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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Jun 06. 2022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93

[화성 문답] 서노대(西弩臺)의 속은 무엇으로 채웠을까? 

서노대(西弩臺) 속은 무엇으로 채웠을까?


화성에는 19개 유형에 60개 시설물이 있다. 시설물 중 모양이 독특한 시설물은 노대(弩臺)이다.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 서장대(西將臺) 서쪽에 서노대(西弩臺)가 있다. 동북노대(東北弩臺)는 동장대 동쪽에 위치한다.  


서장대에 서노대가 있다면 동장대(東將臺)에 동북노대가 있는 형국이다. 장대와 노대는 분명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도설(圖說)에도 짝을 이뤄 함께 설명하고 있다. 화성 노대는 기능과 건축이 원래의 기능과 제도에서 완전히 바뀐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먼저, 기능에 대해 안내문에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 쓰였다"라고 했다. 즉 원래 쇠뇌(弩)를 쏘는 시설인데 정탐(偵探), 경보(警報), 신호(信號)로 주 기능이 바뀌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건축 제도를 보면 노대는 원래 대 위에 집을 짓고(臺上架屋) 은폐 역할(制如戰棚)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화성 노대에는 집도 안 짓고 은폐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즉 건축 제도도 함께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 기능과 건축 제도가 이처럼 달라졌을까?

동북노대도 평면이 벌의 허리 모양으로 디자인 상 매우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노대는 쇠뇌(弩, 노)를 쏘는 곳이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쇠뇌가 불편한 무기가 되었다. 쇠뇌가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되자 정탐과 경보전달로 주 역할이 바뀌고 쇠뇌에 필요한 집과 은폐시설은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서노대는 8 각형 평면이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진 형태의 모양이고, 동북노대는 치성(雉城) 중 가장 높으면서 평면이 벌의 허리(蜂腰, 봉요) 모양을 하고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두 노대 모두 상당히 특이한 모양(매스, Masss)이다. 


공사는 외벽을 일정 높이만큼 쌓은 후 속을 채우고 다진 후 다시 한 층을 올리던가, 아니면 일정 높이로 속채움을 한 후 외벽을 설치하며 반복적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작지만 매우 까다로운 공사이다. 기하학(幾何學)을 잘 알고 3차원 공간감이 어느 정도 있는 꼼꼼한 장인(匠人)이 아니면 안 되는 공사이다.


서노대를 보고 궁금해진 것은 무엇으로 속이 채워져 있을까이다. 안내문에는 "안에는 흙을 채우고 겉은 벽돌을 붙였으며 여덟 방향의 모서리는 돌을 깎아 마감했다"라고 되어 있다.


과연 서노대 속은 흙으로 채웠을까?

팔달산정에 위치한 서노대는 그 모양이 화성 시설물 중 가장 독특하다.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답(答)은 "아니오"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채웠을까?

흙이 아니라 잡석(雜石)을 채운 것이다.


그 근거를 찾아보자.

첫째, 구조(構造) 안정성 때문이다.

서노대는 매우 취약한 구조이다. 성처럼 안쪽으로 긴 성돌(城石)로 쌓는 것이 아니라, 벽돌로 쌓은 구조이다. 벽돌과 연석(緣石)은 치장한 껍데기(外皮, 외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속 채움 재료는 지지력을 스스로 부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벽돌 조적조는장기적으로 줄눈이나 틈새를 통해 우수가 침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이 내부로 침투해 흙과 함께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 벽돌 구조는 쉽게 붕괴된다. 내부의 흙이 팽창(膨脹)되기 때문이다.


토압(土壓)이나 팽창 측면에서 보면 흙은 채움재료로 불리한 재료이다. 반면에 잡석(雜石)은 구조에 유리하면서 실제 얻기 쉬운 재료이다. 성을 토성(土城)으로 할 것인가? 석성(石城)으로 할 것인가? 의 논쟁에서 석성으로 결정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성화주략(城華籌略) 2번 "재료(材料)"에 "토성은 비록 겉면을 회삼물(灰三物)로 쌓는다 해도 흙과 서로 붙지 않으며, 얼음이 깊이 어는 때에는 흙 밑바닥이 가라앉게 되고, 빗물에 부서져서 표면이 떨어져 나간 곳이 많게 되고 흙은 점점 안에서 부풀러 올라 회가 밖으로 엎어져서 쓸모없게 된다"라 하였다. 

벽돌로 쌓은 벽체를 장기간 유지하려면 속 채움 재료가 중요하다. 

둘째, 화성 모든 시설물에 채움 재료로 잡석을 사용하였다.

화성 시설물은 전쟁 시설물이다. 서노대도 마찬가지다. 흙으로 채운 구조일 경우 포탄을 맞으면 한 번에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 하지만 잡석인 경우에는 부분 파괴는 있어도 전체 붕괴는 피할 수 있다. 재료의 특성 때문이다.


실입(實入)에서 전체 시설물을 확인해 보니 화성 모든 시설물에서 잡석이 사용되었다. 위치나 시설물 종류에 관계없이 견고한 전쟁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의미이다. 


셋째, 의궤 기록도 뒷받침이 된다.

권 6 실입(實入) 서노대에 투입된  재료를 보면, 장대석(長臺石), 우석(隅石), 보석(步石), 고막석(庫莫石), 잡석(雜石), 방전(方甎)만 나온다. 서노대는 모양이 너무 단순하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벽, 계단, 여장, 속 채움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모를 수 없다.


벽에는 방전, 장대석, 우석이, 계단에는 보석이, 여장에는 방전이 사용되었다. 남은 재료는 잡석이고, 남은 구조는 속채움이다. 따라서 속채움에 잡석이 사용된 것이다. 서노대에 사용된 잡석량은 1,620 짐(負, 부)으로 금액(價, 가)으로는 45냥(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리하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조 안전성, 견고한 전쟁 시설물 구축, 의궤 기록 뒷받침 등으로 보아 서노대 속은 흙(土)이 아닌 잡석(雜石)으로 채워졌음이 밝혀졌다. 

화성 시설물 전체에 잡석이 사용되지 않은 시설물이 없다. 견고한 전쟁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오늘 독특한 모양의 서노대와 그 속에 무엇을 채웠는지 살펴보았다. 하찮은 잡석(雜石)이 정조(正祖)의 "철옹성 만들기 비밀병기"였음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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