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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Feb 01.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36

현안을 왜 쓸데없이 길게 만들었을까?

현안은 원래 성벽 가까이 있는 적을 감시하는 것인데 왜 멀리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했을까?


현안을 왜 쓸데없이 길게 만들었을까? 


치(雉)나 옹성(甕城)을 성 밖에서 볼 때 위에서 아래로 길게 파인 홈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현안(懸眼)이라 한다. 성 밖 적군의 입장에서 보면 긴 홈의 맨 위에 상대방의 눈이 있기 때문에 "성 위에 매달린(懸) 눈(眼)"에서 "현안"이라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정약용의 현안도설을 참고하면 "현안이란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성의 부속적인 장치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적병이 성벽 밑에 바짝 붙어서 괭이를 가지고 구멍을 뚫어서 성벽을 헐거나, 또는 사다리를 사용하여 성을 올라와도 아군(我軍)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니, 어찌 방어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현안(懸眼)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라고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로 보아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군을 감시하는 장치는 분명하다. 현안도설에도 "적지부성(敵之附城)", "적도성하(敵到城下)" 즉 "성 가까이 있는 적군", "성벽 아래까지 도착한 적군"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성벽 가까이 있는 적군"을 감시하는 것은 확실하다.    

긴 홈의 맨 위에 상대방의 눈이 있기 때문에 "성 위에 매달린(懸) 눈(眼)"에서 "현안(懸眼)"이라 이름 지었다. 

현안의 목적이 "성벽 가까이 있는 적군"을 감시하는 것이라면서 현안의 길이를 보면 너무 길게 느껴진다. 현안은 작은 부분일지라도 까다로운 공사라서 길게 되면 공사기간과 공사비도 늘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대포 같은 적의 공격에 구조적으로도 취약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필자가 바깥 성면에 파인 현안 길이를 실측해 보니 치(雉)는 1.7m에서 2.8m, 포루(舖樓)는 2.1m에서 3.6m, 옹성은 2m에서 2.3m, 그리고 서북공심돈 3.1m, 북동적대 4.85m, 동북노대 4m, 봉돈 4.75m가 나온다. 가까이 붙은 적병을 보는 데는 1m 정도라도 가능할 텐데 너무 길다.


구조적 취약점과 공사기간과 공사비의 부담을 안고서 왜 현안을 길게 만들었을까? 이 또한 화성 미스터리의 하나다.


가시범위(可視範圍)와의 관계가 비밀을 풀 열쇠다. 지난 편에 계산한 현안의 최대 가시거리를 보자. 서북공심돈의 경우 13.8m, 다른 시설물도 유형별로 하나씩 계산한 결과 최대 가시거리가 5.1m, 8m, 12.3m, 13m, 14.5m로 나왔다.


가시거리 계산 결과를 보고 두 가지 의문을 지적하였다. 하나는, 현안의 목적은 성벽 가까이 붙은 적을 감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불필요하게 멀리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했을까?이고, 다른 하나는, 왜 측면(側面)은 설치하지 않았을까?이다. 

각건대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성 밖 지형이 가팔라, 같은 규격의 현안보다도 더 멀리 볼 수 있다.

먼저, 왜 좌우 측면(側面)은 설치하지 않았을까? 에 대해 살펴보자.


현안의 주목적은 감시 사각(死角)지대를 관찰하기 위함이다. 거꾸로 말하면 사각지대가 아닌 곳에는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좌우 측면은 감시체계가 이중으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인접한 원성(元城)이 담당한다.

바로 옆의 원성에 있는 타구(垜口)와 총안(銃眼)을 통해 돌출된 측면에 가까이 붙은 적군을 감시하거나 공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웃하는 맞은편 치(雉)가 담당한다.

돌출된 맞은편 치에서 감시와 공격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철성제도(凸城制度) 즉 치를 돌출시킨 목적이다. 현안도설에도 "치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어서(兩雉相對), 탄환이나 화살이 서로 미칠 수 있으므로(丸矢互及) 적병이 감히 성벽 밑으로 가까이 접근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언급이 있다.


또한 화성성역 200년 전에도 유성룡(柳成龍)은 "포루 하나가 있으면 현안이 필요하지 않다(一置砲樓 不須懸眼)"라 하였다. 당시 포루의 의미는 돌출된 치성과 그 시설물을 의미한다. 맞은편에 치가 있으면 측면에 현안은 설치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약용은 최종적으로 "전면에만(前面)", "각각 몇 개씩(各雉眼幾箇)", "옹성과 여러 치성(甕城及諸雉城)"에 현안(懸眼)을 두는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여러 치성"이란 치, 포루(舖樓), 공심돈, 노대를 의미한다.

치의 측면은 맞은편 치에서 방어와 공격을 하므로 현안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다음은, 왜 불필요하게 멀리까지 볼 수 있도록 설계를 했을까? 에 대해 살펴보자.


만일 현안을 설치하지 않는다면, 치, 포루, 적대, 옹성의 경우에는 여장의 총안이나 타구가 감시를 담당하게 된다. 공심돈의 경우에는 포혈(공안, 空眼)이 맡게 된다. 이 경우 감시 범위에 못 미치거나, 벗어나는 공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바로 감시 사각(死角)지대이다. 


감시 사각지대가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자. 화성사업소 서북공심돈 실측조사보고서에 실린 "공안(空眼)의 응사각(應射角) 범위도"를 활용하였다. 계산해 보면 성벽으로부터 11.5m 지점 바깥이 응사(應射) 범위가 된다. 거꾸로 보면 11.5m 이내는 응사 사각지대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감시 사각지대인 것이다.


감시 사각지대를 그대로 둘 정조(正祖)가 아니다. 현안을 눈여겨봤다. 현안의 주기능인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군을 감시하던 기능에 먼 곳까지 감시하는 역할을 추가한 것이다. 그것도 사각지대 까지만. 이것이 현안을 통하여 본래 목적보다 더 멀리 볼 수 있게 설계한 이유다. 정조는 원래 "1타3피(一打三皮)"를 좋아하시는 분이다. 요즘 말로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이다.

서북공심돈의 경우 성에서 11.5m까지는 감시 사각지대가 된다. 그림에 붉은 표시를 한 부분이다.

현안의 당초 목적인 가까운 부분만 보게 하려면 현안의 길이가 1m 정도라도 가능하다. 화성에서 현안 길이가 1.7m에서 4.8m까지 인 것을 보면 원거리 감시를 당초부터 설계한 것이 증명된다. 


멀리 볼 수 있게 설계한 자초지종을 알게 되니 잘못 복원된 점이 더욱 아쉬워진다. 잘못된 작은 부분이 현안의 감시범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영향이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정리하면, 치의 측면에 현안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맞은편 치와 바로 옆의 원성이 감시와 공격을 이중으로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래 목적과 달리 멀리까지 볼 수 있게 한 이유는 감시 사각지대를 현안에 담당시켰기 때문이다.


현안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이렇다. 현안은 돌출된 치의 전면에 설치한 "돌출되지 않은 또 하나의 치(雉)"라고 평가한다. 치(雉) 한 개와 맞먹는 가치를 지녔다고 본다.   

현안 구멍 앞쪽 윗부분이 10cm만 두꺼워져도 가시(可視) 거리가 엄청 줄어든다.

현안(懸眼)의 역할 추가, 전면(前面, 外面) 설치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감시 사각지대까지 담당할 수 있게 가시권(可視圈)을 확장한 현안(懸眼)을 보면서 정조(正祖)의 지혜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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