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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Dec 01. 2020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27

왜 동북포루에만 벽등을 두었을까?

화성에서 동북포루처럼 많은 의문을 던지는 시설물도 없다. 그 두 번째 미스터리를 탐험하자. 노송이 늘 동북포루를 지키고 있다.


왜 동북포루에만 벽등(甓磴)을 설치했을까?

화성에는 보병 진지인 포루(舖樓)가 5곳이 있다. 그런데 동북포루는 다른 포루에는 없는 특이한 점이 있다. 하나는, 위계가 낮은 건물인데도 "각건대(角巾臺)"란 별칭을 부여받았고, 둘째는, 벽등(甓磴)을 설치한 점, 셋째, 치(雉)에 벽돌을 사용한 점, 그리고 지붕에 용두(龍頭)를 설치한 점 등이다.


이 중 전편에서 왜 벽등을 쌓았을까? 에 대해 답을 찾아 보았다. 요약하면 좁은 공간에 2배의 병력을 운용하기 위함이고, 비상시에 집(포, 舖) 안의 병사들이 공격 장소로 이동하는 동선을 10분의 1로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면 왜 하필 동북포루에만 벽등을 쌓았을까?


벽등을 왜 쌓았을까? 에 대한 답은 벽등 자체에서 찾았다. 왜 동북포루에만 벽등을 두었을까?에 대한 답은 동북포루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즉 동북포루는 왜 다른 포루에 비해 2배의 병력과 화력이 필요했을까?를 탐험해 보자.  

벽등을 왜 동북포루에만 설치했을까? 무엇이 다른 포루와 다른 것일까?  

왜 다른 포루에 비해 2배의 병력이 필요했을까? 더 많은 병력과 화력을  운용해야 할 동북포루만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평면 입지, 입면 입지, 공간 입지의 3 분야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째, 평면적 입지는 지형(地形)을 통해 알아보자.

의궤에 "화성에 치는 8곳이지만 실제로는 16곳이나 된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맨 앞에 던져놓았다. 이 의미는 치, 포루(舖樓), 공심돈, 노대는 종국적으로 구조와 역할이 같다는 의미다. 이 외에도 봉돈, 각루, 포루(砲樓)도 구조적 구분만 다를 뿐 역할은 같다.


화성은 위와 같이 이웃하는 시설물 간 유기적으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한다. 유기적 방어란 양쪽 두 시설물에서 성에 접근하는 적의 좌우 옆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을 말하며, 독자적 역할보다 몇 배의 효과를 낸다. 화성 시설물 대부분이 성에서 돌출시킨 철성제도(凸性制度)를 따른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화성은 인접하는 양쪽 두 시설물에서 성에 접근하는 적의 좌우 옆을 동시에 공격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독자적 역할보다 몇 배의 효과를 내게 된다.

이제 동북포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성(城)을 살펴보자. 모습이 2개의 활이 연속적으로 놓인 모습이다. 동장대에서 동북포루까지 1개, 동북포루에서 북동포루까지 1개로 2 개의 활 모양이다. 화성 전체에서 이런 형태의 지형은 여기에만 있다.


이런 입지에서 동북포루는 좌측으로 성은 물론 북수문, 북암문까지도 방어를 담당해야 한다. 우측으로도 동장대와 함께 성과 동암문을 담당하게 된다. 암문은 방어나 공격시설로 볼 수가 없다. 담당하게 될 성의 길이를 보면 좌측이 378보 3척, 우측이 304보 2척이다. 이 수치는 시설물 간 거리 평균 107보(步)보다 3배가 넘는 긴 거리이다. 직선거리로 보아도 양쪽 모두 각각 300미터(255보)에 이른다.


이런 광범위한 방어 범위가 다른 포루보다 병력과 화력을 2배 내지 3배는 배치하여야 할 첫 번째 이유다. 

동장대에서 동북포루까지의 지형을 보면 마치 2개의 활이 놓인 모습이다. 직선거리가 300미터로 같고, 성의 길이는 각각 300보가 넘는다.

