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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Jan 26.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35

현안(懸眼)으로 어디까지 보일까?

위에서 아래로 길게 파인 저 현안으로 어디까지 보일까?  


현안(懸眼)으로 어디까지 보일까?  


성 밖에서 보면 돌출된 성벽에 위에서 아래로 길게 파인 홈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현안(懸眼)이라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매달려(懸) 있는 눈(眼)"이란 뜻이다. 성 밖 적군의 입장에서 보면 긴 홈의 맨 윗부분에 상대방의 눈이 있기 때문에 "성 위에 매달린(懸) 눈(眼)"이 되는 것이다.


현안(懸眼)이란 무엇일까?


의궤에는 설명이 없어, 정약용의 "도설(圖說)"을 참고하여야 한다. 도설은 임금의 지시로 정약용이 만든 성(城), 옹성, 포루, 현안, 누조, 거중에 대해 정조(正祖)에게 제출한 제안서이다. 이 중 현안도설에  "현안이란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성의 부속적인 장치이다"라고 현안을 정의하고 있다. 이 제안서는 1년 후 어제성화주략(御製城華籌略)으로 발표되고 화성 성역의 기본 지침이 된다.

현안(懸眼)의 정의는 의궤에 없다. 정약용의 현안도설에서 볼 수 있다

정의에 이어서 "적병이 성벽 밑에 바짝 붙어서 괭이를 가지고 구멍을 뚫어서 성벽을 헐거나, 또는 사다리를  사용하여 성을 올라와도 아군(我軍)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니, 어찌 방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현안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라고 필요성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상의 기록에서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군을, 적의 화살이나 탄환으로부터 안전하게, 구멍을 통해 감시할 수 있는 장치"로 정리할 수 있다. 현안도설에도 "적도성하(敵到城下) 일견무유(一見無遺)"로 표현하고 있다. 즉 "적병이 성벽 아래에 이르면, 빠짐없이 단번에 발견할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과연 이 작은 구멍으로 목표대로 성벽 가까이는 모두 보일까? 그리고 멀리는 어디까지 보일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군을 적의 화살이나 탄환에 두려움 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시할 수 있는 장치이다.

먼저 현안의 생김새부터 살펴보자. 도설에 "타(垜)마다 가장 중심부에 성의 평면으로부터 구멍을 뚫는데, 크기에 알맞게 벽돌을 구워서 쌓되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서 층계를 이루어 좁아지게 쌓은" 구조라고 말하고 있다.


치(雉)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본다. 먼저 성 위에 올라 치의 바닥을 보면, 치(雉)의 돌출된 3면 중 바깥쪽 면(外面) 바닥 한가운데 여장 가까이 구멍이 있다. 이곳이 바닥에 아군이 엎드려 내려다보는 현안 구멍이 된다.


다음엔 성 밖으로 나가 바깥면(外面)을 보면, 위에서 아래를 향해 일정한 폭으로 홈이 파여 있다. 현안 구멍과 이렇게 파인 현안을 통해 바깥을 보는 것이다. 


이제부터 현안을 통하여 어디가 보일까 그 범위를 계산해 보자. 서북공심돈의 북쪽 현안을 샘플로 삼아 가시범위(可視範圍)를 계산했다. 서북공심돈을 선택한 이유는 원형이 잘 보존된 시설물이고, 무엇보다 수원시 화성사업소에서 실시한 실측조사 보고서가 있기 때문이다. 

화서문 옆 서북공심돈 현안의 최대 가시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의외로 먼 곳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성 위의 구멍 크기는 사방 30cm, 구멍 위치는 외벽선에서 1.1m 들어온 지점에서 시작된다. 성 밖의 현안 폭은 33cm, 길이는 3.1m이고, 현안의 끝은 성 밖 바닥면 위 1.5m 지점에서 끝난다. 이 수치의 근거는 2012년 서북공심돈 실측조사 보고서 자료이다.


