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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Nov 10.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23

용도(甬道)는 왜 성(城)이 아닐까?

화성에도 호찌민 루트가 있다. 규모가 작지만 바로 용도(甬道)이다. 노송이 도열한 아늑한 용도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용도(甬道)는 왜 성(城)이 아닐까?


팔달산 능선 남쪽 서남암문(西南暗門)을 지나면 양쪽에 여장이 있는 길이 있는 데, 이 길을 용도(甬道)라 한다. 평평하고 양쪽에는 낮은 담과 노송이 도열한 아주 편안한 길이다. 요즘 말로 "멍 때리기 좋은 곳"이라 한다. 정말로 힐링 플레이스다.


생소한 용어 "용도(甬道)"에 대해 의궤에 "군량을 운반하고 매복을 서기 위해 낸 길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이로 보아 화성의 용도는 용도의 끝에 있는 서남각루(西南角樓)에 군량과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길이었다. 더 큰 목적은 팔달산 남쪽 능선을 오르는 적군을 막기 위해 매복을 서는 공간이다.   

화성의 용도(甬道)는 사실상 팔달산의 남쪽 능선을 빼앗기지 않으려 많은 병사를 매복시킬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필자는 용도를 화성 시설물 중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보고 있다. 이유는 첫째, 용도는 평지남성과 산상서성 방어력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용도 없이 평지남성과 산상서성은 존재할 수 없다"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둘째, 용도를 설치하지 않았더라면 대신 설치해야 할 성을 계산해 보면 어림잡아도 화성 전체의 20%는 될 것이다. 사업비를 천문학적으로 줄여준 효자가 용도인 셈이다. 


이런 용도가 성(城)이냐? 아니냐? 논란 속에 있다.


우선 화성에서 성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자. 성의 구조나 시공방식에 대해 의궤에 "성의 높이는 2장(丈)이 기준인데 산 위에서는 그 5분의 1을 감(減)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성과 용도를 비교해 보자.

용도(甬道)가 없었다면 용도가 담당하는 역할을 맡길 다른 성(城)이 필요하게 된다. 그를 위한 공사비는 천문학적으로 소요됐을 것이다.

첫째, 용도는 성(城) 자체가 없다.

용도의 위치는 산상(山上)이므로 성의 높이가 16척이어야 한다. 하지만 용도에는 여장 밑에 2척 미만의 2줄 석축만 있다. 이 석축은 높이를 떠나, 성이 아니고 여장의 기초가 되는 기반석일 뿐이다.


둘째, 용도는 여장으로만 구성돼 있다.

용도에 대해 의궤에 "산 위의 3면(山上三面)에 돌로 성가퀴를 쌓았으니(石築女墻)"라고 기록하고 있다. 3면 모두가 성가퀴, 즉 여장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여장과 체성(體城)을 구분하는 미석(眉石)이 없다는 것도 성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셋째, 여러 기록에서 용도를 성과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의궤에 보면 성(城)의 규모를 기록할 때, 용도 길이를 성과 별도로 취급하여 합계를 기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장(女墻)의 규모를 기록할 때에도 용도의 성가퀴를 원성의 성가퀴와 분리하여 취급하고 있다.  

용도 밖에서 보면 용도는 여장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장 아래의 돌은 성이 아니라 여장의 기초 정도로 보면 된다.

또 다른 예로 의궤에 서남암문을 경계로 남쪽은 "용도(甬道)"로, 동쪽은 "남성(南城)"으로 구분하여 호칭하고 있다. 또한 서남각루의 위치를 "성 안(城內)"으로 표현하지 않고, "용도 안(甬道之內)"이라고 성과 분명히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다. 같은 성이라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넷째, 용도(甬道)라는 명칭 자체가 길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한자 "용(甬)"은 "솟을 용(甬)"이며, "도(道)"는 "길 도(道)"로, "용도"는 "솟아있는 길"의 의미가 된다. 즉 길이지만 주변보다 높게 솟아진 상태로 만든 길을 의미한다. 지금의 화성 용도의 모습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결론은 "용도는 성(城)이 아니고, 길(道)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더 이상의 논란은 무의미하다.


그런데 문제는 방문자 대부분이 용도를 성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다름 아닌 답사 방식 때문이다. 화성 방문자 대부분은 시설물을 자세히 보려고 성 안쪽 길, 즉 성상로(城上路)를 걸으며 화성을 한 바퀴 돈다. 성의 안쪽으로 걷는다는 것은 엄격히 말해 성은 보지 못하고 담(墻)만 보고 걷는 것이다. 담이란 바로 여장(女墻)을 말한다.  

서남각루는 "성 안에 있다"거나 "성 밖에 있다"가 아니라, "용도의 안에 있다"라고 성(城)과 분명히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런 답사의 연속선상에서 용도를 들어오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성 위를 걷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용도 바깥이 지금까지 걸어온 곳과 마찬가지로 "높은 성(城)이겠지"하는 생각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용도가 성이냐 아니냐? 논란의 시발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용도 안에서 잠시 멈춰 여장 밖을 내다보면 "어! 성이 없네!"라 할 것이다. 성 밖 길이 저 멀리 아래가 아니라 바로 눈앞 높이 이기 때문이다. 성이 아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용도에 가시면 용도 밖도 한번 걸어보시길 권한다. 안팎을 모두 걸으면 용도의 진면목을 느낄 것이다.


최소의 공사비로, 최고의 가치를 실현한, 화성의 걸작품 용도(甬道)를 거닐며 정조(正祖)의 전략적 마인드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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