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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Feb 11. 2022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85

동장대 길이는 얼마일까?

동장대는 화성 시설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대부분 동장대 크기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동장대 길이는 얼마일까?


동장대는 화성 시설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3개 대(臺)로 구성되는데, 낮은 곳부터 하대(下臺), 중대(中臺), 상대(上臺)라 부른다. 의궤에도 "드디어 대를 3층으로 쌓았다(遂築臺三臺)"라 하였다. 


대(臺)란 시설물을 짓거나 혹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주변보다 높은 평평한 땅을 말한다. 지형이 평평하지 않아 정리한 것으로 보면 된다.


동장대는 화성 시설물 중에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규모가 큰 터라 동장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터의 전체 규모와 형상비(形狀比)였다. 아마 평생을 건축현장에서 살아온 직업병일 거다. 


규모, 즉 동장대 전체의 가로, 세로는 얼마나 될까?


가장 간단한 문제를 오늘의 과제로 삼은 이유가 있다. 일부 연구가를 포함해 대부분 규모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장대는 하대, 중대, 상대 3개의 대(臺)로 이뤄져 있다. 크기는 가로, 세로의 치수를 말한다.

규모란 너비와 길이를 의미한다. 흔히 너비를 가로 너비(橫闊, 횡활), 길이를 세로 길이(縱長, 종장)로 표현하고, 길이가 너비보다 긴 편이다. 우선 규모를 보여주는 기록을 의궤에서 모두 찾아보자.


"대의 너비(臺闊) 134척이다"

"중대 아래에 이르러서(至中臺下)는 동서길이(東西長)가 52척이다"

"중대(中臺石築) 동서길이(東西長)는 71척 5촌이다" 

"상대 석축(上臺石築)의 동서길이(東西長)는 81척"이다. 

이 4개 설명이 전부이다.


먼저, 가로 너비는 얼마일까?


"대의 너비 134척(臺闊一百三十四尺)"은 짧은 변인 가로 너비를 말한다. 즉 동장대 너비가 134척이라는 말이다. 검증을 위해 실측해보니 134척과 일치하고 있다. 일단 가로 너비는 확정이다. 


원문 "대활(臺闊)"은 번역본에서 "대의 너비"로 되어 있다. 당시 크기를 표현할 때, 가로 또는 짧은 변을 "활(闊)"로, 세로 혹은 긴 변을 "장(長)"으로 표현한 것 같다. 요즘 말로 "활(闊)"은 "너비", "장(長)"은 "길이"로 보면 된다.

실측을 한 길이와 의궤의 길이가 4척의 차이가 생긴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세로 길이, 즉 긴 변의 길이는 얼마일까? 


길이는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너비 134척보다 길고, 길이 즉 "장(長)"으로 표현한 수치가 없다. 그런데 134척보다 짧지만, "장(長, 길이)"으로 표현한 수치가 있다. 


동장대 설명에 나온 "동서장(東西長)" 모두를 살펴보자.

"중대 아래에 이르러서(至中臺下)는 동서길이(東西長)가 52척이다"

"중대(中臺石築)의 동서길이(東西長)는 71척 5촌이다"

"상대 석축(上臺石築)의 동서길이(東西長) 81척이다"라는 기록이다.


이 3개 동서길이(東西長)를 합해 보니 204척 5촌이다.

이제 동장대 길이도 찾았다. 즉 동서장(東西長) 204척 5촌이 세로 길이인 것이다. 3개 대 길이의 합(合)이고, 너비 134척보다 길고, 길이를 나타내는 "장(長)"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동장대 긴 방향은 남북방향으로 보이는데 "남북장(南北長)"이 아니고, 왜 "동서장(東西長)"이라 표현했을까? 참으로 의아하다. 이 문제는 별도로 따져볼 예정이다.


검증을 위해 실측해보니 208척 5촌이 나왔다. 의궤 수치보다 무려 4척이 더 긴 결과이다. 4척은 측정 오차로 볼 수 없는 큰 차이다. 의궤 수치 그대로 확정하지 않고 검증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측 길이가 왜 4척이 더 길까?

담장은 무너졌어도 담장의 기초가 되는 유구(遺構)는 그대로 남아있다.

