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강웅 Apr 25. 2022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87

[화성 문답] 문루(門樓) 기초(基礎)는 어디에 있을까?

문루(門樓) 기초(基礎)는 어디에 있을까?


화성에는 문이 장안문(長安門), 팔달문(八達門), 창룡문(蒼龍門), 화서문(華西門) 4곳이 있다. 방위로 보면 북문, 남문, 동문, 서문이다. 4곳의 문은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제도나 구조는 모두 같다. 문의 제도는 크게 육축(陸築), 문루(門樓), 옹성(瓮城)으로 나눌 수 있다.


육축은 등변 사다리꼴 형태로 매끈하고 큰 돌로 쌓은 부분을 말한다. 한가운데를 뚫어 성 안팎을 드나드는 통로로 사용한다. 좌우 경사진 부분에는 돌계단이 놓여있다. 속은 잡석으로 채워 놓았다.


문루란 육축 위에 지은 집을 말한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2층 중층(重層) 문루이고, 창룡문과 화서문은 1층 단층(單層) 문루이다. 중층 문루는 보기만 해도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특히 팔달문 문루는 육축 위에서 220여 년을 버텨온 것이다. 


이런 대규모 크기와 무게의 건축물이 원지반에서 20여 척 높이로 만든 인공지반인 육축 위에서 굳건히 유지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문루의 버팀목이 되어준 건물 기초(基礎)가 궁금해진다. 


문루 기초는 육축 위에 있을까? 아니면 육축 아래 원지반에 있을까?

2층 문루 아래에 등변 사다리꼴로 땅 위에 지어진 것이 인공지반인 육축(陸築)이다. 가운데는 성을 드나드는 통로이다.  

답(答)은 "육축 아래 원지반에 있다"이다. 


독자 여러분은 곧바로 답이 틀렸다고 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문에 올라가 보아도 문루 기초석이 육축 위 기둥 밑에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대원주석(大圓柱石) 18개씩, 창룡문과 화서문은 중(中)원주석 10개씩 설치되어 있다. 


육축 구조를 좀 더 살펴보자.

먼저, 팔달문의 경우이다. 물이 나는 터(址)라서 14척 깊이로 땅을 파서 진흙, 모래, 회 다짐으로 지반을 강화하였다. 그 위에 안팎으로 성을 쌓고 그 사이에 잡석(雜石)을 채우고 다져 만든 것이 육축이다. 즉 육축은 사람이 만든 인공지반이다.


잡석의 다짐은 얇은 두께로 한 층 한 층 층다짐으로 하였다. 다짐 도구는 목저(木杵)나 석저(石杵)를 사용하였다. 모두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지만 충실하게 다짐을 하였을 것이다.  


이 위에 지어진 문루는 무게(自重)가 큰 목조 구조물이다.  


이런 무거운 목조 문루와 인공지반 육축의 특성으로 보면, 문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침하, 이완, 파괴가 발생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쟁에 의한 파괴만 있었고 자연적 파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의 시공 품질이 매우 뛰어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과연 시공을 잘해서 문제가 없었던 것일까?


이 또한 "아니오"이다.

여기에는 정조(正祖)의 비법이 숨겨져 있다.

어떤 비법(秘法)일까?

문루 1층에 들어서면 기둥 아래에 기초인 주초석(柱礎石)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의궤 권 6 실입(實入)에 그 비법이 보인다. 다름 아닌 "은주석(隱柱石)"의 존재이다. 실입이란 실제 사용된 자재나 인력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은주석이 장안문에 271 덩이(塊, 괴), 팔달문에 272 덩이, 창룡문에 109 덩이, 화서문에 108 덩이가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은주석에 대해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에 "마루 밑 또는 방 밑 등 보이지 않는 곳에 사용하는 석재"라고 설명하고 있다. 크기는 면 크기 3척(93cm), 높이 1척 2촌(37cm)으로 되어 있다.


은주석이 문루 기초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필자는 육축 아래 원지반부터 육축 위 기둥 기초 밑까지 은주석이 놓여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육축 속에 묻혀있어 실물을 볼 수 없으니 확정하기에 난감하다. 2013년 팔달문 해체 보수 후 발간된 준공 자료집(화성사업소 발간)을 보아도 기둥 기초석(柱礎石)과 주변 잡석만 보인다. 


이제부터 보이지 않는 밑 부분을 찾아 하나씩 범위를 좁혀 보자. 

팔달문 해체 보수 공사 당시의 문루 기둥 기초의 모습이다. 기초 밑은 확인할 길이 없다. 

1단계로, "사용한 시설물"로 좁혀 보자. 

화성 시설물 전체를 확인한 결과 은주석을 사용한 곳은 문 4곳이 전부였다. 따라서 은주석은 "문루에 필요한 것"이라고 좁혀졌다.


2단계로, "사용한 부재"로 좁혀 보자.

팔달문이 272 덩이, 창룡문이 109 덩이를 사용했다. 용어 사전에 사용처가 "마루 밑"이라 하였는데 문루에서 마루 밑에는 기둥이 전혀 없으므로 사용 범위에서 제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루 기둥 밑으로 추정할 수 있다.  


좀 더 접근해보자. 만일 은주석이 기둥 밑에 사용되는 것이라면 기둥 개수와 육축 높이가 은주석 사용량과 상관관계가 있다. 팔달문과 창룡문을 비교해 보자.  


팔달문에 비해 창룡문은 기둥 개수가 55%이고, 육축 높이는 80%로 종합하면 44%에 해당한다. 은주석 사용량은 40%이다. 따라서 은주석은 "문루 기둥에 필요한 것"이라고 더 좁혀졌다.


3단계로, "사용된 위치"를 확인해 보자.

은주석 1개 높이는 1척 2촌이다. 팔달문에 272 덩이가 사용되었으므로 사용한 은주석 총길이는 326척 4촌이 된다. 문루 기둥이 18개이므로 기둥 1개당 은주석 사용 길이는 18척이 된다. 육축 높이가 22척으로 약 4척의 차이가 발생한다.


길이 계산으로 창룡문의 경우도 4척의 차이가 생겼다. 이 차이는 육축 위 원주석의 높이(두께)이다. 따라서 은주석은 "육축 아래 원지반부터 육축 위 기둥 밑까지 놓인 것"이라고 확인되었다. 

팔달문의 단면도이다. 필자는 원지반에서 육축 위 기둥 기초 밑까지 은주석이 묻혀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용된 시설물, 사용한 부재, 사용된 위치를 순차적으로 찾아보았다.


정리하면 "보이는 기초는 육축 위 기둥 기초석이나, 사실상 기초는 육축 아래 원지반에 있다"가 답이 된다. 실제 기초와 보이는 기초 사이에 "보이지 않게 묻혀있는 은주석"이 문루 하중 전체를 땅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 기초가 원지반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육축 속에 보이지 않게 심어놓은 은주석(隱柱石)에서 정조(正祖)의 품질경영을 엿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86.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