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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Sep 15.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14

동장대 기죽석(旗竹石)에 무슨 일이?

동장대는 인근에 너른 훈련장을 만들고, 군사훈련이라는 임무를 수행토록 했다. 지금은 국궁 활쏘기장으로 관광객에 인기가 많다.


동장대 기죽석(旗竹石)에 무슨 일이?


화성에는 장대(將臺)가 2곳 있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와 동문과 마주 보고 있는 동장대다. 장대는 장수가 주재하는 전투 지휘부다. 지휘부의 위상에 맞게 인근에 노대(弩臺)와 후당(後堂)을 배치했고, 큰 깃대인 대홍위간(大紅위杆)을 좌우 양쪽에 세웠다. 


동장대 출입문을 들어서면 말을 타고 오른다는 경사진 와장대(臥長臺)가 바로 앞에 보이고, 그 위 중대(中臺) 양쪽에 2개의 높은 깃대가 눈에 들어온다. 큰(大) 붉은(紅) 칠을 한 나무 깃대(桅杆)라서 명칭이 대홍위간(大紅桅杆)이다. 의궤에도 "중대 좌우로 크고 붉은 외간 한 쌍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다. 

동장대 문을 들어서면 중대(中臺)의 양쪽 끝에 붉게 칠한 큰 나무 깃대와 깃발이 보인다. 이것을 "대홍위간"이라 부른다.

외간이 서장대와 동장대에 각각 한 쌍이 있는 이유는 깃대가 올라가는 기(旗)에 따라 실시하는 군사훈련이나 특별한 행사를 군사와 백성이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멀리까지 알리기 위해 높은 나무 깃대를 사용했다. 수원 백성이 시력이 좋았던 것 같다.


길고 굵은 그리고 무거운 나무 깃대가 서있도록 버텨주는 것이 바닥에 박아놓은 돌인데 이를 기죽석(旗竹石)이라 부른다. 나무 깃대 양쪽에 돌을 세우고 핀을 아래 위로 꽂아 나무 기둥을 잡아주는 것이다. 사찰의 당간지주와 메커니즘이 같다. 그런데 복원된 동장대의 작고 단순한 기죽석에 안타까운 흠이 있다.


동장대 기죽석(旗竹石)에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크고 높고 무거운 나무 깃대를 쓰러지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것이 깃대 아래 양쪽에 있는 돌로 만든 지지대인데 이를 "기죽석"이라 부른다.

첫째, 규격이 잘못됐다. 의궤 권 6 재용(財用) 실입(實入)에 보면 동장대에 중(中)기죽석 4 덩이가 투입되었다. 복원된 기죽석은 성역 당시 규격보다 너비와 두께 모두 10cm씩 부족한 상태이다. 가장 중요한 높이는 땅 속이라서 땅 속에 얼마나 매립되었는지 필자가 확인할 길이 없다.


둘째, 설치방법이 잘못됐다. 설치방법이 의궤와 반대로 되어있다. 의궤 동장대도(圖)에 보면 기죽석이 좌우 방향으로 열려있는데 현재 복원된 상태는 전후방향으로 열려있다.


기죽석의 설치방법과 규격이 왜 중요할까?


첫째, 유지관리 문제이다. 무겁고 긴 깃대를 세우고 내리고 할 때 작업이 편리하고 안전하도록 깃대가 놓이는 곳이 평평하고 충분한 공간이 있는 쪽으로 기죽석이 열려야 한다. 서장대는 장애물이 전혀 없는 평평한 공간으로 깃대를 누일 수 있도록 의궤에 맞게 되어 있는데 웬일인지 동장대는 거꾸로 되어있다.

좌우로 개방해야 하는데 전후로 개방되도록 복원되어 유지관리에 불편하고, 사고 발생 시 작은 문이나 행랑 쪽으로 넘어지는 위험성이 있다.

둘째, 사고 시 안전문제이다. 낭떠러지, 출입문,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기죽석을 열어놓는다면 매우 위험한 계획이다. 서장대도(圖)나 서장대 야조도(夜操圖)는 서장대 기죽석은 전후방향을 폐쇄함으로 서장대 석축 쪽이나 낭떠러지 쪽으로 떨어짐을 예방한 것이다. 동장대의 경우 깃대가 쓰러지면 행랑채가 파손된다.


끝으로 구조의 안전문제이다. 외부 충격, 진동, 바람 등에도 무겁고 높은 깃대가 쓰러지지 않고 견디기 위해 설치기준과 최소규격을 준수해야 한다. 두께를 얇게 하면 기죽석이 깨져 기둥이 넘어질 위험이 있다. 또한 길이가 짧으면 땅 속에 묻히는 길이가 부족하게 되어 풍압이나 우수에 쓰러지거나 뽑히게 된다. 

팔달산정 서장대 앞에도 외간 1쌍이 있다. 여기는 의궤대로 바르게 설치되어 있다.

서장대와 동장대의 바닥을 긁어보니 콘크리트에 기죽석을 박고 굳힌 것 같아 보인다. 아니길 바라지만. 콘크리트 기초라 뽑힐 염려가 없다고 한다면 치수 부족보다 더 잘못된 복원이다. 이런 논리라면 팔달문 목구조를 썩지 않는 철근콘크리트로 복원하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설계나 엔지니어링은 최소 개념이다. 엘리베이터의 안전율이 10이라 하여 끌어올리는 철선 10가닥 중 6개를 빼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설계의 기본 인식이 없는 것이다. 안전율이 반영된 것이 최소기준이다. 이 "최소기준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진은 용주사(龍珠寺) 대웅전 바로 아래에 있는 당간지주로 쓰임새, 이용방법, 설치방법이 동장대와 서장대에 설치된 기죽석과 유사하다.

깃대인 외간(桅杆)의 기죽석(旗竹石)을 통하여 성역 당시와 현재의 안전에 대한 인식을 비교할 수 있었다. 성역 당시가 품질과 안전을 더 잘 지켰다고 판정한다. 기죽석 작은 돌 하나의 규격과 설치방향에서 정조(正祖)의 설계의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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