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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Feb 04. 2022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84

10년 공사를 어떻게 3년에 끝냈을까?-후편

정조(正祖)는 을묘원행을 구실로 동북각루, 즉 사진의 방화수류정도 조기에 착수시켰다. 그 속뜻은 무엇일까?


10년 공사를 어떻게 3년에 끝냈을까?-후편


여섯째, 파일럿 프로젝트를 운영하였다.


화성 성역의 특징은, 첫째, 산상성과 평지성의 혼합이고, 둘째, 시설물이 19개 유형에 60개로 동일한 유형으로 여러 개를 설치한 시설물이 많고, 셋째, 조선 최초로 시도되는 건축이 많은 것이다. 


이런 특징을 갖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파일럿 프로젝트" 적용이 공기 관리의 기본이다. 파일럿 프로젝트란 어렵고 복잡한 것, 처음 시도하는 것, 같은 형태로 다수를 짓는 것들에 대해 일부를 초기에 완공하며 각종 문제점을 조기에 찾아내는 기법이다.


정조도 착공 전과 착공 초 이른 시일 내에 기본계획인 성화주략(城華籌略) 8개 항목 전체와 유형 별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싶어 했다.


실제로 착공 첫해 1월 14일에 주략(籌略) "1번 푼수(分數)"를 확인한다. 계획 노선에 박은 말뚝을 보고 성의 노선을 변경하고 성 높이를 줄이도록 결정을 내린다. 바로 입표정기(立標定基)이다.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도 확인했다. 착공 전에 석산개발(石山開發)로 "재료(材料)"를 확인했고, 착공한 해 1월에 부석시역(浮石始役)으로 "벌석(伐石)", "치도(治道)", "조차(造車)"를, 성지개기(城址開基)로 "호참(濠塹)", "축기(築基)"를, 4월에 북성시축(北城始築)으로 "성제(城制)"를 확인한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주략 8개 항목 확인 후 가장 먼저 장안문과 팔달문, 북수문, 남수문을 착수하여 문, 수문, 옹성, 문루, 적대, 홍예 등에 대해 시공성, 소요기간 등의 문제점을 초기에 확인했다. 9월에는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를 완성하여 성 쌓기, 벽돌, 구조, 공사기간에 대한 검증도 하였다. 


이 시점에 공사라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전략 유효성이나 시공 효율성까지 검토하였다. 옹성과 적대의 높이와 위치 결정, 북동포루와 북서포루의 지붕 형태와 포혈 수량이 다른 점, 그리고 남옹성 홍예에 돌이 아닌 벽돌 사용한 것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정리하면, 10년 중 착공 9개월 내에 기본계획 8개 항 전체와 19개 유형 중 13개 유형에 대해 문제점을 모두 파악한 것이다. 남은 유형인 용도, 용연, 포사, 성신사 등은 공기에 영향을 미치는 공정이 아니다. 공사 초기, 단 기간에 10년 공사 전체를 꿰뚫어 보며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 공기 단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사실도 있다.


하나는, 정조는 북성, 장안문, 팔달문, 방화수류정, 서장대를 1년 후 원행(園幸) 갈 때 시찰하겠다고 발표한다. 왜 하필 이 시설물이었을까? 평지라 착수가 쉽고, 대부분 유형의 시설물을 포함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원행(園幸)은 표면적 이유이고, 파일럿 프로젝트 실시가 정조(正祖)의 속마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조는 착공 10개월 전 총리대신에게 "성역이 곧 시작될 터인데 경은 좋은 생각이 있는가?"라 질문한다. 이에 채제공(蔡濟恭)은 "역사(役事)는 마땅히 먼저 어렵고 쉬움을 깊이 판단해, 그중 어려운 것을 먼저 하면, 모든 실마리가 잡힐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채제공이 말한 "어려운 것을 먼저"와 "모든 실마리가 잡힌다"는 의미가 바로 파일럿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이다. 그 왕(王)에 그 신하(臣)다. 

정조는 을묘원행을 구실로 원행 코스에 북성,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방화수류정, 서장대를 포함시킨다. 파일럿 프로젝트로 운용하기 위함이다.

일곱째, 인사(人事)에 실무 경험, 현지 경험을 중시하였다.


핵심 인력은 공사비와 공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요즘도 설계 책임자와 현장 책임자를 잘못 만나면 프로젝트가 엉망이 된다.    


정조도 "만약 감동(監董)에 훌륭한 사람을 얻는다면 어찌 반드시 10년까지 끌 것인가? 모든 일은 먼저 규모를 정함(先定規模)만 못하고, 규모는 미리 경기함(豫爲經紀)만 못하며, 경기는 또 그에 적격자를 얻음(得其人)만 못하다"하였다. 


풀이하면 건설에서 규모, 법, 제도보다 사람이 우선이고,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화성성역에선 총리대신(摠理大臣), 감동당상(監董堂上), 도청(都廳)이 핵심조직이다.