이상의 자료를 기준으로 작도법(作圖法)에 의해 가시거리(可視距離)를 계산해 보았다. 결과는 성벽에서 60cm 떨어진 곳부터 13.8m  떨어진 곳까지가 가시 범위로 나왔다. 가시(可視) 범위는 감시(監視) 범위와 마찬가지 개념이다.


놀라운 결과이다. 하나는, 적군으로부터 몸을 100% 보호하면서 감시할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작은 구멍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최대 거리가 13.8m라는 점이다. 이렇게 멀리까지 보일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 했다. 

동북노대는  대(臺) 자체가 높은 시설물이다. 현안이 원형에서 가장 크게 변형되어 복원되었다. 

화성에서 현안이 설치된 곡성은 적대 4곳, 포루(舖樓) 5곳, 치(雉) 8곳, 그리고 동북노대,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봉돈으로 모두 21개 시설물에 35개 현안이다. 그리고 옹성 4곳에 34개 현안이 설치되어 있다.


서북공심돈 외에 시설물 유형별로 1곳씩 필자가 실측한 자료를 활용하여 가시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계산 결과 최대 감시 거리는 동1포루 5.1m, 동1치 12.3m, 동옹성 8m, 동북노대 2.2m, 북동적대 14.5m, 봉돈이 13m로 나온다. 바닥에 엎드린 병사의 눈높이를 감안화여 이 수치에서 20%를 감(減)하면 더 정확한 값이 된다. 


현안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실을 정리하면, 

"현안으로 볼 수 있는 최대 가시거리는 짧게는 5.1m에서 길게는 14.5m 떨어진 곳까지이다"

"현안이 설치된 시설물은 전체 시설물의 40%에 해당하는 25개 시설물이고, 설치된 현안 수는 총 69개이다"

구멍과 현안의 시작점 사이 위 부분의 설계와 시공이 중요하다. 돌 하나 두께가 가시각(可視角)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설물을 실측하면서 보게 된 것은 많은 시설물이 복원공사를 거치며 당초 설계에서 변형되었다는 점이다. 바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작은 잘못된 부분이 가시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부위를 말하면 병사가 눈을 댄 구멍에서 밖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 사이 위쪽 부분이다. 잘못된 하나는 돌을 한 두 층 더 두껍게 쌓아 먼 곳을 볼 수 있는 가시각(可視角)을 좁혀 놨다. 다른 하나는 돌을 매끈하게 마감하지 않아 울퉁불퉁한 상태라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원형(原形)대로라면 15m까지 보여야 하는데, 소홀한 공사로 2m까지만 보인다면 현안은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현안의 윗부분이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느냐, 외벽선에서 얼마나 떨어졌느냐, 라는 외적인 것보다 왜 그 치수이어야 하는가, 왜 그 위치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화서문을 지키는 서북공심돈은 사진에 보는 것처럼 북쪽과 서쪽이 적에게 열린 형태라서 두 면 모두에 현안을 설치했다.

부실한 공사와 달리 현안 자체의 길이를 아예 축소해 복원한 곳도 있다. 동북노대의 2개 현안이다. 원래 현안 길이의 거의 반 정도만 복원해 놓은 것이다. 원형 상태의 최대 가시거리는 11.5m이어야 하는데 현재 복원된 상태는 2m에 불과하다.


왜 멀리까지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편으로 약속드린다. "현안은 본래 성 가까이 있는 적군을 감시하기 위한 것인데 왜 불필요하게 멀리까지 보도록 설계했을까?" 그리고 "왜 측면에는 설치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미스터리를 살펴볼 것이다. 


유성룡은 "포루 하나 있으면(一置砲樓), 현안이 필요하지 않다(不須懸眼)"라고 역설적으로 현안의 중요성을 일찍이 말한 바 있다. 보잘것없는 작은 구멍에 큰 역할을 맡긴 현안(懸眼)을 통해 정조(正祖)의 의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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