답(答)은 "사대(射臺) 너비 4척" 때문이다. 


실측을 해보니 하대 길이 56척, 중대 길이 71척 5촌, 상대 길이 81척이다. 의궤에 하대(下臺)가 52척이므로 하대에서 4척이 차이가 발생했다. 원인은 3 가지 가능성이다. 의궤에 문제가 있거나, 복원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필자의 실측 잘못이다. 


동장대에 나오는 많은 수치 중 오직 하나만 틀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궤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수긍이 안 된다. 또한 70년대 복원 당시 유구(遺構)가 잘 남아있었던 상태여서 복원 오류도 수긍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실측 오류이다. 특히 경계선 기준을 어디로 보았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실측 시 하대와 중대의 경계선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필자는 중대로 오르는 와장대(경사로)가 끝나고 중대 석축이 시작되는 지점을 하대와 중대의 경계선으로 보고 실측을 하였다. "중대 동서 길이는 71척 5촌이다"라는 기록에서 "중대"는 원문에 "중대 석축(中臺石築)"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측 전 검증을 하였다. 이 경계선에서 중대 길이 71척 5촌을 가니 상대 석축이 나오고, 이 상대 경계에서 상대 길이 81척을 가니 문석대가 나왔다. 이런 사실은 실측 시 적용한 하대와 중대의 경계선에 문제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도대체 4척 차이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하대와 중대 사이에 "총수의 사대"라는 구조가 있다. 아래 4척 물림 부분이 하대 길이의 경계선이다.

분명히 하대 길이에 숨어있다. 그런데 하대 부분 설명에 52척 외에 다른 설명이 전혀 없다. 그 어떤 단초도 찾을 수 없다. 과연 숨어있는 4척은 어디 있을까?


의외로 중대 설명에서 찾았다. "중대는 돌로 쌓았는데 높이 7척 5촌이다. 그 높이를 반으로 하여(折其高之半) 약 4척쯤 물려(稍退四尺) 또 한 층을 쌓았다(又作一層)"라는 기록이다. 


이 설명 속에 4척이 숨어 있었다. 하대 쪽으로 "4척 물림(退四尺)" 부분이 사라진 길이이다. "총수(銃手)의 사대(射臺)"로 쓰이는 공간이다. 하대와 중대 사이에 존재하는 이 4척은 하대 길이 52척, 중대 길이 71척 5촌,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은 길이이다.


"총수의 사대 동서장 4척(銃手射臺 東西長四尺)"이라고 의궤에 기록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터인데 "초퇴4척(稍退四尺)"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참 미스터리한 기록이다.


원문 "지중대하(至中臺下)"는 번역문에 "중대 아래까지"라 되어 있으나, "중대까지" 혹은 "중대의 시작점까지"로 볼 수 없다. 정확한 경계선은 "중대에서 4척 물린 지점까지"이다. 따라서 하대와 중대에서 모두 빠져있는 사대 너비 4척을 합해야 동장대 전체 길이가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동장대 전체 규모는 가로 134척, 세로 208척 5촌이 정확한 규격이다. 실측해도 맞아떨어진다. 의궤 용어로 "대활(臺闊) 134尺, 동서장(東西長) 208尺 5寸"이다. 하대와 중대 사이에 4척이 숨어있었다. 

동장대 길이를 알아보며 조상의 규격 표현방식도 알게 되었다.

의궤 기록이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당시의 "기록 체계(記錄體系)"를 존중해야 한다.


오늘은 동장대(東將臺)의 정확한 길이가 208척 5촌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아울러 잘못 알려진 하대(下臺)의 명확한 경계(範位, 범위)도 알게 되었다.


이로서 동장대 규모는 가로 134척, 세로 208척 5촌으로 형상비(形狀比)가 2대 3이고, 내탁부를 포함하면 1대 루트 3의 완벽한 비례를 보여 주고 있다. 형상비란 가로 세로의 비율로 당시 아름다움의 척도로 쓰였다.  


동장대 길이를 살펴보며 비례(比例)와 균제(均齊)를 중시한 정조(正祖)의 미의식(美意識)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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