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웅 May 09. 2022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89

[화성 문답]화홍문 북쪽에 왜 사용할 수 없는 문이 있을까?

화홍문에 왜 위험하고 쓸 수 없는 문이 있을까?


각건대, 북암문, 화홍문, 방화수류정은 용연과 함께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이 중 화홍문(華虹門)은 2곳의 화성 수문 중 북수문(北水門)으로 물을 받아들이는 수문이다. 7개 홍예 수문과 누각이 있는 수문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화홍문은 장안문, 팔달문, 남수문과 함께 화성에서 가장 먼저 착공한 시설물이다. 이유는 공사 중에도 백성이 성 안팎으로 왕래하고, 수원천 좌우로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한 정조(正祖)의 백성 사랑 때문이다. 물이 성안으로 흘러들어가는 수문(水門) 역할과 백성이 이용하는 교량(橋梁) 역할을 동시에 추구한 것이 화성 수문의 특징이다. 


화홍문에 가시면 문루에 꼭 올라가 보시도록 권한다. 남쪽 창가에 앉으면 수원천 양쪽의 버드나무를 보며 정조가 강조한 유천(柳川)이 떠오르게 된다. 북쪽 창가에 앉으면 용두(龍頭)에 세워진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과 용연(龍淵)이 보인다.


특히 북쪽은 창문 밖 마루에 앉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 마루폭은 6척(1.8m)으로 아파트 발코니 폭(1.2m) 보다 넓다. 


그런데 문제는 마루 양쪽 끝에 있는 문이다. 이 문을 열어보니 바닥까지 그대로 낭떠러지이다. 문을 열고 나가려 발을 내딛으면 절대 안 된다.


왜 위험하고 쓸 수 없는 문(板門)이 있을까?   

화홍문 누각 북쪽 창밖 양쪽 끝에 문을 열면 그대로 바닥이 보이는 이상한 문이 있다.

답(答)은 "복원(復元)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사연을 살펴보자.


화홍문 북쪽, 즉 성 밖을 향한 쪽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사실은 무시무시한 시설이다. 수문 전체에 걸쳐 설치해 놓은 두꺼운 벽돌 첩(堞)이다. 벽돌 첩(堞)은 무엇이고 왜 있을까?


벽돌 첩(堞)은 수문의 취약한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만든 포루(砲樓) 벽체이다. 의궤에 "방사(放射)하는 제도는 포루(砲樓)이다"라고 누각의 아래층과 좌우가 포를 쏘는 공간임을 말해주고 있다. 누각의 하층 부분도 포(砲) 진지인 셈이다.


이 첩에는 "아래에는 대포(大砲) 구멍 8개를 뚫었다. 위에는 소포(小砲) 구멍 14개를 뚫었다"라 하여 총 22개의 포 구멍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수량은 포루(砲樓)의 절반이 넘는 개수이다. 막강한 방어능력을 보여준다.


남수문도 마찬가지다. 포혈(砲穴)을 57개나 설치하고 수백 명의 군사를 수용할 수 있는 장포(長舖)도 준비했다. 이는 수문에 대한 방어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수문은 대문, 암문 다음으로 취약한 시설물이다.


이 벽돌 첩이 작은 문(板門)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수문에는 대포를 쏠 수 있는 수많은 구멍을 설치했다. 왼쪽은 남수문, 오른쪽은 화홍문.이다. 

정조(正祖)는 단일 목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분이다. 벽돌 첩을 포를 쏘는 포벽으로만 사용한 게 아니라 위 부분을 화홍문과 좌우 성을 연결하는 병사의 통로로 만든 것이다. 아래는 포 진지, 위는 병사의 통로였다.


의궤에도 "북쪽 판문 아래에는 벽돌로 된 첩과 이어지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얼핏 보기에 단순한 벽이지만 병사가 걸어 다니는 통로 역할도 하였는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 기능을 못 할까?

한마디로 복원을 잘못하였기 때문이다. 


원형(原形)은 "벽돌 첩의 높이는 5척 4촌, 두께는 4척 8촌"이라고 의궤에 규격을 말한다.

복원(復元)은 필자가 실측해 보니 "높이는 4척, 두께는 2척 4촌"이 나왔다. 


의궤보다 높이는 1척 4촌이 낮고, 두께는 2척 4촌이 얇게 복원된 것이다. 미터법으로는 높이는 43cm가 낮게 되었고, 두께는 75cm가 얇게 되었다. 너무나 많이 부족한 치수이다. 치수가 문제가 아니다.

복원된 벽돌 첩이 높이와 두께가 원형보다 낮고 얇게  된 모습이다.

안타까운 것은 방문하시는 분들이 문(板門)을 열어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이다. 왜 위험한 문이 있을까? 왜 불필요한 문을 설치해 놓았을까? 성으로 다니는 통로가 왜 수문에서 끊겼을까? 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화홍문 누각 아래층도 마찬가지다. 원형에 없던 문을 설치하고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을 들여다보고 포를 쏘는 곳이라 누가 생각할까?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복원 오류를 규격이 잘못된 것으로 단순하게 보면 안 된다. 잘못된 복원은 한 공간의 목적을 잘못 인식시키고, 원래 기능을 오도(誤導)하는 문제를 후세에 남기기 때문이다. 복원할 때는 외형뿐만 아니라 공간의 개념, 목적을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각 아래층도 원래는 포(砲)를 쏘는 공간이었다. 

쓸모없고 위험한 문짝을 살펴보며 두꺼운 벽돌 첩(堞)을 설치하여 방어력을 키우고 병사의 통로로 사용하게 한 정조(正祖)의 의도를 엿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88 성 높이는 어디서 어디까지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