총리대신에 채제공(蔡濟恭), 감동당상에 조심태(趙心泰), 도청에 이유경(李儒敬)을 임명했다. 모두 군무(軍務), 자금(資金) 운용, 축성(築城), 수성(修城), 이주(移住) 업무 경험자였고, 성역에 익숙한 점, 화성이나 인근에서 근무, 거주를 한 자로 현지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공기 단축에 영향을 미쳤을까? 

신속하고 바른 의사결정이다. 건설에서 신속은 돈과 시간이고, 바른 의사는 돈, 시간과 품질이다. 정조는 이들의 건설 경영 능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으로 모두 7가지 공기단축의 요인을 꼽았다. 

현지에 익숙하고, 유사 사케를 경험하고, 군무 경험도 있는 사람으로 핵심조직을 인사하였다. 사진은 정조와 채제공이다. 드라마 "이산" 중에.

이제는 실질적 공기단축 요령과 그간 알려져 왔던 단축 요인에 대한 여러 설(說)을 살펴보자.

 

먼저, 어떻게 해야 공기를 대폭 단축시킬 수 있을까?


첫째, 사업 초기에 집중해야 한다. 

착공 전이나 착공 초기에 전체 공기단축의 80% 이상이 결정된다. 이것은 공식이다. 시공 중 아무리 기를 써도 공기단축에 큰 효과를 낼 수 없다.


정조는 착공 전 자금 조달, 석산 찾기, 핵심조직 구성, 성 높이 삭감, 호참공사 삭제를 결정하였다. 착공 전에 이미 단축 기간 7년의 90%는 달성하였다. "참견할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둘째, 규모가 큰 시설물에 집중해야 한다. 

상위 규모 몇 개가 전체 공기를 좌지우지한다. 대부분 주공정(主工程, Critical Path)이기 때문이다. 성(城), 장안문, 팔달문, 북수문, 남수문이 화성 총공사비의 81%이다. 


정조가 가장 먼저 한 날 한 시에 착공시킨 것이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남수문이었고, 곧이어 북성(北城)을 착수시켰다. 우연히 선택된 것일까? 아니다. 그는 60개 중 규모 80%에 해당되는 이 5개를 파일럿 프로젝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참견할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성(城),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남수문의 공사비 합(合)이 총공사비의 81%이다. 공기단축도 큰 것에 집중해야 효과가 있다.

이제, 지금까지 알려진 공기단축 요인에 대한 설(說)에 대해 살펴보자. 


설(說) 하나 : "패스트 트랙으로 운영해 단축했다"는 설이다. 

엄청난 오류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모든 공사가 패스트 트랙, 즉 설계시공 병행추진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설(說) 둘 : "공사 실명제를 채택하여 단축되었다"는 설이다. 

이것도 엄청난 오류이다. 왜냐하면 실명제(實名制)란 장인(匠人)이 이름을 걸고 시공품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빨리하기 시합하려고 건 이름이 아니다.


설(說) 셋 : "거중기의 발명으로 단축되었다"는 설이다. 

마찬가지로 오류라 판단된다. 거중기(擧重機) 1부는 선단석과 무사석을, 녹로(轆轤) 2좌는 홍예석을 인양(引楊)하는데 쓰였다. 공기 단축에도 도움은 되었겠으나, 전체 공기를 단축하는데 절대적은 아니었다. 이런 장비는 공기 절감보다 인력 절감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거중기의 발명으로 공기가 7년 단축되었다는 과장된 이야기도 있다. 공기보다 인력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독자께서 "착공 전에 수행한 석산개발, 핵심조직 구성, 성 높이 삭감, 호참공사 삭제 등이 무슨 공사냐?", "공사란 착공 후에 시행되는 시공(施工)을 말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셨다.


독자의 말씀은 "당초 공사량"과 "단축 행위 시점"의 기준에 필자와 차이가 있다. 이 글은 "당초 10년"과 "실제 3년"의 차이에 대한 요인 분석이다. 이런 오해를 피하고자 맨 앞에 "10년"과 "3년"에 대한 정의를 내렸던 것이다. 


첫째, "당초 10년에 해당하는 공사량"은 화성 기본계획인 "성화주략(城華籌略)"이 기준이다. 

여기에는 성 길이 3,600보, 성 높이 2장 5척, 호참공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주략의 모든 사항이 단축의 대상인 것이다. 


둘째, "공기단축 요인의 대상" 기준은 "10년"이 정해진 이후 수행된 모든 단축 행위이다.

즉 공사 착공 전이라도 "10년"이 정해진 이후에 수행된 행위라면 단축 요인이 된다는 말이다. 꼭 공사 착공 후 공사 중에 행한 것이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 화성 성역의 공기단축 요인을 살펴보며, 몇 년을 단축했느냐 보다 정조(正祖)가 "꼭 참견할 때"에, "꼭 참견해야 할 것"을, 신속하고 전략적으로 결정하였음을 엿보았다.     


"필요하지 않은 때"에, "허접한 것"에 목숨 거는 못난 지도자는 정조(正祖)의 공기단축 전략에서 분별력(分別力)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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