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살문(鐵箭門) 후편 : 모든 수문(水門)이 개폐됐을까?
화성에 성 밑을 관통하는 시설이 4곳이 있다. 수문(水門) 2곳과 은구(隱溝) 2곳이다. 모두 물이 성을 관통해 지나는 곳이다. 따라서 이런 시설은 지면(地面, GL)보다 낮게 설치되어 있다.
성(城)은 기본적으로 폐쇄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수문과 은구는 성 안팎이 개방되는 시설이다. 그만큼 방어에 취약하다는 의미이다. 적의 침투를 막을 특별한 대책이 분명 필요하다.
은구(隱溝)에 대한 특별한 대책은 이미 필자가 밝힌 바 있다. 기둥인 은구은주석(隱溝隱柱石)을 특별한 형태와 배치로 설계해 물 샐 틈만 주고 적군은 들어올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수문(水門)에서는 쇠살문을 수문마다 설치해 평시에는 열어두고, 전시에는 닫아 적의 침투를 막았다. 이는 철전문의 상하 개폐장치를 하였기에 가능하였다. 바로 앞편에서 밝힌 바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모든 수문이 개폐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성역 이후 처음 밝히는 사실을 살펴보자.
홍예 모양 수문은 화홍문(북수문)에 7개, 남수문은 9개이다. 구조는 양쪽에 홍예를 틀고 그 사이는 돌기둥을 세웠다. 현재 복원된 모습은 원형과 근본적으로 구조가 다르다.
철전문에 투입된 자재를 의궤 권 6 실입(實入)에서 살펴보자. 전체 자재 중 개폐와 관련된 철물만 선별하였다.
쇠살문(철전문, 鐵箭門) : 화홍문 14짝(척, 隻), 남수문 18짝
쇠사슬(대사슬, 大沙瑟) : 화홍문 14조(條), 남수문 18조
둥근 고리(대원 환, 大圓環) : 화홍문 28개(箇), 남수문 36개
대배목(대배목, 大排目) : 화홍문 14개(箇), 남수문 10개
자물쇠(용쇄약, 龍鎖鑰) : 화홍문 7부(部), 남수문 5부
이 중 화홍문에 투입된 자재를 보자.
수문 1곳당 쇠살문이 2짝, 쇠사슬 2조, 둥근 고리 4개, 대배목 2개, 자물쇠 1부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사용된 수량을 살펴보면 일정한 기준이 보인다. 이것을 요즘에는 "일위대가(一位代價)"라 한다. 단위당 소요되는 자원을 보여주는 표(表)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남수문에 투입된 자재량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다. 쇠살문, 쇠사슬, 둥근 고리는 화홍문과 똑같은 비례로 투입되었으나 대배목(大排目)과 자물쇠(龍鎖鑰)는 적게 투입된 것이다.
대배목은 쇠살문 1짝에 1개씩 붙여놓는 철물로 화홍문에는 14개, 남수문에는 18개가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화홍문에 14개, 남수문에 10개가 투입되었다. 남수문에 8개가 덜 사용된 것을 찾아냈다.
자물쇠는 수문 1곳에 1부가 쓰이므로 화홍문에는 7부(部), 남수문에는 9부가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화홍문에 7부, 남수문에 5부가 투입되어, 남수문에 4부가 덜 사용된 사실을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리하면, 남수문에 대배목이 8개, 자물쇠가 4부 덜 사용된 것이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문제는 먼저 이유를 찾는 것보다 결과를 놓고 이유를 추정하는 게 나을 듯하다.
대배목이란 한쪽은 못과 같은 형태로 문짝에 고정하고, 다른 한쪽은 동그란 형태로 문고리를 걸거나 원형 고리를 연결하는 철물이다. 쇠살문 1짝에 1개씩 사용된다. 그리고 자물쇠는 잡아당긴 쇠사슬을 묶어두기 위한 철물이다. 수문 1곳에 1부(部)가 사용된다.
수문 1곳에 대배목 2개, 자물쇠 1부가 쓰이는 것이다. 덜 사용된 대배목이 8개, 자물쇠가 4부이다. 따라서 이 수량은 수문 4곳에 해당하는 수량이다.
"자물쇠 4부가 쓰이지 않았다"란 말은 남수문 9개 수문 중 4곳에서 개폐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똑같다. 자물쇠가 없으면 열고 닫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수문이 개폐되는 것으로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놀라울 뿐이다.
그러면 남수문 9곳 수문 중 개폐를 생략한 4곳은 어디일까?
의궤 화홍문 그림(圖)에는 자물쇠가 분명히 보인다. 하지만 남수문은 그림에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의궤 어디에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필자는 개폐하지 않은 4곳은 동쪽 끝 2개, 서쪽 끝 2개라고 추정해 본다. 근거가 없으니 추정 이유만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이유는, 남수문 수문은 9개이다. 홀수 개소(個所)라서 가운데나 양쪽 중 한쪽에 몰아서 선택하는 것은 균형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대칭이 되고 균형이 잡히는 양쪽 끝 2개씩을 선택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수원천은 장마철에만 물이 붇고, 나머지 기간은 물이 많지 않았다. 남수문 양쪽 끝 하천 바닥은 늘 바닥이 보이는 상태였다. 남수문 밖 옛 사진(아래)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물이 없이 하상(河床)이 드러나는 양쪽 끝 2개씩을 선택한 이유이다.
왜 상하 개폐를 제외했을까?
남수문 양쪽 끝 하천은 수문을 열어두거나 닫아두거나 늘 하천 바닥만 보였을 것이다. 이런 상태를 감안하여 의도성을 갖고 생략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4곳의 생략은 밸류 엔지니어링(VE, 가치공학)의 결과물이다. 즉 생략해도 동등(同等) 이상의 가치(價値)나 역할이 유지된다면 제거해도 무관하다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가치공학 관점에서 보면, "4곳에 개폐 기능을 없앴다"라는 표현보다 "늘 닫아두어도 목적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가 더 합리적 표현이다.
이 4곳은 늘 닫은 상태로 두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해도 물이 없는 곳이라 유지보수에 문제가 없고, 평시나 전시나 차이점이 없다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면 왜 화홍문에서는 생략하지 않았을까?
화홍문이 남수문과 다른 수문 폭이 큰 점, 수문 수가 적은 점, 물 흐름 방향이 적군의 침투 방향과 같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오늘은 남수문의 쇠살문(철전문, 鐵箭門) 개폐장치 생략을 살펴보며 정조(正祖)의 가치경영(價値經營)을 엿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