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작가는 일상을 여행하기로 했지만, 나는 여행길에 이 책을 들고 나섰다. 퇴사 후 우울에 빠져있던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나, 출근을 하지 않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인 것 같았다. 일상이 롤러코스터 같았던 내가 유람선에 탄 채로 표류해 있는 것 같았다. 당장은 안온하지만, 언젠간 식량이 떨어지거나 갑작스러운 재해에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정신없이 살 때가 더 좋았던 것이 아닐까, 여러 고민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 책은 내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첫째, 여행에 들고 간 책 중 완독 한 유일한 책이다. 둘째, 연필로 줄을 긋기 시작하게 만든 책이다. 심지어 연필도 없었다. 조카가 색칠공부를 하기 위해 들고 온 색연필 사이에 있던 연필을 빌려서까지 줄을 그었다. 바로 이 문장이 내가 절대 참을 수 없었던 그 문장이다.
낯설고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나는 조용한 일상이 싫지 않았고 어느새 그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럴수록 나에게 집중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p.117 / 나는 일상을 여행하기로 했다 | 리밍 | 마누스
이 문장은 퇴사 후 집에 종일 혼자 있는 나를 대변하는 글이었다. 작가는 이 시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 시간을 채우느냐가 중요해졌다고 했다. 그때, 내가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이 뭐가 있었는지 다시금 되새기기 시작했다. 출근길 사람들의 표정도 한 번 보고 싶었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무 정류장에 내려서 걷고 싶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무작정 필사해 봐야지 했다. 패드를 들고나가 카페에서 글 쓰는 작업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간도 사실 내 몸이 회복하는 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것을 여행이라고 불러주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동안 일상을 여행하기로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해외 생활에 불안해하기보다 마치 긴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돌이켜 보면 소중하고 귀할 이 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p.137 / 나는 일상을 여행하기로 했다 | 리밍 | 마누스
단순히 제목만 보고, 일상을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까 했다. 일상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점점 읽어갈수록 단조로운 일상을 여행이라고 여기고 매사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해 낸 작가가 대단했다.
무엇이든 한 발짝 떨어져서 볼 땐 아름답게 보이는 법. 특별해 보이던 장면에 발을 담그니 삶이 반복되는 건 마찬가지인 것이다.
p.285~287 / 나는 일상을 여행하기로 했다 | 리밍 | 마누스
퇴사를 하기 전에는 내게 퇴사한 일상 자체가 여행이었다. 하지만 퇴사 후의 삶이 단조로워지며 나는 우울감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현재의 휴식기를 인생의 또 다른 여행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매 순간이 소중해졌다. 여행을 갔을 때, 일 분 일 초가 아쉬워서 주위를 둘려보고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겼던 것처럼. 덕분에 새로운 시리즈도 연재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매일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퇴사 전에 꿈꿨던 여행을, 나는 이제 한 발씩 내딛고 있다. 비로소 내 유람선은 표류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항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