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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Jan 18.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34

곡성(曲城)에 대하여

방화수류정을 감싸고 있는 성은 원성일까? 곡성일까?


곡성(曲城)에 대하여


지난 편에서 원성(元城)에 대해 살펴보았다. 화성 4,600보(步)는 원성과 곡성의 합(合)이라 했으니, 원성이 아닌 시설물은 모두 곡성이 되는 것일까? "아니오"이다. 이유는 시설물은 두 부류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곡성인 시설물이고, 다른 하나는 곡성도 아니고 원성도 아닌 부류의 시설물이다. 


이 두 부류를 분별할 수 있어야 곡성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곡성(曲城)은 무엇일까?


의궤 권수(卷首)에 "화성 둘레의 통계가 4,600보가 되는 셈이다"라 하고, 뒤이어 4,600보의 내역을 설명하며 "문(門)이나 초(譙), 치(雉), 포(舖), 대(臺), 돈(墩) 등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635보 4척이고, 이 밖에 원성이 3,964보 2척이다"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을 보면 4,600보는 화성의 전체 길이이고, 문, 초, 치, 포, 대, 돈이 차지한 길이와 원성(元城) 길이를 합친 것이 된다. 하지만 곡성(曲城)이란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북옹성은 장안문의 외성(外城)이다. 옹성은 원성도 아니고 곡성도 아니고 옹성(甕城)으로 분류된다.

곡성에 대한 정의, 실체는 알 수 없는 것일까?


오히려 권 1(卷一) 어제성화주략(御製城華籌略)에 그 단초가 보인다. "어제성화주략"이란 의궤 범례(凡例)에 "성역을 계획할 때 필요한 절차, 방법을 임금께서 몸소 계획하시어, 특별히 감동(감독, 監董)하는 신하에게 내리었다"라고 설명한다.


성화주략은 다산(茶山) 정약용이 만든 화성 건설 기본계획서라고 지금껏 알고 있었다. "임금께서 몸소"라는 기록을 보면 마치 임금과 신하가 논문의 원저자를 놓고 다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뒤에 "계획하시어"를 붙인 것을 보면, 임금은 전략과 지침을 주고, 신하는 이를 기준 삼아 기본 계획서를 만든 것이 된다. 


책임자와 실무자의 관계가 아닌 설계과정으로 파악해야 한다. 설계과정으로 보면, 정조(正祖)는 Owner's Requirements(발주자 요구사항)를 다산에게 건네고, 다산(茶山)은 이를 기준 삼아 Design Criteria(설계 기준)를 만들어 정조에게 제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성화주략에 유일하게 곡성(曲城)이란 용어가 나온다. "그 둘레가 곡성(曲城)까지 합하여 약 3,600보(步) 라야 겨우 계획한 바에 들어맞는다"라는 기록이다. 여기서 3,600보는 당초에 계획한 화성의 규모이다. 이 계획이 실제로는 1,000보가 늘어난 4,600보로 공사를 마쳤다. 따라서 의궤 권수(卷首)에 나오는 "4,600보(步)"는 "곡성을 합하여 4,600보"로 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된다. 

원성에서 성 밖으로 돌출된 치(雉)의 형태로 된 성을 곡성(曲城)이라 한다.

권수에 4,600보의 내역을 "문이나 초, 치, 포, 대, 돈 등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635보 4척이고, 나머지가 원성이다"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전체 화성의 길이에서 원성을 뺀 나머지 635보 4척이 곡성이 되는 것이다. 


의궤가 아닌 화성 성역 이전에 "곡성"이란 용어는 성역 200년 전 유성룡(柳成龍)의 축성론(築城論)에 보인다. 축성론에 "고대 성제(城制)에서 치(雉)는 곧 지금의 곡성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서 곡성은 치처럼 성 밖으로 돌출한 성을 말하고, 곡성이란 용어는 이미 널리 사용되던 용어였음을 알 수 있다. 치의 형태는 성 밖으로 3면이 돌출된 형태라서 "굽을 곡(曲)"을 붙여 곡성(曲城)이라 칭한 것 같다.


치(雉)라 하면 치, 포, 돈, 대 등의 시설물이 세워지는 바탕을 말한다. 하지만 유의할 것은 성에 인접한 시설물이라고 모두 곡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설물에 인접한 성이 치(雉)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착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바르게 분별해야 곡성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투박하지만 "화성 37 곡성도"이다. 푸른색은 곡성이 아닌 것을 표시한 것이다.

