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글쟁이
스타벅스의 신메뉴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맛보고 후기를 들려주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그 친구의 첫 직장은 스타벅스의 쇼케이스를 납품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스타벅스 CS팀의 총괄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뭐든 열정적으로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최근에 스타벅스 바리스타로 새로운 길을 시작했다. 계속 그리면 그 꿈에 닿아있다는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친구를 통해서 꿈을 향해 가는 길은 반듯한 직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은행에서 통장을 만들면서 은행에서 일하는 그 언니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어린 마음에도 해당 계열사에 입사하고 싶었다.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대기업에 간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공부를 소홀히 했고, 지방대에 간 나는 택도 없었다. 그런데 나의 최종 퇴사 증명서에는 원하던 계열사 이름이 찍혀있다. 9번의 이직만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꿈이 아니었다. 그건 가고 싶은 회사였고, 갖고 싶은 직업이었다. 난 초등학교 때부터 지하철역에서 버스정류장 사이에 돗자리를 깔고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노인분들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누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그런 분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은 되게 부잣집 할머니인데 심심해서 소일거리 하시는 거라고.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속상해하는 어린 마음이 안쓰러워서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해준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나는 그 당시 크게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더 약한 개체로 대상을 변경했다. 유기견이었다. 때마침 중학교 때, 우리 집에서 버려진 개를 데려와서 키워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훗날 내가 회사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벌면, 유기견을 위한 재단을 세워서 수의사를 고용해야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회사가 개인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주는지, 한낱 중학생이 알 수는 없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퇴사를 해서 한 푼도 벌지 못하는 지금도 나의 꿈은 여전히 같다. 아니, 오히려 나의 꿈은 더 커졌다. 나는 유기견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것 이외에도 고아원 등 시설에서 자립해야 하는 갓 성인이 된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친구들이 너른 마음으로 유기견이나 유기묘와 더불어 살아준다면 더 좋을 것 같긴 하다. 지금 당장 자본이 없다고 해서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