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웅 Sep 15.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12

서3치(西三雉)는 왜 성 안으로 들어왔을까?

작고 단순한 화성의 방어 시설물인 치(雉)는 8개소이다. 이 중 유독 서3치와 남치는 여장이 성 안으로 튀어 들어와 있다. 성 안으로 들어온 미스터리를 밝혀본다. 


서3치와 남치는 왜 성 안으로 들어왔을까?


화성에 성의 시설물로 19종류 60개 시설물이 있다. 모두가 화성 방어를 담당한다. 이 중 치(雉)는 다른 시설물에 비해 외관이 가장 보잘것없지만, 방어의 기본 시설이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순수한 치가 8개소(凡八所)이며 사실상 치까지 합하면 16개소(其實十六)가 된다.


치의 기능에 대해 의궤는 "좌우로 마주하는 치(雉)에서 탄환과 화살이 번갈아 날아온다면 비루나 운제를 어찌 설치할 수 있겠는가"라고 설명한다. 비루와 운제는 성을 공격하고 넘어 들어갈 때 사용하는 구조물로 비루(飛樓)는 트로이 목마이고, 운제(雲梯)는 대형 사다리를 상상하면 된다. 

성 밖으로 돌출한 치(雉)는 좌우에 있는 시설과 함께, 접근하는 적의 측면을 공격하는 시설이다.

이처럼 치의 설치 목적이나 주 기능은 성으로 접근하는 적의 측면을 양쪽에서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양 옆구리로 화살이나 총알이 날아온다 생각하면 성으로 접근할 염두를 아예 못 낼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치의 구조는 원성(元城)에 잇대어 성 밖으로 성을 돌출시킨 형태이다. 돌출된 치성(雉城)을 따라 3면에 여장이 설치되어 있다. 이 여장을 방패 삼아 병사가 숨어서 적의 동정을 살피거나 앞에 말한 것처럼 총으로 적의 측면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런 본래의 구조와 달리 아주 색다른 모양을 한 치가 화성에 2곳이 있다. 바로 남치(南雉)와 서3치(西三雉)다. 의궤에 이 2곳에 대해 "성가퀴 양쪽 끝이 원성 안으로 3척이 들어갔다"라고 특별히 설명한다. 아주 특이한 모양이라 기록으로 남긴 것 같다. 실제로 서3치를 가보면 성 안으로 들어온 여장을 볼 수 있다. 성가퀴는 여장의 우리말이다.


왜 여장(女墻)의 양끝이 원성 안으로 3척이나 들어왔을까?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유를 몰랐던 화성의 미스터리 중 하나이다. 이를 파헤쳐 보자.

사진에서 보듯 서3치는 여장이 성 안으로 3척이 들어와 있다. 모든 치는 3면이 여장인데 비해 4면이 여장인 것도 특이하다.

쉽지 않은 문제이나 남치의 설치 상태로부터 풀어 보자. 남치가 놓인 지형을 보면 북에서 남쪽, 그리고 서에서 동쪽으로 2방향 모두 경사가 급한 곳이다. 특히 서에서 동쪽으로는 40%가 넘는 매우 가파른 경사 때문에 남치를 동서방향, 즉 폭을 넓게 할 수가 없었다. 넓게 하면 기초하부가 빗물에 쉽게 파이게 되고 결국 붕괴된다.


치의 규모는 둘레길이로 말한다. 둘레길이는 좌우 돌출 길이와 전면의 외면 길이을 합친 수치이다. 8개 치의 규모에서 서3치는 7위, 남치는 8위로 서3치와 남치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참고로 1위부터 보면 북동치 20보, 동1치와 동3치 17보, 서1치 16보 1척, 동2치 16보, 서2치 14보 5척, 그리고 서3치가 14보 4척, 남치가 14보 2척이다.

남치는 성 밖의 지형지세가 서에서 동으로 40%가 넘는 급경사지다. 옆으로 넓힐 수 없는 형국이다. 사용 면적이 좁고 작게 된 이유다.

둘레길이를 규모로 보지만 외형일 뿐 실제로 사용하는 면적은 아니다. 그래서 여장 내부의 순수 사용면적을 실측해봤다. 남치가 13.5제곱미터로 7위, 서3치가 13.1제곱미터로 8위가 된다. 매우 작은 면적이다. 나머지 북동치 34.8, 동삼치 33.6, 동이치 25.4, 동일치 25.2, 서일치 21.7, 서이치 18.5제곱미터이다.


규모에서 서삼치와 남치는 7위와 8위로, 사용면적에서 8위와 7위이다. 사용면적을 비교해 보면 면적이 작은 서삼치(13.1제곱미터)와 남치(13.5제곱미터)는 큰 면적을 갖고 있는 북동치(34.8)와 동삼치(333.6)의 반(半)도 안 된다. 같은 치 인데도 너무 작은 면적이다.

서3치는 팔달산 능선에 위치해 원형이 많이 보존됐다. 경기도청서 오르는 도로의 개통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경사가 급했다.

형상비(形狀比)도 살펴보았다. 형상비란 돌출 길이를 외면 길이 즉 길이를 폭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이 비율이 크면 치의 모양이 가늘고 긴(細長) 모양이고, 수치가 작으면 두껍고 짧은(厚短) 모양으로 보면 된다.


남치와 서3치는 매우 가늘고 긴(細長) 평면으로 나온다. 수치가 아니더라도 서3치와 남치에 올라서면, 보자마자 "왜 이리 폭이 좁아!" 또는 "이 면적으로 뭐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이 자연히 나오게 되어 있다. 누구나 좁고 작음을 느낄 것이다.  

서3치(西三雉) 여장 안 모습으로 이곳에 오는 분들은 누구나 좁고 작은 쓸모없는 면적에 놀란다.

정리하면 남치와 서3치는 불리한 지형으로 인해 좁고 길고 협소하고 쓸모없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성 전체의 방어시설 배치상 그곳에 치가 꼭 배치되어야 했다. 정조는 위치와 면적을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쓸모없는 공간을 쓸모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방안으로, 여장을 성 안쪽으로 연장한 것이다. 


여장을 성 안쪽으로 3척을 끌어들여 늘린 면적이 각각 2.3제곱미터이다. 이를 합하여 남치는 15.8제곱미터가, 서3치는 15.1제곱미터가 되었다. 성 안으로 툭 튀어나오는 불편함에도 치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필요면적을 확보한 것이다.

화성에서 치(雉)는 위계(位階)도 낮고 구조물도 없는 기본 방어 시설물이다.

위계가 가장 낮은 시설물에다가 사용면적도 가장 적은 서3치(西三雉)와 남치(南雉)에 여장(女墻)을 성 안으로 당겨 들이면서까지 공간을 늘려 최소 필요면적을 확보해 중 정조(正祖)의 의도를 엿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