둘째, 입면적 입지는 지세(地勢)를 통해 살펴보자.

동장대에서 북동포루까지 높낮이를 살펴보자. 의궤 설명을 그대로 보더라도 "동장대에서 동암문까지 내리막(高下), 동암문에서 동북포루까지 오르막(稍高)이 되고, 동북포루에서 북암문까지는 굽어진 내리막(西轉而下), 북암문에서 동북각루는 휘어 도는 오르막(北轉更高), 그리고 동북각루에서 북수문으로는 산이 끝나고 내가 되는 (山盡易爲川)" 지세이다.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의궤의 "지세돌연최고(地勢突然最高), 즉 지세가 돌연 제일 높아졌다"라는 기록처럼 최고로 높은 동북포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내리막,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된 지세이다. 동북포루의 벽등에 올라 보면 한눈에 이런 지세가 들어온다. 벽등에 오르는 것은 허용되나 오르실 때 주의해야 한다.


이런 지세로 본 입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성(城)의 방어는 둘째 문제다. 더 급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만일 자신이 적에게 함락된다면 끔찍한 결과가 된다. 가까이 북동포루부터 동장대까지는 적에게 내어 준 것과 다름없는 셈이 된다. 더욱 뼈아픈 것은  동북쪽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에 적에게 화성 전체의 상황이 노출되는 것이다.   

동북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동북포루가 함락된다면 화성 전체의 상황을 적이 꿸 수 있게 된다. 회오리 같은 구름이 동북포루 위에 일고 있다.

팔달산 남쪽 능선에 용도(甬道)를 설치한 가장 큰 이유를 의궤는 "적군이 먼저 올라가게 한다면 성의 허실을 모두 엿보이게(一城虛實 皆爲彼覘) 된다"라고 하였다.


동북포루에 벽등을 설치한 이유도 똑같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서 동북각루와 동장대를 굽어보고 있다. 만약에 이곳을 적군에게 빼앗기면 화성 전체의 허실을 모두 엿보게 된다"로 내용은 같고 장소만 다를 뿐이다.


용도(甬道)와 동북포루는 4각8문(四角八門)에서 사실상 2각(二角)에 해당한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입지이기 때문에 자체 방어가 매우 중요하게 된다.


이처럼 화성 최고의 요충지에 대한 방어가 다른 포루보다 병력과 화력을 2배 내지 3배 배치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동북쪽에서 가장 높고, 용도는 서남쪽에서 가장 높은 곳을 점하고 있다. 사실상 2각(二角)으로 화성 최고의 요충지이다.

이상의 이유를 간략히 정리하면,

첫째 이유로 동북포루의 지형적(地形的) 입지는 성의 방어 범위가 다른 포루의 3배나 넓다. 이를 위해 병력과 화력의 증강이 필요했었고, 2배의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벽등을 둔 것이다.


둘째 이유로 동북포루의 지세적(地勢的) 입지는 북동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만일 동북포루가 함락될 경우 화성 전체의 허실(虛實)이 모두 적에게 노출된다. 이는 화성 전체의 함락과 마찬가지다. 자체 방어를 증강시킬 필요에서 벽등을 설치한 것이다.


셋째 이유는 동북포루는 산꼭대기라서 평평한 터를 넓게 만들 수 없었다. 포루 중 동북포루가 작은 이유이기도 하다. 비좁은 공간이라서 평면으로 확장할 수 없고, 위아래를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사용 공간을 늘린 것이다. 좁은 공간을 2배, 3배로 활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벽등이다. 

아름다운 요연(龍淵)과 그 위의 방화수류정은 동북포루가 함락되면  적들의 놀이터가 된다. 동북포루의 자체 방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동북포루의 3차원 입지 분석을 통해 왜 동북포루(東北舖樓)에만 벽등(甓磴)을 설치했는지 살펴보면서 정조(正祖)의 공간 감각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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