권수(卷首) 도설(圖說) 성지전국(城之全局)에 "문, 초, 치, 포, 대, 돈 등이 차지하고 있는 635보 4척"에 해당되는 시설물 이름과 길이가 기록되어 있다. 이 중 곡성이 아닌 시설물은 어느 것이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두는 것이 곡성을 파악하는 빠른 길이다. 3가지 요인으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 구조상(構造上) 성(城)이 될 수 없는 부류이다.   

지(池), 은구(隱溝), 용연(龍淵)이 해당된다. 3가지 모두 '연못 지(池)', '도랑 구(溝)', '못 연(淵)'처럼 물과 관련된 시설로, 성(城)처럼 지상이 아닌 지표면 아래에 형성되는 시설물이다. 


둘째, 분류상(分類上) 4,600보(步)와 무관한 부류이다.

옹성(甕城)과 용도(甬道)가 해당된다. 의궤에 옹성과 용도는 성(城)과 구분하여 별도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성과 곡성의 합인 4,600보와 관계없는 시설물이다. 옹성은 문의 외성(外城)이고, 용도는 길(道)일 뿐이다.


셋째, 위치상(位置上) 치(雉) 위에 세우지 않은 부류이다.

곡성 구분에서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면서 곡성 구분의 핵심이다. 장대 2곳, 각루 4곳, 포사 3곳, 그리고 서노대, 동북공심돈, 성신사로 12개 시설물이 해당된다. 의궤에 "재성신지내(在城身之內) 시설물"로 분류하고 있다. 이 말은 돌출된 치 위가 아니고, 성 안쪽의 땅(城身之內) 위에 세웠다는 의미이다. 서남각루는 "용도 안(在甬道之內)", 서남포사는 "서남암문 위(西南暗門上)"가 정확한 표현이다. 가장 까다로운 이 12개 시설물은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용도(甬道)는 성(城)이 아닌 길(道)로 원성이나 곡성과 별도로 분류한다.

3가지 경우를 합한 23개 시설물은 곡성이 아닌 시설물이 된다. 따라서 화성에서 곡성에 해당하는 나머지  37개 시설물은 문 4곳, 암문 5곳, 수문 2곳, 적대 4곳, 치 8곳, 포루(砲樓) 5곳, 포루(舖樓) 5곳, 동북노대,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봉돈이다.


이상으로 곡성에 대한 구분을 마치고, 다음은 곡성 길이와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자.


길이의 측정 기준은 시설물의 형태에 따라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좌우 길이 즉 넓이(활 闊)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다.

이것을 적용하는 시설물에는 문, 암문, 수문이 있다. 이유는 원성과 원성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직선 형태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돌출한 3면의 바깥 둘레 길이(외주, 外周)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다. 

여기에는 문을 제외한 포루(砲樓), 치(雉), 포루(舖樓), 적대(敵臺), 동북노대, 남공심돈, 서북공심돈이 해당된다. 치는 돌출된 좌우 2면과 바깥면 1면으로 이루어진 돌출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방화수류정은 치(雉) 위에 지은 시설물이 아니므로 곡성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각각의 곡성 길이는 여기에 생략함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권수 도설 맨 앞부분을 참고하시면 된다. 여기에는 곡성 중 최단 길이와 최장 길이만 알아본다.


곡성 중 가장 짧은 길이는 암문(暗門)으로 북암문 1보, 서암문 1보 1척, 동암문과 서남암문이 1보 2척, 남암문이 3보로 5위까지가 모두 암문이다. 암문 외에는 남치가 14보 2척, 서3치가 14보 3척으로 6, 7위이다. 남치와 서3치가 성 안으로 여장이 들어온 이유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장 긴 곡성은 장안문과 남공심돈이 26보, 팔달문 25보 4척, 그리고 화홍문과 남수문이 25보로 5위까지이다.

화홍문은 수문으로 원성과 원성 사이에 위치해 좌우 길이가 화홍문 곡성 길리의 기준이 된다.

곡성(曲城)에 대해 정리하면 

"화성성역의궤 중 성화주략(城華籌略)과 유성룡의 축성론(築城論)을 보면 치(雉)의 형태로 돌출된 3면의 성, 그리고 원성과 원성 사이에 설치된 문(門), 암문, 수문을 말한다"

"화성에는 37개 시설물이 곡성이고, 그 곡성 길이의 합은 635보 4척이다. 이는 시설물 수로 보면 전체 시설물 수의 60%이고, 길이는 전체 길이의 15%에 해당된다"


곡성(曲城)에 포함되고 제외되는 기준을 살펴보았다. 용어 하나하나의 정의(定義)를 중시한 성역의궤 기록을 통해 정조(正祖)의 엄격함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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