고통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몸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괴로움'이라고 나와있다. 고통을 몸과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날카로운 칼에 베인다거나, 주먹으로 세게 맞는다면 우리는 통증을 동반한 고통을 느낀다. 육체적인 고통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필요한 기재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고통이 있는 환경을 피하고, 고통이 예상되는 환경을 피하면서 안전한 장소를 찾았을 것이다. 마음의 고통도 진화에서 필요한 기재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우리에게 직업, 인간관계와 같이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변화되었다. 변화된 요소에 맞게 고통도 변화하였다. 친했던 친구와 사소한 일로 멀어지게 되면 고통을 받고, 과도한 업무를 받아서 전부 처리하지 못하면 고통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고통은 주로 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한 장소에서 사는 내가 느끼는 고통은 대부분 마음 고통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마음의 고통만 해도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때로는 병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서 보이는 고통은 주로 육체적인 고통이다.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전쟁에서 느낄 수 있는 고통은 사진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보이는 육체적인 고통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전투나 폭격 등으로 육체가 다친다면 육체적인 고통이 주가 된다. 전쟁을 겪는다고 해서 모두가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식량의 부재, 혼동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생활을 유지하고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안정감이다. 자신이 대중교통, 도로, 식사와 같이 매일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부재되면 그런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돈, 시간, 노력을 들여야 한다. 무서움을 주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안전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언제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그런 공포는 고통으로 이어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은 인간으로 벗어날 수 없지만, 언제나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쟁은 단순하게 육체적인 고통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심연에 존재하는 죽음의 공포를 일으키고 고통을 준다. 전쟁의 고통은 전쟁하는 국가 혹은 지역에서 산다면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다.


전쟁은 육체적인 피해만이 아닌 정신적인 공포를 안겨준다
사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우리에게 사진은 현실을 반영한 결과이고, 사진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보고 우리는 많은 것들을 상상하고 유추한다. 사진 한 장으로 앞뒤의 스토리를 상상하고, 결론과 교훈까지도 이끌어 낸다. 사진을 현실을 기반으로 찍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진이 모든 현실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집을 구할 때 우리는 어플이나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가본다. 하지만 사진으로 봤던 그 장소가 실제로 보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동산을 사진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사진은 한 부분만 보여주고, 그 부분은 의도를 담아서 보여주게 된다. 사진은 현실을 담아내지만, 모든 현실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독수리는 아이를 공격했을까?

무엇인가를 회상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장면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생각난다. 동영상과 같은 콘텐츠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우리가 상기하는 방식은 아직도 장면이다. 장면에 익숙하다 보니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이 보여 주는 장면으로 많은 내용을 유추하면서 그것에 동반해서 감정도 느낀다. 그런 감정들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절하게 판단했다고는 볼 수 없다. 산불로 인해서 동물이 죽은 사진과 밀렵에 의해서 동물이 죽은 사진을 보면 죽음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 연민을 느끼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장면을 보았고 그 장면에 대한 감정적 지불이 이루어졌으므로 우리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진은 다른 이유에서 생긴 결과이다. 산불도 자연적인 원인인지 아니면 인간에 의한 원인인지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온다. 밀렵은 확실하게 인간의 야만성에 의한 끔찍한 결과이다. 동물이 죽었다는 장면에만 집중해서는 부족하다. 사진은 효과적인 장면 전달 수단이지만 실제의 벌어진 일을 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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