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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Mar 01. 2021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40

현안 : 뜨거운 물과 기름으로 공격했을까?

동북공심돈의 현안은 여장 밑까지 열려야 하는데 그 반(半) 정도에서 그치게 잘못 복원했다.


현안 : 뜨거운 물과 기름으로 공격했을까?


현안은 뜨거운 물과 기름, 돌덩이 등으로 공격하는 시설이다 아니다 라는 갑론을론이 있어 왔다. 현안(懸眼)에서 "뜨거운 물과 기름" 문제는 오래된 이슈이다. 공격 기능까지 시선을 넓혀 살펴보자.


현안이 생기게 된 발단은 여장의 총안(銃眼)이다. 총안은 성 밖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지만 성 가까이 접근한 적은 볼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로 현안도설에 "유직무우(有直無迂), 즉 사람의 눈(眼)은 곧바로 만 볼 수 있고 휘어서 볼 수가 없다"는 중국 학자 여곤(呂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총안(銃眼)으로는 적병이 성벽 밑에 바짝 붙어서 성벽을 헐거나, 성에 오르기 위한 사다리를 설치해도, 아래를 내려다볼 수 없다. 타구(垛口)를 통해 감시하려 해도 적병들이 총과 활로 겨누고 있어 아군이 머리를 내밀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아군이 적으로부터 완전히 은폐(隱蔽)하면서, 성벽 가까이 도착한 적병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현안(懸眼)인 것이다. 

남공심돈의 동쪽면과 남쪽면에 각각 2개씩 현안을 두었다. 미 복원 시설인데 모양이 예쁘다.

공격과 관련된 기록도 살펴보자.


유성룡(柳成龍)은 축성론(築城論)에서 현안을 "성 밑의 적을 훤히 내려다보고 때려잡는 시설"로 언급하고 있다. 공격 시설로 언급은 하였는데 공격 수단에 대한 언급은 없다. 유성룡은 화성성역보다 200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다.


정약용(丁若鏞)은 현안도설에서 "현안으로 화살이나 돌, 총 등으로 공격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시석총통(矢石銃桶) 즉 화살, 돌, 총이라는 구체적 수단을 기록한 것을 보면 감시와 함께 공격 시설임을 다산(茶山)은 명확히 하고 있다. 


성역의궤 번역본에 뒤따라 발간된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에는 현안에 대해 "성 밑을 살피거나 성벽 가까이 다가선 적에게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부어 공격하도록 고안된 시설"로 되어 있다.

정약용은 현안도설이라는 제안서를 만들어 임금에게 보고하였다. 사진은 강진 다산초당 아래 박물관에 있는 기념사진 촬영 장소다.

지금까지 언급된 공격 수단을 보면, 성역 당시 기록에는 "화살(矢)이나 돌(石), 총(銃)", 그리고 현대에 와서 "뜨거운 물이나 기름"이 추가된 것을 알 수 있다. 현안은 과연 공격 시설일까? 거론된 모든 공격 수단을 평가해 보자.


먼저, 사용성(使用性)을 살펴보자.

화살(矢), 돌(石), 총(銃), 뜨거운 물(熱湯), 기름은 모두 현안을 이용하여 사용이 가능한 수단이다.


다음엔, 효율성(效率性)을 생각해 보자.

"화살과 총"은, 짧은 거리에서 직사(直射) 무기로 보아야 한다. 반면에 현안의 아래면은 곡선이다. 사용은 가능하나 현안의 생김새와 직사 무기임을 감안하면 살상 범위가 매우 좁아진다. 더구나 엎드린 상태로 작은 구멍을 통해 아래로 쏘는 자세로는 공격 효과가 없다.


"돌(石)"인 경우, 크기는 25cm 이내, 모양은 공(球) 모양이어야 한다. 구멍 크기가 30cm 전후인 것을 감안한 크기이다. 만일 공 모양이 아니고 각(角)이 있으면 좁은 현안에 돌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현안이 막힌다는 것은 쥐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화서문을 중심으로 서북공심돈에는 2면에 각각 2개씩, 서옹성에는 3개의 현안을 설치했다.

"뜨거운 물과 기름"은, 액체 상태이므로 화살, 총, 돌보다는 사용에는 제약이 없다. 다만 뜨겁게 데우려면 끓이는 공간, 땔감, 운반, 보관, 쏟는 도구 등이 필요하다. 포루(舖樓)는 마루 밑이라 쏟아붓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리하면, 사용성(Usability)에서는 모두 가능하나, 효율성(Combat Effectiveness)에서는 모두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 적군에게 성을 빼앗기느냐 지키느냐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효율을 떠나 모든 것을 투입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전제만 없다면 현안에서 실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왜 공격 수단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을까?


"뜨거운 물과 기름"은 현대에 들어와서 추가된 것이다.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의 내용은 조선 후기 여러 영건(營建)의궤들과 대조하여 의미를 풀어냈다고 "일러두기"에서 밝히고 있다. 성역의궤 원문의 주(註)가 아니라 한다. 

장안문을 지키는 북동적대는 높이도 높지만 현안 개수도 외면 폭에 비해 많은 3개나 설치되어 있다.

현안과 유사한 제도로 협축의 원성 위에 설치한 구멍으로 천정(天井)이란 제도가 있다. 이 천정을 통해 한눈에 곧바로 성벽의 아래쪽을 볼 수 있다. 또한 "창(使槍)으로 아래로 찌르고 똥을 뿌릴(噴糞) 수도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분분(噴糞)을 보고 여기에 덧붙여 "뜨거운 물과 기름"이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분(糞)도 뿌리는데 물이나 기름도 뿌릴 수 있지 라는 생각에 수단을 넓힌 것 같다.


반면에 "화살, 돌, 총"은 성역 당시에 언급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제안한 정약용의 "현안도설"에 대한 해석을 필자는 달리하고 있다.


"화살, 돌, 총 등을 이용하여 공격할 수 있으니(矢石銃桶 無所不施)"라는 정약용의 제안은, "실전 투입"보다 "활용 가능성"의 나열에 의미를 둔 것으로 본다. 정약용은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활용 가능한 공격 수단"을 의도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과연 현안은 감시시설일까 공격 시설일까 현안은 노송에 의지한 채 답이 없다.

여러 공격 수단을 나열한 후에 "참으로 좋은 방법입니다(固爲美矣)"란 미사여구(美辭麗句)까지 써가며 제안서를 마무리한다. 이는 정약용이 "여러 공격 수단"을, 첫째로 정조(正祖)를 향해 "현안 마케팅(현안 팔기)" 수단으로 활용했고, 둘째로 설계와 감독을 담당할 감동당상(監董堂上)을 향해 "임금 마케팅(임금 팔기)"을 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결국 정약용의 제안은 임금도, 감동당상도, 받아들인다. 실제로도 옹성과 모든 치성(甕城及諸雉城)에, 돌출된 전면(前面)에, 위계에 맞는 개수만큼, 다산의 제안과 똑같이 현안을 설치하였다.  


오늘은 정약용(丁若鏞)의 현안(懸眼)에 대한 제안서인 "현안도설" 중 공격 수단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안 채택과 실현"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젊은 시절 다산(茶山)의 모습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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